[잊혀지는 우리 것] 마광남 주주통신원

갯벌이 파랗게 물들면서 봄을 알려주는 것이 감태이다. 이러한 감태를 우리들은 식용으로 Tm고 있으며 계절음식으로 즐겨 먹고 있다. 그래서인지 일본인들은 대마도종가문서자료집에 수입품으로 기록하고 있다.

감태를 두고 경세유표에서는 감곽(甘藿)·감태(甘苔)이라 부르기도 한다는 기록이 보이며, 세조 5년(1459) 4월 12일(계해)의 기록에는 임금이 판내시부사(判內侍府事) 전균(田畇)에게 명하여 녹비(鹿皮)·녹미(鹿尾)·육포(肉脯)·건어(乾魚)·건균(乾菌), 호도(胡桃)·복어젓[鰒魚鮓]·은구어젓[銀口魚鮓]·해의(海衣), 감태(甘苔) 등의 물품을 명(明)나라 사신에게 주었다는 기록으로 볼 때 상당히 귀한 식품으로 인정받았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럼 당시에 감태의 값은 얼마나 되었을까? 정조 10년(1786, 5, 19)에는 감태 한속에 1냥 하던 것이 동학농민항쟁(1894)자료에는 7푼(分)으로 되어있으니 그동안 생산량이 늘어서인지 가격의 차가 많이 나지만 혹 상인들의 농간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나 생각해 본다.

매천야록(梅泉野錄) 제5권 光武 10년 丙午(1906, 9, 3)의 기록을 보면 제주목사(濟州牧使) 조종환(趙種桓)의 감태전매권(甘苔專賣權) 승인이란 기록에는 지난해 제주목사 조종환이 일본인에게 뇌물을 받고 감태전매권(甘苔專賣權)을 승인해 주었는데, 이때 이등박문(伊藤博文)은 한국민의 실업(失業)이 염려스럽다고 하면서 전매제(專賣制)를 폐지하여 우리 국민들에게도 감태채취(甘苔採取) 및 전매권을 허락하여 두루 이익을 보게 하였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뇌물을 주면서까지 감태전메권을 독점하려 했던 것을 보면 상당한 고가의 식품이었음을 생각게 한다.

또한 통감부 문서를 보면 한국정부와의 교섭사항이란 제목의 글에는 제주도 감태 매수 특허 취소의 건에 대해, 본건에 대하여는 제주도에서 각 군수로부터 지난번의 특허를 취소하라는 명령에 따라 그 관내 인민들에게 감태의 매수와 상업을 개방한다는 유고(諭告)를 발령하였다는 취지의 상신이 목포리사청(木浦理事廳)으로부터 있었으며, 이 건이 종결되었기에 처음부터의 전말을 기술하여 외무성(外務省)에 통보하였다는 기록으로 보아 당시에도 감태로 인한 소득이 상당히 높았던 것 같다.

이러한 감태에 대해 알려진 성분을 보면 노화방지, 당뇨, 고지혈증, 동맥경화, 숙취해소, 불면증, 간질환 등에 좋다고 알려져 있다. 아직은 감태가 자연에만 의존 할 뿐 대량생산을 할 수는 없지만 더 연구하여 대량생산을 할 수는 없는 것인가 우리 모두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다.

마광남  wd341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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