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오”를 함께 한 "미당 문학관"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

미당 서정주 시인이 지은 <푸르른 날>의 처음 대목이다. 6월11일 토요일 오후, 미당의 고향, 질마재로 향하던 시간은 후줄근한 날씨에 마침 한바탕 시원한 소낙비가 내리고 있었다. 갑자기 내렸던 여름비는 초록이 짙은 해안선을 더욱 선명하게 하였다. 더군다나 질마재 바다 건너 몇십리 변산반도를 아주 가깝게 보여주고 있었다. 필자는 망중한에 잠시 고향에 내려갔다가 올라오는 길에 가 보고 싶었던 '미당 시 문학관'에 도착하는 중이었다.

 

이 곳 질마재와 10여 ㎞밖에 떨어지지 않은 고창 심원면이 필자가 태어난 곳이다. 미당 서정주는 전북 고창군 부안면 선운리, 즉 질마재라는 곳에서 태어났다. '미당 시 문학관'은 미당 서정주 시인을 기리기 위해 그의 고향 마을에 세워진 기념관으로 그의 삶을 마감한 뒤 1년이 지난 2001년 가을, 당시 고창군수의 적극적인 도움에 힘입어 개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기념관 부지로는 2,862평 규모로 조성되었는데 미당의 생가 2동 및 별도의 기념관과 주차장이 마련되었다. 기념관에는 미당의 시화 및 도자기, 화사집 원본, 운보 김기창 <미당초상>, 남정 박노수 <국화옆에서> 그림 등 유품 5,000여 점이 전시되어 있다. 미당 서정주는 1915년 5월 18일(음)에 태어나서 2000년까지 살았던 시인이다. 미당은 그가 지은 대표작 <국화옆에서>를 비롯 여러편의 시집을 발간하였으며 시인으로 한국문학에 큰 족적을 남긴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그는 193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벽>으로 당선되고 김동리, 함형수 등과 함께 시동인지 <시인부락>을 창간하면서 본격적인 문학활동을 시작하였다.

해방 후에는 조선청년문학가협회 결성에 앞장섰으며, 1949년 한국문인협회 창립을 주도하였으며 1954년에는 예술원 종신회원으로 추대되었고, 그의 모교인 동국대학교에서 시문학을 강의하기도 하였다.

미당은 첫 시집으로 <화사집>을 발표하였으며 <귀촉도>와 <신라초>라는 시집을 통하여 자연과 사람에 대한 애정을 노래하고 있다. 미당은 일제치하에 태어나 일제시대에 시인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그가 발표한 <동천>, <질마재 신화>라는 시집은 어린 시절 동화같은 이야기들을 생각나게 하는 서사적인 감성을 잘 표현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1972년 일지사에서 <서정주 문학 전집>(전5권)을 간행하였으며, 1994년 민음사에서 출간한 <미당 시 전집>을 마지막으로 미당 인생의 시어는 끝을 맺는다.

미당은 한평생 시인으로 살면서 많은 시와 시집을 출간하는 등 문학가들과 평론가들 뿐 아니라 대중의 호평을 받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필자가 서정주의 삶과 그의 아름다운 시를 어떻게 감히 평가할 수 있겠는가?

필자는 미당 서정주의 시를 비평할 수는 없다. 그것은 필자가 시를 비평할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기 때문이며 필자로서 미당의 시들을 평가할 수 있는 지식 또한 부족하기 때문이다. 다만 '미당 시 문학관'에 비치된 미당 생애의 문학활동이 가감없이 그려놓았다는 점을 칭찬하고 싶은 마음이다. 바로 일제치하에서 미당 서정주가 문학가로서 책임을 다 하기는커녕 민족에 큰 죄를 저질렀던 부분이다.

미당 서정주가 일제의 만행이었던 태평양 전쟁에 조선인의 강제 징집 동원령을 합리화시키는 도구로 적극 활동하였다는 것은 참 부끄러운 일이다. 그러나 참으로 다행인 것은 그가 한때 저지른 오욕의 행위를 덮으려 하지 않고 사실 그대로 <시 문학관>에 소개하고 있는 일이다. 아니 그러나 그의 친일행위가 민족과 역사앞에 큰 죄를 저질렀음은 분명하다.

