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실의 어느 중국집에서 일하는 기홍씨(23)의 손과 팔은 흉터 투성이다.

일을 시작한지 4년이 넘었지만 잔심부름을 도맡고 있는 막내요리사이다.

얼마 전부터 셰프들이 출연하는 예능 방송이 유행함에 따라 대한민국에서는 요섹남 열풍이 불며 셰프라는 직업이 각광 받고 있다. 최근엔 한풀 꺾인듯하지만 여전히 스타 셰프들의 위상은 위풍당당하다. 인기가 높아진 만큼 자연스럽게 억대 연봉을 받으며 당대 최고 스타들만 찍는다는 TV 광고를 장악한 셰프들도 적지 않다. 중국집에서 4년째 일하고 있는 김기홍 요리사를 만났다.

▲ TV프로그램 '냉장고를 부탁해'의 한 장면

그의 하루는 아침 8시 반부터 시작 된다. 빠르게 머리만 감고 밥도 먹지 않은 채 집을 나선다. 집을 나서 자전거에 올라 탄다. 출근 시간인 9시까지 가게에 도착하기 위함이다. 그는 출근 후 12시간 동안 서서 요리를 한다. 그는 대략 하루에 짬뽕160개와 탕수육 40개를 만든다. 손님이 많을 때는 잠깐 쉴 틈 조차 없다. 12시간을 그렇게 일하다 보면 스스로가 기계가 된 것 같은 생각이 들기만 한다. 오후 9시에 일이 끝나 집으로 향한다. 일하느라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라면을 끓인다. 라면을 먹고 잠시 휴식을 취한다. 하루 종일 웍(중화요리에 사용하는 팬)을 돌리느라 끊어질 것 같은 손목을 어루만지며 잠에 빠져든다. 이런 하루가 일주일에 여섯 번씩 일어나는 기홍씨의 일상이다.

Q: 반갑습니다. 요리사의 꿈은 언제부터 갖고 계셨나요?

꿈을 가지기 시작한 때는 17살이고 실제 요리를 시작한 나이는 19살이에요. 원래는 아버지의 뒤를 따라 경찰이 되고 싶었지만 요리가 더 좋았어요.

Q: 요리사의 육체적 노동이 심한 것은 다들 익히 알고 있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리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그 이유는 간단해요. 스스로 재미있어서 하는 거에요. 육체적으로 정말 너무 힘들고 요리사의 직업특성상 자기 시간이 굉장히 부족하고 하루 종일 피로감에 찌들어 삽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리가 재미있습니다. 같은 요리를 해도 어떤 재료를 언제, 얼마나, 어떻게 넣는가에 따라 맛이 천차만별로 달라집니다. 그렇게 나만의 요리를 만들 수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어요.

Q: 요리를 하면서 심리적으로 가장 힘든 것은 무엇인가요?

반복되는 일상이 육체적으로 그리고 심리적으로도 가장 힘들어요. 일주일에 6일 12시간씩 기계처럼 똑같은 일을 반복 하다 보면 평생 이렇게 살아야 하나 싶어요. 요리가 재미있긴 하지만 일에 있어서 새로운 면은 거의 없는 것 같아요. 

Q: 요즘 스타 셰프 열풍이 불고 있는데 쿡방이나 예능에 나오는 스타 셰프들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세요? 

멋있죠. 한편으론 부럽기도 하고 가끔은 부정적으로 볼 때도 있어요(웃음). 물론 방송에 나오시는 셰프님들은 정말 실력과 경력이 출중하신 분들이세요. 하지만 방송이라는 특성 때문인지 요리사 라는 직업에 대해 약간은 지나친 미화가 되고 있는 것도 같아요.

Q: 예를 들면 어떻게 미화가 된다고 생각하세요?

방송에서 스타 셰프님들은 항상 멋진 요리를 만들고 사람들의 환호성을 받죠. 하지만 요리사의 현실은 방송에서처럼 그리 녹록지 않아요. 먼저 주방 전체를 관리하는 셰프가 되기 까지 걸리는 시간은 최소10년정도에요. 요리사는 12시간씩 고된 노동을 해도 대부분 박봉이고 건강에도 적신호가 켜져요. 일부 몰지각한 손님들에게 모욕을 듣는 경우도 다반사에요. 요즘 사람들은 ‘요리사’ 라고 하면 방송에 나오는 스타 셰프님들을 많이 떠올려요. 하지만 그 방송에서의 이미지는 실제 요리사의 모습과는 많이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요리사의 현실은 그대로인데 위상만 높아 진 것 같아요. 한마디로 빛 좋은 개살구죠.

Q: 그렇다면 그런 미화의 단점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요리사를 시작하면 처음부터 화려하고 예쁘기만한 요리를 할 수는 없어요. 그건 집에서 취미로만 했을 때 가능한 일이죠. 그렇기 때문에 방송만을 보고 셰프를 꿈꾸다 포기하는 친구들이 많이 생길 것 같아요. 방송으로 인해 요즘은 요리사의 진입장벽이 낮아졌지만 그 만큼 이직률도 높아졌어요.

Q: 김기홍씨가 생각하는 요리사로서의 성공은 무엇인가요?

당연히 방송에 나와서 스타 셰프가 되는 것이죠(농담). 저는 자신만의 가게를 차리고 한 달에 적어도 한번씩은 노인정에 가서 음식 봉사를 할 수 있는 여유를 가진 요리사가 되고 싶어요. 그것이 제가 생각하는 요리사로서의 성공입니다.

Q: 현업에 종사하는 요리사로서 쿡방으로 인한 장점은 무엇이 있다고 생각하세요?장점이라고 하면 요리계의 발전이라고 생각해요. 사실 그동안 요리사는 박봉에 고된 노동이라는 것만 부각돼서 사실 인기가 없는 직업이었어요. 하지만 쿡방으로 인해 인식이 많이 변화 된 것 같아요. 요리사에 대한 인식변화뿐만 아니라 요리사의 작업환경 변화에 기여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Q: 요리사를 꿈꾸는 친구들에게 마지막으로 한 말씀 하자면?

요리사의 길은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시작해도 많이 힘든 직업이에요. 미디어에 나오는 셰프들은 늘 멋지고 행복해 보이지만 그분들은 쉽게 그 자리에 오른 것이 아니에요. 그리고 요리사라고 해서 요리만 해서 성공할 수 있는것도 절대 아니고요. 요리는 기본이고 사회, 경제, 언어 등 다방면의 지식과 엄청난 인내심이 필요한 직업입니다. 요리 잘하는 사람들은 어마어마하게 많습니다. 정말 요리하는 것이 즐겁다고 느끼고, 요리사로서의 끝을 보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요리사의 길에 접어들기를 바랍니다.

 

편집 : 안지애 편집위원

홍승우 주주통신원  woo789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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