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지는 우리 것] 이상직 주주통신원

우리 겨레는 예부터 ‘하선동력(夏扇冬曆)’이라 하여 여름이 가까운 단오 때엔 부채를 선물하고, 동지 때는 달력을 선물하는 것이 중요한 풍속이었습니다. 그 달력을 조선시대에는 특징에 따라 역서(曆書) 또는 월력(月曆), 책력(冊曆)이라고 불렀지요. 특히 조선시대 달력은 책 형태로 만들어졌기에 주로 책력이라는 이름을 많이 썼습니다. 책력은 단순히 월(月), 일(日)과 같은 시간의 흐름을 나열한 것에 그치지 않고 24절기와 예상 강수량, 풍, 흉년 예측을 기록하여 농사짓기의 지침서가 되었지요.

또 ‘이사 가기 좋은 날, 목욕하기 좋은 날, 씨앗 심기에 안 좋은 날’ 같이 각종 길흉일을 표기하여 삶의 지침서로도 활용되었습니다.

‘농자천하지대본’이었던 농경사회에선 24절기에 맞춰 만든 책력은 요긴한 선물로서 귀중한 대접을 받았는데 조선 전기에 1만 부 정도 펴낸 책력은 조선 후기에 30만부 이상 펴냈을 정도로 책력의 중요성은 시간이 갈수록 높아졌지요.

이러한 책력은 달력의 구실을 하는 한편 조선중기 서애 류성룡(柳成龍, 1542~1607)이 사용했던 책력인 대통력(보물 제160-10호)을 보면 정유재란(1597~98년) 상황이나 의학 내용 따위의 비망기(備忘記)가 적혀 있어 일기를 겸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달력은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나라가 독점적으로 펴내던 것이 민간이 맘대로 펴낼 수 있자 기업이나 정치의 홍보용으로 쓰이면서 달력의 발행량과 종류가 폭발적으로 늘어났습니다. 달력이 중요한 생활필수품이 됐다는 것을 뜻하지요. 그러나 슬기전화(스마트폰)와 슬기틀(컴퓨터)이 대중화한 지금엔 달력의 필요성이 상대적으로 위축되어 달력의 발행량이 크게 줄었습니다.

 

이상직  ysangle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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