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빨갱이가 무엇인지나 알고 떠드는가?

노년유니온 부위원장 김병국 어르신은 1933년생이시다. 평안북도 용천군 신의주 이웃에서 태어났다. 천석꾼 부잣집에서 딸만 내리 여섯을 낳고 막내로 태어났지만, 선천적으로 병약하여 다섯살이 되도록 잠시도 혼자서 놀거나 걸어 다니지도 못하였다. 감기를 달고 살아서 숫제 이불보따리 속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오직 방 밖으로 나가는 기회는 병원에 갈 때 뿐 이었는데, 역시 이불로 둘둘 말아서 싸안아야만 다녀 올 수 있었다. 오죽 못견뎠으면 병원을 하나 지어서 원장을 모셔다가 원장님이 키우도록 맡겨야 할 정도였다.

이렇게 병약하게 자란 그가 중학교 1학년에 입학을 한 해가 바로 해방이 되던 해였다. 9월경에 공산정부를 세운 김일성을 앞세운 공산당이 학생들을 상대로 공산당 선전활동을 하였지만, 11월 18일 용암포에서 학생들의 비아냥이 문제가 되어서 체포와 탄압이 시작되었다. 이것이 원인이 되어 북녘땅의 학생들이 모두 모여 공산당을 반대하는 시위를 준비하였고, 그 행사는 학생들의 신의주행을 이상하게 여긴 공산당이 신의주로 가는 열차들을 막아 외부 학생들 참여 없이 신의주반공학생운동이 일어났었다.

이때 참여한 학생들이 월남해 만든 단체가 서북청년단이었다. 이들은 이승만 대통령을 위한 반공선발대가 되어서 전국방방곡곡을 누비며 반공선전과 반공을 앞세운 친정부 활동으로 반공의 대명사가 되었으며, 대한민국 국군세력의 주축이 되었었다.

그렇지만 이분도 제대 후 젊은 시절에는 오직 내 자신과 우리 가족을 위해서 열심히 일하고 돈을 모으는 재미로 살아 왔었다. 적어도 그날(2008년 5월 어느 날) 밤 광화문 광장에서 그 열일곱 살 소녀들을 만나기 전까지는 한 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서 2년마다 회사를 옮겨 다니면서 한 푼이라도 더 받으려고 아등바등 해가면서 돈을 모았다. 심지어 돈을 좀 더 벌기 위해서 목숨을 내걸고 월남에도 갔었다. 아니 그것도 가장 선발대로 가서 군부대를 만들 기본 시설을 하는데 앞장을 섰다. 베트콩이 무엇인지조차 모른 상태에서 월남 땅에서 함부로 공사를 한다고 덤빌 정도로 겁 없이 살아왔었다.

그러다가 2008년 광우병 촛불사태를 맞으면서 그의 인생의 터닝포인트를 맞았다. 겨우 열일곱살 소녀 때문에.

[해가 저문 시청 광장을 걸어가는데 “할아버지!” 하고 앳된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소녀는 “이거요!” 하면서 내게 촛불을 건넸다.]

“나는 이 순간에 ‘지금까지 내가 너무 나만을 위해서, 내 가족만을 위해서 살아왔구나’ 싶은 생각에 저 어린 열일곱 살 소녀에게 부끄러워 고개를 들 수 없었다. 그 순간 나의 인생의 가는 길은 지금까지의 내 중심의 작은 울타리 속에서 커다란 광장으로 활짝 열리고 말았다. 그리고 그냥 그 광장의 멤버가 되는 것이 즐겁고, 신나고, 열일곱 소녀처럼 낯을 붉히면서 소리소리 지르는 열정을 쏟아내기 시작하였다. 이때부터 나는 이제 나 김병국이 아닌 시민 김병국이 되었고, 사회 운동을 하는 사람, 광장의 투사가 되어 가고 있었다“라고 말한다.