여기 민족역사에 부끄러운 시, 한편을 소개한다.

마쓰이 히데오!

그대는 우리의 가미카제 특별공격대원

귀국대원

귀국대원의 푸른 영혼은

살아서 벌써 우리게로 왔느니

우리 숨쉬는 이 나라의 하늘 위에

조용히 조용히 돌아왔느니

우리의 동포들이 밤과 낮으로

정성껏 만들어 보낸 비행기 한 채에

그대, 몸을 실어 날았다간 내리는 곳

소리 있이 벌이는 고흔 꽃처럼

오히려 기쁜 몸짓 하며 내리는 곳

쪼각쪼각 부서지는 산더미 같은 미국 군함!

수백 척의 비행기와

대포와 폭발탄과

머리털이 샛노란 벌레 같은 병정을 싣고

우리의 땅과 목숨을 뺏으러 온

원수 영미의 항공모함을

그대

몸뚱이로 내려져서 깨었는가?

깨뜨리며 깨뜨리며 자네도 깨졌는가—

- 서정주, <송정 오장 송가> 중에서-

그가 얼마나 부끄러운 일제의 행동대장이었던가?. 이것은 부끄럽고 치욕스런 미당 서정주의 문학 부역행위를 보여준 사례에 불과하다. 강제 동원령에 협조하는 것도 부족하여 당시의 잡지나 신문을 통하여 동원령을 독려하는 글을 올렸으며 미화시키는 범죄를 저지른 것이었다. 필자가 볼때는 이러한 문학은 이미 문학이 아니며 문학이라는 미명하에 저지른 '부역행위'나 다름이 없다.

<미당 시 문학관>은 그의 친일 관련 내용들을 대부분 전시하여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필자는 이러한 미당의 친일 부역 행위를 낱낱이 소개하고 자라나는 후손들의 심판을 받고 있으니 참 의미 있는 문학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 사람의 공과는 평범한 인생을 살다간 사람이나 비범한 삶을 살다 간 인생이나 마찬가지로 '공'이 있으면 '과'가 있게 마련이다.

그만큼 한 사람의 일생이란 모든 삶이 훌륭하거나 아니면 모든 생애가 실패한 삶이라 할 수 없는 측면이 강하다. 다소간의 차이는 있겠지만 오히려 인생이란 반드시 '공'이 있으면 '과'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큰 과오를 저질렀던 '미당 서정주'에 대하여 가감없이 보여주는 '미당 시 문학관'을 높이 칭찬하고 싶은 마음이다. '미당 서정주'는 시인으로 성공한 것 같으나 그의 인생은 실패한 인생이었다. 그의 <시 문학관>은 그가 민족과 역사앞에 죄인임을 드러나게 보여주는 '문학관'으로 존재가치가 충분하다.

오늘을 사는 후손들에게 소중한 교훈이며 역사의 잘못된 실화임을 교훈하고 있어 다행이다.

얼마전 박정희 전 대통령의 기념예산에 7년 동안 1356억 원을 사용한 사실이 언론을 통해 알려졌다. 그 예산의 대부분은 기념관 건립과 역사관에 충당했다고 한다.

예산의 다소를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대통령에 대하여 친일과 반민주 독재와 경제 발전의 '공'과 '과'에 대한 엇갈린 평가가 분명히 상존한다. 그렇다면 마찬가지로 반드시 한 사람의 생애와 역사를 진실하고 솔직하게 그려줌이 필요하다. 자라나는 후손들에게 역사의 교훈과 삶의 가치를 배울 수 있는 현장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정부는 6월을 '호국 보훈의 달'로 정하여 그 정신을 계승하고 기리고 있다. 

 

미당 시 문학관

'미당 시 문학관'의 방문은 한 시인이 살다 간 역사의 현장에서 오늘 자신의 삶을 되돌아 보는 의미있는 시간이었다. 인생에 있어 바른 삶에 태도가 무엇이며 기본적으로 지켜가야 할 소중한 가치가 무엇인지 새삼 되돌아 보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편집 : 최홍욱 편집위원, 이동구 에디터

박명수 주주통신원  kosen21c@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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