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인생은 마라톤이라 했던가? 쓰다는 걸까, 달콤하다는 걸까. 기원전 490년 한 병사가 마라톤 광야에서 페르시아군을 물리친 승리의 소식을 알리기 위해 뛰어와 아테네 시민들에게 “우리는 이겼노라” 말하고 그 자리에 쓰러져 숨졌다는 고사를 보면 결국은 달콤한 것인가 보다. 여기 달콤한 두 번째 인생을 사는 이가 있다. 대기업 홈쇼핑회사 임원, 서울시 옴부즈맨을 지내고 지금은 문화공간 온 협동조합의 이사다. 그는 석락희 한겨레 창간주주다. 마라톤은 자신의 삶과 나란히 가는 인생이다. 지난 17일 그는 아내와 함께 미국 보스톤에서 열린 국제마라톤대회에 참가했다. 딸 지영이의 응원 속에 보스톤 현지에서 페친들에게 보내온 소식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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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망의 보스턴마라톤대회가 악몽이 되다 (생애 89회차, 해외 4회차)

D-day! 현지 시간 4월 17일 6시, 아침에 대회장으로 버스를 타고 출발했다. 아직 시차적응이 안되었는지 밤새 편두통으로 2시간마다 깨어서 그런지 머리가 띵하고 온 몸이 찌뿌듯하다. 중간에 셔틀버스로 갈아타고서 대회장에 도착하니 벌써 인산인해다. 만국의 사람들이 다 모인 것 같다.

내가 속한 엔트리(2wave 8corral)출발시간은 10시 25분이어서 동료들과 함께 모여 사진도 찍고 대회측에서 제공하는 음식물도 함께 나눠먹으며 대기하다가 드디어 출발!!!

날씨는 땡볕에 영상 20'C가 넘어 달리기에는 너무 덥다. 금방 이마에 땀이 맺히고 유니폼이 땀에 젖어버렸다. 컨디션도 안 좋기에 과속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며 내리막을 내달렸다. 근래 훈련량이 꽤 되므로 내심 3시간30분이내를 목표로 해서 달렸다. 그런데 출발전에 혹시 몸에 좋을까 싶어 에너지쥬스를 2봉지나 마셨는데 그게 속을 답답하게 하고 생목이 오르고 난리다. 곧 진정되리라 생각하고 km당 5분 페이스로 계속 달려나갔다. 그런데 적응해서 잘 달려야 할 때인 16km지점부터 팔치기 하는데 팔이 뻐근하고 속도가 나질 않는다.

아니 벌써? 이런 적이 없는데.... 속도를 줄여 컨디션 회복에 중점을 두고 달렸다.
하프를 1시간 50분에 통과하는데 몸이 너무 무겁다. 이거 어떻게 하나? 앞이 캄캄하다. 3시간30분은 커녕 완주도 어려울 것 같다. 주로에서 시민들이 열렬하게 응원하는데도 힘이 나질 않는다. 25km지점에서 딸 지영이가 기다리고 있다 하니 거기까지는 일단 가보자고 마음먹고 뛰어 가는데 20마일(32km)지점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전화가 왔다.

애구 애구 거기까지 어떻게 가나? 할 수 없이 '걷다 뛰다' 모드로 전환한다. 응원소리가 귀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굴욕감과 패배감이 몰려온다. 해외마라톤은 기록과 상관없이 즐런해왔는데 집사람과 함께 동반주로 천천히 뛸 걸 이게 뭐야? 후회막급이고 창피해서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악전고투다.

존 켈리도 힘들었다는 상심의 언덕을 그렇게 올라갔다. 그리고 '상심의 언덕'이 끝나는 32km지점에서 딸 지영이를 만났다. 구세주다. 힘들지 않은 척하면서 인증샷을 찍고 "아빠 힘내!" 소리에 힘을 얻어 영차영차 달려나갔다. 미녀 응원단들이 키스 세례를 퍼부으며 응원을 했지만 나에게는 아무 감흥이 없었다. 오직 이 고통을 언제 끝낼 수 있을까에 집중되었다. 

그런데 의족을 한 여성주자가 나를 추월해 지나가고 키가 1m도 안되는 왜소한 주자가 내 앞에서 달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등에는 4시간 13분을 목표로 한다는 몸자보를 붙이고 힘차게 달리고 있었다. 와우! 대단하다. 저런 사람들도 힘차게 달리고 있는데 나는 이게 뭔가? 마음을 다지고 힘을 내어 본다. 마침 앞으로 남은 5km는 내리막이다. 이젠 절대 걷지 않겠다고 마음을 먹고 젖먹던 힘까지 내어 달려나갔다

조금씩 속도가 회복되고 머지 않아 저 멀리 피니시탑이 보인다. 스퍼트를 해본다. 그리고 폰을 꺼내 셀카로 사진도 찍고 드디어 피니시라인을 통과했다. 기록은 4시간 9분 30초로 최악이다. 하지만 스스로 장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포기하지 않고 여기까지 왔고 마지막 5km는 다시 회복해서 잘 뛰었으니.....

큰 교훈을 얻었다. 욕심을 내려놔야 하는데, '역시 욕심이 화를 부른다'는 사실을 절감했다. 즐거운 마라톤 여행이었어야 했는데 한순간의 욕심이 이런 악전고투의 고행을 초래하게 한다는 것을.....

보스턴마라톤은 나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PS : 김정옥 선수는 훈련도 별로 안했지만 한번도 걷지 않고 완주(5시간33분40초)했다고 자랑질을 하는데 저는 꼬리를 팍 내릴 수밖에..

편집: 이동구 에디터

이동구 에디터  do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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