그렇게 길거리의 투사로 살던 그에게 행운이랄까 새로운 조직을 만나게 되었으니, 바로 노년유니온이라는 단체였다. 세계에서 최초로 만들어진 연령별 노조인 노인노동조합이 노년유니온이다. 대한노인회처럼 국가 보조금이 타먹는 단체가 아니고, 어버이연합처럼 관제 데모꾼으로 온갖 욕먹는 짓을 하는 단체도 아니다. 오히려 이런 단체처럼 나라에 의지하고, 욕먹는 노친네들이 아닌 존경 받는 어른, 어른다운 어른으로 살아보자는 단체이어서 반갑고 정다웠다. 그는 이 새둥지에서 정말 새로운 세상을 만나고, 새로운 일들을 할 수 있게 되었다. “3년여의 활동은 그에게, ‘내 인생의 보람찬 날들'이었음을 여기 밝혀 보려한다. 고마운 열일곱 살 어린 소녀들 덕분에 만난 내 인생에 고마움을 표하면서....”

그러나 그는 이때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온 말 “종북” “좌빨” 이라는 말이 가장 가슴이 아파오고 억울하였다. 그래서 그는 외친다.

“신의주에서 누구보다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 나만을 위해 병원을 만들어서 보호를 받으면서 자랄 정도였던 내가 공산당으로부터 부르조아, 인텔리 계층인 인민의 적이라는 죄목으로 내몰려 북한에서 못살고 쫓겨났다. 원조 서북청년인 나에게 '종북', '좌빨'이라는 놈들에게 고한다.”

“지네들이 나 만큼 공산당에게 당해 보았는지?” 묻고 싶다.

“지네들이 나 만큼 공산당과 싸워 보았는지?” 묻고 싶다.

“지네들이 정말 종북 좌빨이라는 말을 할 자격이 있는지?” 묻고 싶다.

“원조 서북청년인 나는 신의주에서 신의주 학생반공의거의 현장에 있었고,

신의주에서 공산당에게 쫓겨 혈혈단신으로 대한민국에 정착하였으며,

군인으로 전쟁터에서, 월남에서, 일터에서 조국을 위해 몸바쳐왔다.“

“월남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벌어들인 달러는 우리나라 기간산업 시설의 기금으로 쓰여 산업화를 이루는데 공헌하였고, 건설현장에서 30여년 우리나라 건설의 한 몫을 담당하여 몸 바쳐 일했었다.”

“이런 나에게 ‘종북’, ‘좌빨’이라고 부를 자 있으면 나와 보라! 나와 겨루어 보자!”고 하고 싶다.

“이렇게 몸 바쳐 이룩한 나라를 아무런 공헌도 하지 않은 정치모리배들이 자기들만의 세력으로 독재하려는 모습을 볼 수는 없었다. 민중, 시민, 국민들의 뜻은 무시하고 자기 세력들만의 이권을 챙기고, 자기들만을 위한 정치를 하려는 사람들은 독재의 길로 가는 것이니까 싫다.”

“이런 독재로 가는 것을 고치자는 주장이 '종북', '좌빨'이라는 사람들이야 말로 바로 그런 정치를 하려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독재를 꿈꾸고 북한공산당처럼 독재정치를 하고 싶어 하니까, 그들이 '종북'이지 그걸 막자는 사람이 어찌 '종북'인가? 지금 우리나라에는 '종북', '좌빨‘ 소리를 입에 달고 사는 그들이 진짜 '종북'이고, '좌빨'이 아니겠는가?”

“공산당을 피해 나와서 60여년을 싸워온 나에게 누가 감히 '종북', '좌빨'이라고 부르며, 나에게 다시 북으로 가라는 놈이 누구인지?” 묻고 싶다고 외친다.

과연 그의 외침에 잘못이 있는가? 아니면 '종북', '좌빨'로 반대파를 몰아세우는 그들에게 잘못이 있는가?

편집 : 안지애 편집위원

김선태 주주통신원  ksuntae@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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