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박한 현실의 한없는 걱정과 우환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은택(恩澤)을 베풀어 주는 술의 또 다른 이름으로 '술은 근심을 쓸어버리는 빗자루' 라는 의미의 소수추(掃愁帚)가 있다. 근심 걱정을 잊게 해준다는 망우물(忘憂物)이라 함은 독일인들의 술을 '걱정을 부수는 기계' 라는 조르겐브레허(Sorgen Brecher)와 부합된 의미일 것이다. 동서고금을 통하여 인생은 즐겁고 경사스러운 일보다 어렵고 힘들 때가 더 빈번하여 희로애락(喜怒哀樂)의 좋은 반려로서 술을 가까이 하였다. 지혜의 물로서 술을 반야탕(般若湯)이라 부르는 것과 술을 즐겨하셨던 진묵대사가 불렀던 곡차(穀茶)란 말은, 불가에서 금기시 하는 술을 경계하기 위한 뜻의 미혼탕(迷魂湯)과 대비되는 의미이다. 이는 동절기 차가운 산사에서 수도하는 불자의 몸을 따듯하게 하고 취함이 없는 음식으로서 선인들이 선계에서 마시는 선약(仙藥)의 의미로 사용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물은 신이 만들고 술은 인간이 만들었다’는 말이 있다. 술은 인간이 만든 식품 중에 가장 오래된 역사를 가지고 있다. 머루나무 아래의 오목한 바위에 괴인 물을 먹고 이상한 행동을 하는 원숭이의 모습을 관찰하던 인류가 술을 알게 되었고 사람의 지혜가 발달하면서 그 나라의 주식과 일치하는 원료로 우수한 술을 빚어 그 나라마다 독특한 술 문화를 만들어 왔다. 물고기를 주식으로 하는 에스키모를 포함하는 몇몇 종족을 제외한 과일과 곡류를 먹는 모든 나라가 자기의 술을 가지고 있다.

▲ 솔송주 명인이 개평마을에 있는 솔송주문화관에서 술을 따르고 있다. 사진 박미향 기자(사진출처 : 한겨레 신문 http://www.hani.co.kr/arti/specialsection/esc_section/665219.html)

이러한 술은 각 나라와 민족의 역사, 문학 및 예술의 세계에 깊숙이 관여하고 있어 역사, 민속적인 기록이나 문인들의 시문 중에 술에 관한 내용이 무수히 많이 전해지고 있다. 일본 교토 다나베(田邊)의 사가신사는 일본의 술빚기를 전한 백제인 수수보리를 제신(祭神)으로 모시고 있다. 일본의 사케는 흩임누룩을 쓰고 있어 막누룩을 쓰고 있는 우리나라와는 다른 주조 방법이므로 귀화인의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일본학자도 있으나, 일본의 청주를 사케(Sake)라고 부르는 데는 우리말의 '삭았다(발효되었다)'에 해당하는 일본식 고어 사까 또는 사가라는 말에 유래되어 일본식 청주의 제조는 우리나라에 뿌리를 두고 있다 할 수 있다.

고려 후기 들어 청주, 탁주, 증류주의 3대 주종이 완성되어 우리나라 전통 전래주가 정착된 후 조선시대에 들어서서 술 빚기의 방법과 기술이 발전하고 지역마다 음식과 함께 더욱 다양해지면서 각종 문헌에 자세히 기록되게 되었다. 고사촬요, 음식디미방, 주방문, 지봉유설, 증보산림경제, 규합총서 등이 조선왕조 500년 동안 술에 대하여 체계적으로 기록한 대표적인 문헌들이다. 이들 문헌에 등장하는 한국의 전통술은 무려 1000여 종에 이르며 대표적인 명주로 삼해주, 백로주, 이화주, 부의주, 호산춘, 벽향주, 청명주, 이강주, 죽력고, 과하주 등이 유명하다.

▲ 전주 이강주의 술역사박물관. 조정형 명인이 술 내리는 것을 시연하고 있다. 이강주 제공(사진출처 : 한겨레 신문 http://www.hani.co.kr/arti/specialsection/esc_section/665219.html)

대한제국의 종말과 함께 일제의 수탈이 시작되기 전 19세기 조선말에는 가장 다양한 전통주의 제조가 전국적으로 이루어져 제조장 수가 15만개소 이상이었으나 1916년 주세령(酒稅令)을 실시하면서 자가제조의 규제를 실시하였고 급기야 1934년에는 완전히 우리나라 전통 가양명주의 맥이 완전히 끊어지고 말았다. 백제의 수수보리로부터 술빚기를 배운 일제의 조선 전통문화 말살정책과 면허에 의한 경제수탈로 우리 조상에 바치는 제주(祭酒)는 물론 가가호호 세시풍속 계절주를 포함하는 명가명주도 빚지 못하게 됨으로서 전통주 문화의 암흑기라는 비운을 맞게 된 것이다. 가양주의 다양성은 박목월 시인의 나그네에서 ‘…(중략) 길은 외줄기 남도 삼백리, 술 익는 마을 마다 타는 저녁놀 (중략)…’로 술을 빚던 우리나라의 향토적 정서를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고 있다. 조지훈 시인은 완화삼에서도 ‘…(중략) 나그네 긴 소매 꽃잎에 젖어, 술 익는 강마을의 저녁 노을이여 (중략)’ 로 술 익는 마을 나그네의 감흥을 노래하고 있다.

정부에서는 2016년부터 주세법을 개정하여 하우스막걸리 제도라는 소규모 주류면허 제도를 시행하여 막걸리, 약주, 청주를 업소에서 제조하고 판매할 수 있도록 허용하여 가양주 문화와 주막문화를 지원한다고 한다. 전통주의 다양성을 복원하고 우리농산물의 소비 확대를 위한 커다란 전환점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지역의 풍습에 더하여 한정된 농산물로 누룩과 덧술 재료로 사용하던 조선시대의 가양주 문화를 재현하기 위한 다양한 뒷받침과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2015. 12. 28. 전남일보에 게재된 글임)

김진만 전남대 생명산업공학과 교수

편집 : 박효삼 부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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