잿빛 하늘도 무거워라
경주역에 오신 백남기 농민
---잿빛 하늘도 무거워라
계속되는 여진과 태풍의 여파로 경주는 8일이 되어서야 분향소를 차렸다. 어제는 잠시 쾌청하더니 다시 구름이 작은 도시 경주의 하늘을 덮고만다.
경주역 마당에 서성이는 백남기 농민, 오늘은 날씨조차 스산하여 여윈 그의 사진이 더욱 추워보였다.
천재지변의 태풍과 범람하는 홍수에 경주에서는 두 분이 사망했다. 무척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는 불가항력의 자연재해다. 그러나 백남기 농민, 그는 한 닢, 풀이파리에 불과한 나뭇잎처럼, 동족이 뿌리는 물대포 앞에서 스러졌다.
불통의 정권은 이견異見을 가진 자를 적으로 간주한다. 자꾸 하나가 되자고 한다. 북한의 세습독재와 다를 바 없는 철학이다. 통치자가 내 뱉는 '한 마음 한 뜻'은 오만이다. '한 마음'과 '한 뜻'을 선택하는 자유는 국민에게 있다.
다각적으로 합리적인 어떤 사안을 이룩하기까지 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완성에 이른다. 과정도 중요한 역사가 되며, 결론 역시 국민의 몫이다.
이미 정해진 틀 속에 국민을 가두는 것이 독재다. 다양성 존중은 말보다 훨씬 복잡하며, 예의를 갖춘 토의를 기반으로 한다. 소통하지 않는 명령에 불복종은 당연 시 된다.
인구 27만의 소도시에서 그나마 민주주의의 열망을 불씨로 끌어안은 사람은 극소수다. 작지만 옹골찬 각오들이 협소한 분향소에 자유와 진실의 힘을 응축시켰으리라.
무시무시한 수압의 물대포 사건은 노무현 정권에서도 있었다. 두 분이 운명을 달리하셨고, 많은 이들이 경찰이 휘두른 방패에 찍혀 피를 흘렸다. 노무현 대통령은 침통한 음성으로 사과문을 읽었다. 공권력의 무분별한 사용에 대해 깊은 사려를 표시했다. 10여 년 전, 지금보다 더 서툰 민주주의의 실험시대였다.
본시 배운 것도 가진 것도 내노랄 것 없이 허술하여, 국민의 눈 높이로 허리를 숙인 노무현 대통령 앞에서 검사들은 눈을 치떴다. 원래 나쁜 것은 본 받기 쉽다. 그는 당연히 경찰력 역시 제대로 장악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심의 대통령이라해서 정부의 모든 기관이 다 그러했던 것은 아니다. 아무튼 그는 정중히 침울하게 사과문을 읽었고, 과도진압의 폭력사에 이른 주검의 부검을 두고 이런 정치적 게임을 하지도 않았다.
천지가 흔들리는 재앙 속에서 대한민국은 지금 온전한가?
경주역 앞 하얀 천막에 나부끼는 늙은 농부 하나, 어느 새 가을이 되었고, 밤 바람이 무척 차다.
편집: 이미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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