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지는 우리 것] 마광남 주주통신원

우리민족은 백의민족이라고 예부터 전해오고 있다. 그런데 옛 문헌들을 보면 흰옷을 못 입게 한 때가 있었다. 숙종 17년(1691)에 흰옷을 금하는 영을 내렸다. 본래 나라의 법에 흰옷을 금하는 규정이 있었는데, 명종 을축년(1565, 명종20) 이후로 여러 번 국휼(國恤)을 겪으면서 그대로 흰옷을 입게 되었으므로 매양 중국 사람들로부터 비웃음을 받았다.

그래서 선조(宣祖)가 이에 대한 금령을 내려 사인(士人)으로 벼슬이 없는 자들도 홍의(紅衣)의 직령(直領)을 입는 자들이 많이 생기게 되었는데, 현종(顯宗) 때에 또 흰옷을 금하는 영을 내려 사대부들이 모두 이를 따라서 실천하였다.

그런데 이것이 몇 십 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에 또 흐지부지 폐지되고 말았으므로, 또다시 흰옷을 금하고 청의(靑衣)를 입도록 하였다. 영종 2년(1726)에 예로부터 나라의 복색(服色)이 각각 숭상하는 바가 있다. 우리나라는 동쪽에 있으므로 응당 청색을 숭상하여야 할 것이다. 그러니 위로 공경(公卿)으로부터 아래로 사서(士庶)에 이르기까지 모두 청의를 입도록 하라고 하였다.

13년(1737)에 이성중(李成中)은 이미 흰옷을 엄금하라고 하교가 있었는데 청의를 입는다고는 하지만 그 색깔이 매우 묽고 옅어서 나라에서 청의를 입으라고 한 본래의 취지에 부합하지 못한다고 하였던 것으로 보아 백성들이 입는 복식에도 매우 신경을 썼던 것 같다.

14년에 이덕수(李德壽)가 올린 상소문에는 만물은 동쪽에서 시작하여 서쪽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동방의 나라에서 서방의 색깔을 숭상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본다고 했다. 더구나 우리나라의 풍속이 흰색을 숭상한 것은 지난날의 역사에 많이 기록되어 있으니, 예를 들어 수서(隋書)와 송사(宋史), 그리고 명(明)나라 사람 동월(董越)의 기록 같은 것이 바로 이런 것입니다. 이와 같이 풍속이 이루어진 지 수천 년이 되었는데 지금 이것을 고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지 알 수 없습니다. 라고 하였는데, 임금은 가을과 겨울이 완성을 이루어 낼 수 있는 것도 봄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가 본래 흰색을 숭상하였다고 한 것이 비록 선유(先儒)의 말이기는 하지만, 이는 다만 세속에서 숭상하는 것을 말한 것에 불과하다. 우리나라는 청구(靑丘)에 위치해서 나라를 인(仁)으로써 개창하였으니, 청색을 숭상하는 것은 바로 인(仁)을 따르는 것이다.

43년(1767)에는 전에 흰옷을 금하라고 신칙할 때에 사람들이 더러 말하기를 성인 기자(箕子)가 조선에 올 때 그도 흰옷을 입었으니 이는 우리나라의 풍속이다. 성인 기자는 은(殷)나라의 말년을 당하여 무왕(武王)으로부터 해동(海東)에 봉해진 분으로서 그가 지은 맥수가(麥秀歌)를 보더라도 기자의 마음이 어떤 것이었는지를 알 수가 있다. 그리고 그분은 성인 무왕을 만나 홍범(洪範)을 진달하였으며 조선에 와서는 백성들에게 팔조(八條)의 법금(法禁)을 가르쳐서 현명하고 어진 교화를 후세에 남겼다. 그런데도 후세 사람들은 성인 기자의 가르침을 체득하지 못하고 단지 옷 색깔만 그리워하고 있으니 어찌 오활(迂闊)한 일이 아니겠는가? 라고 기록했던 것으로 보아 국정을 논하는 것이 지금보다도 더 민주적이었다고 보아진다.

이 글은 고전번역서인 임하필기 제15권 문헌지장편(文獻指掌編)에 실린 글이다.

 

마광남  wd341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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