잿빛 하늘도 무거워라

경주역에 오신 백남기 농민

---잿빛 하늘도 무거워라

계속되는 여진과 태풍의 여파로 경주는 8일이 되어서야 분향소를 차렸다. 어제는 잠시 쾌청하더니 다시 구름이 작은 도시 경주의 하늘을 덮고만다. 

▲ 사람은 가도 꽃은 붉다

경주역 마당에 서성이는 백남기 농민, 오늘은 날씨조차 스산하여 여윈 그의 사진이 더욱 추워보였다.

▲ 제발 그가 노환으로 병들어 죽지 않았음을 인정하라

천재지변의 태풍과 범람하는 홍수에 경주에서는 두 분이 사망했다. 무척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는 불가항력의 자연재해다. 그러나 백남기 농민, 그는 한 닢, 풀이파리에 불과한 나뭇잎처럼, 동족이 뿌리는 물대포 앞에서 스러졌다.

▲ 생명에게 참으로 소중한 물, 생명을 앗아가는 무서운 권력의 힘

불통의 정권은 이견異見을 가진 자를 적으로 간주한다. 자꾸 하나가 되자고 한다. 북한의 세습독재와 다를 바 없는 철학이다. 통치자가 내 뱉는 '한 마음 한 뜻'은 오만이다. '한 마음'과 '한 뜻'을 선택하는 자유는 국민에게 있다.

▲ 이들이 바꿀 세상을 아이들에게
▲ 자유의 열망은 뜨거워서 바람 앞에 선다

다각적으로 합리적인 어떤 사안을 이룩하기까지 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완성에 이른다. 과정도 중요한 역사가 되며, 결론 역시 국민의 몫이다.

▲ 당신은 느닷 없이 진 들풀 한 닢

이미 정해진 틀 속에 국민을 가두는 것이 독재다. 다양성 존중은 말보다 훨씬 복잡하며, 예의를 갖춘 토의를 기반으로 한다. 소통하지 않는 명령에 불복종은 당연 시 된다.  

▲ 하얀 꽃상여만한 작은 분향소

     

인구 27만의 소도시에서 그나마 민주주의의 열망을 불씨로 끌어안은 사람은 극소수다. 작지만 옹골찬 각오들이 협소한 분향소에 자유와 진실의 힘을 응축시켰으리라.

▲ 국민은 늘 불통의 세상에 할 말이 많다

무시무시한 수압의 물대포 사건은 노무현 정권에서도 있었다. 두 분이 운명을 달리하셨고, 많은 이들이 경찰이 휘두른 방패에 찍혀 피를 흘렸다. 노무현 대통령은 침통한 음성으로 사과문을 읽었다. 공권력의 무분별한 사용에 대해 깊은 사려를 표시했다. 10여 년 전, 지금보다 더 서툰 민주주의의 실험시대였다.

▲ 잿빛 무거운 하늘 아래 순백의 소망은 곧 승천하리라

본시 배운 것도 가진 것도 내노랄 것 없이 허술하여, 국민의 눈 높이로 허리를 숙인 노무현 대통령 앞에서 검사들은 눈을 치떴다. 원래 나쁜 것은 본 받기 쉽다. 그는 당연히 경찰력 역시 제대로 장악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심의 대통령이라해서 정부의 모든 기관이 다 그러했던 것은 아니다. 아무튼 그는 정중히 침울하게 사과문을 읽었고, 과도진압의 폭력사에 이른 주검의 부검을 두고 이런 정치적 게임을 하지도 않았다.

▲ 지진 경고, 천 만 번해도 들어야할 말

천지가 흔들리는 재앙 속에서 대한민국은 지금 온전한가?

경주역 앞 하얀 천막에 나부끼는 늙은 농부 하나, 어느 새 가을이 되었고, 밤 바람이 무척 차다.

편집: 이미진 편집위원

 

 

     

이미진 편집위원  lmijin047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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