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민족을 냄비 근성으로 비하하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도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과연 그럴까? 냄비가 끓는 것이 어찌 냄비 탓이겠는가?

냄비 근성을 말하는 자들은 그 전제가 잘못되었다. 우리가 모든 음식을 냄비에 끓인다는 전제 말이다. 냄비가 쉽게 끓고 쉽게 식는 것은 그 근성 때문이 아니라 유용성 때문이다. 아무 음식이나 냄비에 넣어 끓이지 않는다는 말이다. 냄비에 넣어 빨리 끓어야 할 음식물은 냄비에 넣어 끓인다.

그러나 오래 끓여야 할 음식물은 냄비가 아닌 솥단지 같은 도구를 사용한다. 우리는 음식물의 특성에 따라 선별적으로 냄비를 사용하는 것이다. 통상적으로 냄비 근성을 말할 때 사회 현상에 대한 한국인들의 반응에 대해 그런 표현을 쓴다. 그렇다면 모든 사회현상에 대해 한국인들이 냄비 근성을 보이는 것일까?

한국인들이 사회현상에 대해 냄비 근성으로 여겨지는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그럴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시급하고 파급효과가 있는 사안이기 때문에 빨리 부글부글 끓어야 하는 것이다. 그 사안에 대한 문제의식을 전 국민이 공감할 필요가 있고, 시급히 개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쉽게 잊는 것 또한 한국인의 역동성을 고려할 때 급변하는 글로벌 환경에 대응하여 현실적 적응력을 갖추기 위한 필요성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모든 사회현상에 대해 냄비처럼 빨리 끓었다가 쉽게 식는 것은 아니다. 이를테면 민족 정체성이라든지 역사성과 관련된 사안이나 국가적 위기에 처해서는 단순히 냄비 근성으로 여겨질 수 없는 측면이 분명히 있다.

한국인들에게는 냄비만큼이나 유용한 도구가 있다. 바로 솥단지다. 음식을 조리할 때 냄비보다는 오히려 솥단지 같은 도구들을 더 많이 사용한다. 그런데 왜 '솥단지 근성'이라는 말은 없는 걸까? 한국인에게는 솥단지같이 끈기 있고 굳건한 근성이 내재해 있다.

한국인에게 면면히 흐르는 민족의식이나 역사의식에는 그런 솥단지 근성 같은 게 분명 내재해 있다. 다만 그 근성은 일상생활 속에서는 표출되지 않고 잠재적으로 작용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다가 어떤 계기가 있으면 일제히 떨치고 나서게 된다. 그것은 확실히 냄비 근성과는 차별화된 것이다.

우리는 지나친 자기비하적인 의식을 지니고 있다. 보다 정확하게는 민족비하적인 의식이라고 볼 수 있다. 오욕으로 점철된 한국 근대사를 볼 때 십분 이해할 수 있기는 하다. 그러나 지나치지 말아야 한다. 엄밀하게 말해 그것은 겸손도 아니고 냉철도 아니다.

그런 자기비하적이고 민족비하적인 발상은 자기와 견해를 달리하는 대상들을 비하하거나 폄하할 때도 쓰인다. 심지어는 최근의 촛불시위마저 바람이 불면 쉽게 꺼질 거라며 냄비근성을 연상시키는 발언을 일삼는 자들도 있다.

▲ 15차 촛불집회 장면- 한겨레 2.13일자,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계기로 표출된 촛불시위는 결코 냄비처럼 쉽게 끓었다가 금방 식을 그런 성질의 것이 아니다. 그것은 시민의식으로 대변되는 역사적인 자각과 민족적인 자각이 내재되어 있다. 60년도와 87년도의 민주화 투쟁이 오늘날 광화문 광장에서의 촛불시위로 재현되고 있는 것도 '솥단지 근성'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15차례에 걸쳐 열린 촛불집회는 '솥단지 근성'이라는 관점에서 봐야 할 것이다.

장작불을 떼는 가마솥에서 12시간 이상 오래 고아낸 뽀얀 곰국은 정말 맛깔스럽다. 그렇게 잘 우려낸 곰국은 식으면 어묵처럼 엉기지만 언제든 끓여 먹을 수 있다. 민주화를 위한 시민 사회의 투쟁은 그렇게 오랜 세월동안 고아내는 곰국과도 같은 것이다.

촛불시위에 대항하려는 일부 보수 세력의 반동 집회는 솥단지를 지피는 장작불에 찬물을 끼얹으려 하지만 찬물 몇 바가지로 냄비를 식힐 수는 있어도 솥단지를 식히기에는 어림도 없다. 애초에 태극기를 앞세운 관제데모 따위로 덮을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박사모를 필두로 한 태극기 집회는 그야말로 주인공을 돋보이게 하기 위한 악역 엑스트라 정도라고나 할까? 이를 단말마적 비명이거나 최후의 발악이라고 표현해도 무방할 것이다. 그야말로 발악은 발악에 불과할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냄비가 끓는 것은 그것을 사용하는 자들의 몫일 뿐 냄비 탓이 아니듯이 촛불집회라는 솥단지가 끓는 것 또한 역사적 전환점을 이루기 위한 시민의식의 단호한 의지와 굳건한 결의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는 광장에서의 승리를 쟁취하기 위한 것일 뿐만 아니라 '일상 속에서의 민주화' 실현을 위한 거대한 발걸음을 내딛는 과정이기도 하다.

 

편집 : 안지애 편집위원

심창식 편집위원  cshim77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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