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리, 고마움을 안다는 것

▲ 소박하여 다정한 낮은 첨탑

 

 

어제 6월 28일 정오 무렵이었다. 백여 명, 경주의 환경미화원들이 삽시에 사라졌다. 그들이 간 곳은 경주 황성동 소재의 한 교회였다. 교회의 마당에는 폐기물을 싣거나 처리한 수거차가 줄줄이 세워졌다.

▲ 미처 처리 못한 폐기물을 실은 채...

내가 좋아서 쓰던 물건도 집 밖에 버려지는 순간 흉한 쓰레기가 된다. 우리가 방금 맛있게 먹던 음식도 버려지면 구역질나는 쓰레기로 변질된다. 싫거나 잘못되거나, 더 이상 필요 없다고 느껴지는 이 모든 것들이 다시는 거들떠보기 싫은 '쓰레기'라는 '더러운 이름표'를 단다. 그리고 이것들을 너나 할 것 없이 무척 싫어한다. 꼴도 보기 싫어서 누군가가 빨리 치워주기를 바란다.

아무리 예쁜 물건도 망가지면 구박을 받고, 아주 곱던 채소들도 잔반은 더러운데, 묵묵히 치워주는 이들이 '환경미화원'이다. 그냥 직업이니까, 라며 무심코 지나쳤던 이들을 중부교회에서 각별히 모셨다.

▲ 풍선은 늘 꿈처럼 부푼다.

그저 싸구려 뷔페나 불러서 흔한 밥 한 끼를 내놓는 전시적인 자리가 아니었다. 준비는 치밀하고 풍성했다. 경주 현대호텔 조리장인 김영만 셰프의 지휘 아래 한우사태 곰탕은 이틀에 걸쳐 푹 고아졌다. 어느 전문식당보다 더 진한 곰탕과 수육이 차려졌고, 깔끔한 맛의 골뱅이무침 등 진정 가족을 위한 상차림이었다.

▲ 뼈는 뼈대로 사태살은 수육으로 따로 준비해서 고았다.
▲ 이틀 전부터 시장보기 등 할 일이 좀 많은가
▲ 사람의 기본욕구 중 인정욕구라는 강력한 욕망이 있다. 누군가 나를 알아 줄 때 행복하다.

 

이 흐뭇한 자리에 신도 두 분의 라이브 음악공연도 곁들여졌다. 교회니까 전도의 복선을 깐 찬송가를 기대했던 나의 기대는 무너졌다. 흥겹고 신나는 트롯을 연주했다.

▲ 신나는 트롯 공연에 피로도 훌훌

그리고 손님이 돌아갈 때 빈손으로 보내는 몰인정이 아니었다.

▲ 선물은 받는 쪽도 주는 쪽도 행복해진다. 환경미화원들을 위한 선물 정리를 하는 교회관계자들.

한국도자기에서 만든 수저 세트와 역시 신도인 정석수(동양건설대표)님이 농협 쌀 20kg 100포를 선물했다.

▲ 이 쌀로 밥을 지으며 이들은 한 동안 행복할 것이다. 자신들의 노고를 알아준 이가 있었다니...

한국에 기독교가 들어온 지 200여 년이다. 1943년 일제의 신사참배 거부문제로 경주의 모든 교회는 문을 닫았다가 해방 이후 재건되었다.

1915년 8월 1일, 경주 노동동에 세워졌던 오랜 역사의 중부교회는 '선교2세기' 기념으로 지역사회 기여를 기획했다. 6월 첫 주에는 '모범경찰관'과 '모범소방관' 각 1명을 추천 받아 노고에 대한 표창과 금일봉을 전달했다. 매월 셋째 주일예배를 마치면 교인들은 교회 일대의 대청소를 한다. 그리고 3D 업종 중 가장 힘든 환경미화원을 초대했다. 그간 몇 몇 도시의 쓰레기 대란을 본 적 있다. 낮은 곳에서 묵묵히 일하는 소중한 이들이 없다면 빛나는 역사도시 경주도 한낱 쓰레기더미에 묻힐 것이다. 이 행사를 해마다 치를 계획이라고 한다.

▲ 무신론자인 나는 교회의 십자가 향한 하늘을 보았다.

무릇 모든 종교는 교리자체의 의미를 되뇌기만 한다면 가치가 없다. 문제는 행동하는 양심의 실천이다. 비종교인이 종교인을 우러러보는 이유는 그들이 각별히 윤리적일 때다.

▲ 식당 바깥에서 일일이 배웅하는 교회관계자들

내가 상대의 입장이 되어서 생각하는 ‘역지사지’의 심정은 뜨거운 감정이입에서 나온다. 여름쓰레기는 사철 중 가장 곤욕스러운 처리과정이다.

▲ 뜨거운 날의 따뜻한 추억을 안고 차들이 빠진다.

중부교회는 그들에게 무언가를 베푼 것이 아니라, 고마움에 깊이 고개를 숙였을 뿐이다. 갑질이 판치는 세상에서 우월하여 고압적인 호혜가 아니라 진심을 전달하고자 정성을 다했다. 이만하면 우리 사회, 아직 희망이 있지 않은가. 취재를 하는 동안 아름다운 시간으로 행복했다.

편집: 이미진 편집위원, 이동구 에디터

이미진 편집위원  lmijin047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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