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초등학교 2학년 때 6, 25 전쟁이 일어났다.

학교는 불타 없어졌고 공부할 곳이 없어졌다. 그 어린 나이에 학교에 가면 책을 싸가지고 다니던 보자기에서 책을 빼내 놓아두고 빈 보자기를 들고 왕복 10길을 걸어서 자갈을 가져 왔고 농촌에 사는 아이들은 볏짚을 가지고 왔다. 날라 온 자갈과 흙을 버무려 토담을 쌓고 볏짚으로는 영을 엮어서 지붕을 덮어 가교사를 만들어 오전 오후로 나누어 공부를 했다.

그것도 한계가 있었다. 비가 오는 날엔 안으로 굵은 빗방울이 떨어지는 교실 아닌 교실에서 공부를 했고, 남에 집 빈 창고를 얻어서 공부를 했다. 잊을 수 없는 것은 소금창고에서 공부할 때이다. 비가 오는 날이면 습도가 높은데 소금창고 안은 더 해서 몸이 간지럽고 견디기가 힘들어도 딱히 갈 곳이 없으니 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러다 날씨가 좋을 때는 가까운 잔디밭을 찾아 거기가 교실이 되어 공부를 했다.

그러다 보니 학교의 땅은 빈터가 너무도 많이 남아서 거기에는 보리를 심었다. 배가 고프니 식량을 해결하기 위하여 어쩔 수가 없었다.

그렇게 공부를 했고, 내가 5학년 꼭 이맘때인 것 같다.

심아 놓은 보리가 아직 익기 전이었다. 쉬는 시간에 보리를 꺾어 피리를 만들어 신나게? 불고 있었는데 누군가 등 뒤에서 가볍게 도닥거렸다.

깜짝 놀라 뒤 돌아 보는 순간 다시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 사람은 바로 교장선생님이셨다. 어쩔 줄 몰라 안전부절하는 나에게 교장선생님께선 미소를 지으시면서 보리를 무엇 하려고 심었느냐고 물으셨고 나는 밥해먹을 식량이라고 했더니 더 환히 웃으시면서 그걸 알면서 왜 익기도 전에 꺾었느냐고 묻는 말에 저는 더 이상의 답변할 말이 없었다.

참으로 많은 세월이 지났지만 보리가 누른빛을 띨 때가 되면 그때 일이 생각난다. 잊지 못할 박노만 교장선생님을.....,

그런데 요즘은 어떠한가. 스승님에서 선생님으로, 다시 선생으로 이젠 쎔이라고 부르니 지금의 학생들이 선생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한번 물어보고 싶다. 그 책임이 학생들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있음을 망각해서는 안 될 것이다.

편집 : 심창식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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