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5월이 되면 떠오르는 잊지 못할 여학생이 있습니다...

그 여학생은 지금 이 세상에 없습니다. 지금부터 20년 전 이맘 때, 중간고사 기간(그때는 5월초였음)에 그만 학교 근처 아파트 12층에서 뛰어내려 꽃다운 나이에 이승을 하직하였기 때문이지요.

그때, 반포의 K중학교 2학년이던 그 이름 모를 여학생은 당시 학생부에서 교내봉사 처벌을 받고 있었습니다. (아마 후배의 금품을 갈취한 것에 연루되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교무실 청소 할 때 잠깐 보았던, 체격이 큰 편이고 안경을 쓴 해맑은 얼굴인 그 여학생이 중간고사 둘째 날에 등교하다가 근처 아파트로 올라가 목숨을 끊으리라고는 그 누구도 생각하지 않았지요.

그날 아침(부장교사이어서 학급조회에 들어가지 않고) 교무실에 혼자 있던 나는, 아파트 경비원에게서 걸려온 전화를 받고 떨리는 목소리로 교감선생님에게 사건을 전한 다음, 아파트로 한달음에 달려갔습니다. 경비원 아저씨와 함께 사건이 일어난 길가 옆 아파트 화단에 가보니, 잔디밭이 움푹 패어 있었습니다. “처음에 ‘쿵-’하는 소리가 나길래 뛰어나와 보니 어떤 여중생이 뒤로 넘어진 자세로 쓰러져 있더라고. 잡아 일으키려는데, 의식을 찾고 저 스스로 몸을 일으키는 거야. 그러더니 갑자기 눈을 하얗게 까뒤집더니, ‘쿨럭’하고 입에서 피를 토하는 거야. 이거 큰일났다싶어 119에 전화해서 앰뷸런스가 방금 성모병원으로 실어갔어. 나 이거야 원, 어린애가 왜 떨어져 죽을 생각을 했을까? 쯧쯧~”

그 자리에서 올려다보니 까마득히 높은 곳에 아파트 비상구 창문이 열려있었습니다. 그 때, 교장, 교감, 학생부장, 담임선생님이 와서 같이 성모병원에 갔습니다. 그러나 이미 절명했다는 슬픈 소식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한 시간 후에, 그 여학생의 모친과 언니가 혼비백산하여 그 자리에 왔습니다. (나중에 들으니, 아이의 부모는 최근에 이혼 별거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울적한 마음으로 다시 그 아파트에 가서 경비원아저씨에게 혹시 학생이 남긴 유류품이 없는지 물어보았습니다. 그런데 아저씨 말로는 책가방이 있었는데, 흰색 편지봉투가 몇 장 있어서 아까 학생부장 선생님에게 다 넘겨줬다는 얘기였습니다.(나중에 학생부장 선생님에게 물어보니, 편지는 받은 적 없고 책가방은 학부모에게 전해줬다고 하는 별로 믿음이 안가는 말만 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은, 교장/교감선생님이 ‘도대체 무슨 일로 아이가 꽃다운 나이에 죽을 생각을 했을까?’ 하는 안타까운 마음보다는 어떻게 하면 언론에 사고소식이 나지 않게 할까하는 생각뿐인 것 같았습니다.(지금 학교관리자가 되고 보니 그분들의 그때 마음은 이해되지만, 그래도 그건 아닌 것 같아요.)

그 후, 약 두어 달 정도 나는 자책감에 시달리며 술만 마시고 제 정신이 아니었습니다. ‘그때 내가 청소하는 그 아이에게 관심을 갖고 좋은 말 한마디 해주었더라면, 혹시나 마음을 돌이키지나 않았을까?’ ‘한 아이의 생명이 스러졌는데, 누구도 그 아이의 죽음에 일말의 도의적 책임도 지려하지 않고, 그냥 쉬쉬하면서 별로 안타까워하는 것 같지 않으니, 도대체 이게 무슨 교육인가?’ 하는 별별 생각이 다 들면서 무력한 나 자신을 혐오하였습니다.

그 이후 내가 (소위)겉으로만 잘나가는 젠체하는 교사나 학교행정에만 유능한 교육행정가가 되기보다는, 아이들 문제에 좀 더 관심을 갖고 그들의 미래를 생각하는 교육자가 되어보려고 발버둥치는(아직도 참된 교육자에는 한참 멀지만) 계기가 된 것은 전적으로 그 날의 안타까운 사연 때문입니다.

올해도 푸르른 5월의 어린이날에 그 아파트 화단에 장미꽃 한 송이를 하나 사들고 가서 놓고 오렵니다. ‘못다핀 꽃 한 송이’를 피우려는 마음을 다시금 다짐하면서......

P.S : ‘4.16 세월호 참사’로 어이없이 희생된 250명 가까운 학생들을 생각하면, 이 노래 가사가 더욱 가슴에 절절히 다가옵니다. 그 아이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하는 길이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옷깃을 여미고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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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못다핀 꽃 한송이 (김수철/ 1983) [노래 가사]

 

언제 가셨는데 안 오시나 한 잎 두고 가신 님아

가지 위에 눈물 적셔 놓고 이는 바람소리 남겨놓고

앙상한 가지 위에 그 잎새는 한 잎

달빛마저 구름에 가려 외로움만 더해가네

 

밤 새 새소리에 지쳐버린 한 잎마저 떨어지려나

먼 곳에 계셨어도 피우리라

못다 핀 꽃 한 송이 피우리라.

 

언제 가셨는데 안 오시나 가시다가 잊으셨나

고운 꽃잎 비로 적셔놓고 긴긴 찬바람에 어이하리

앙상한 가지 위에 흐느끼는 잎새

꽃 한 송이 피우려 홀로 안타까워 떨고 있나

 

함께 울어주던 새도 지쳐 어디론가 떠나간 뒤

님 떠난 그 자리에 두고두고

못다 핀 꽃 한 송이 피우리라

편집 : 심창식 편집위원

허익배 주주통신원  21hip@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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