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사복을 입고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이 창피했고, 영화관에서 전쟁 뉴스를 보는 것이 창피했고, 수업이 끝난 후 이스트오렌지에서 뉴어크의 집까지 버스를 타고 오는 길에 석간신문에서 ‘바탄함락코’ ‘레히도르함락’ ‘웨이크 섬 함락’ 같은 일면 톱기사를 읽는 사람 앞에 앉아 있는 것이 창피했다. 태평양에서 미군이 연거푸 엄청난 패배를 거듭하는 상황에서, 그는 마치 그곳에 가기만 하면 자기 혼자서도 판도를 뒤집을 수 있기라도 하다는 듯 이곳에 있는 것에 창피함을 느꼈다.”

▲ 필립 로스의 <네메시스:Nemesis>

 

필립 로스의 네메시스는 한 남자가 스스로에게 내리는 단죄다.

1944년 진주만 공습으로 어지러운 미국, 설상가상으로 전염병 폴리오가 엄습한다. 이 혼란스러운 미국의 한 놀이터를 지키는 한 남자가 있다. 바로 버키 캔터다. 버키 캔터는 돈을 훔쳐 감옥에 간 후 달아난 아버지와 자신을 낳자마자 숨진 어머니 대신, 용감무쌍한 할아버지와 인자한 할머니 밑에서 자란다, 고집과 기세가 기운차고 의지가 강한 불굴의 정신이라는 의미로 이름 붙여진 ‘버키’지만 신체 미달로 전쟁에 나가지 못하고, 체육 선생님이 되어 놀이터를 감독한다. 버키 캔터는 비록 전쟁에 참전하지는 못했지만, 폴리오로부터 아이들을 지키는 것을 자신의 사명으로 임한다.

늘 건강하고 튼튼한 상태를 유지하며 폴리오의 위협에 대처해야 한다고 외치지만, 치료할 약도, 면역력을 줄 백신도 없는 폴리오. 심지어 원인조차 뚜렷하지 않아 애꿎은 모기와 파리 그리고 고양이만 죽어나갈 뿐이다. 이는 곧이어 인종간의 의심과 분노로 변질되고, 속수무책으로 죽음을 겪는 이들은 부질없이 죽음의 가치를 논하기까지 한다. 스물 세 살의 놀이터 감독일 뿐인 버키 캔터는 아이들과 부모에게 ‘훨씬 강한 어떤 존재’로 여겨 진다. 하지만 점점 속출하는 감염자와 사망자는 점점 그를 흔든다. 그러던 중 여자 친구 마샤가 일하고 있는, 폴리오로부터 안전한 캠프 인디언 힐에 공석이 난다. 버키 캔터는 폴리오로 인한 지침과 전부터 꿈꿔 온 안정된 가정을 이룰 수 있는 기회라는 생각으로 결국 인디언 힐로 떠난다.

캠프 인디언 힐은 마샤의 말대로 멋진 곳이었다. 더위와 폴리오로 찌든 위퀘이크와 챈슬러 애비뉴 학교와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었다.

“자연의 샘들-이것은 또 ‘폴리오는 없다’고 말하는 다른 방식이기도 했다. … 그는 더플백 끈을 어깨에 메면서 다시 시작한다는 기쁨, 부활이 주는 취할 듯한 환희를 느꼈다.-‘나는 살아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캠프 생활은 편하지만은 않다. 친구 데이브와 제이크처럼 전쟁에 참여하지 못했다는 낙오감과 폴리오로부터 도망쳤다는 죄책감은 계속 그를 따라다닌다.

“여기에 있는 아이들은 그가 없어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여기는 전쟁 지대가 아니었다. 인디언 힐은 그가 필요하지 않은 곳이었다.”

이는 마샤와의 대화에 있어서 괜한 종교 언쟁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하느님 이야기를 하자면, 인디언 힐 같은 천국에서 하느님을 좋게 생각하는 것은 쉬운 일이다. 그러나 1944년 여름 뉴어크에서는-혹은 유럽이나 태평양에서는-그렇지 않았다”

죄책감과 평화로움 사이에서의 줄타기도 잠시, 인디언 힐에도 폴리오가 닥친다. 캠프의 아이들 사이에서 감염자와 사망자가 나온 것이다.

버키 캔터는 자신이 보균자며 인디어 힐에 폴리오를 가져왔다고 예감한다. 정밀 검사 결과, 불행한 예감은 빗나가지 않고 그 또한 점점 마비된다. 전쟁에 참전한 친구 제이크의 사망 소식과 인디언 힐과 자신에게까지 나타난 폴리오는 결국 아슬아슬하던 그를 무너뜨린다. 버키 캔터는 평생 스스로 경멸하고 단죄하며 살아간다. 놀이터 감독으로 복귀하지 않고 교육계를 완전히 떠남과 동시에, 마샤와 꿈꿨던 안정된 가정마저 포기한 것이다.

“마비와 그뒤에 온 모든 것으로 인해 그는 사나이라는 자신감에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고 삶의 그쪽 면에서 완전히 물러났다. 대체로 버키는 자신이 성 역할에서 무능하다고 생각했는데, 이것은 남자라면 용감하게 가정과 나라를 지켜야 하는 국가적 고난과 투쟁의 시대에 성년에 이른 소년에게는 부끄러운 자기평가였다.”

버키 캔터는 그저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한 채 전쟁과 폴리오에 당해야 했던 무수한 사람들 중 하나였을 뿐이었다. 천벌과 율법의 여신인 네메시스. 그는 네메시스의 천벌을 받아야 했고, 스스로 네메시스가 되어 자신을 단죄하고 만다.

"대신 가혹한 의무감에 시달리면서도 정신의 힘은 거의 타고나지 못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의 이야기, 시간이 갈수록 그의 불행을 강화하고 치명적으로 확대하는 이야기에 아주 심각한 의미를 부여해 큰 대가를 치렀다. 챈슬러 놀이터와 인디언 힐 양쪽에 초래된 대재난은 그의 눈에 자연의 악의에 찬 부조리가 아니라 그 자신이 저지른 큰 범죄로 보였고, 이런 생각 때문에 그는 자신이 한때 소유했던 모든 것을 내놓고 인생을 망쳤다. … 그는 절대 자신의 한계를 믿지 않는데, 다른 사람들의 고통에 체념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 엄격한(善)을 천성적으로 짊어지고 있어, 자신에게 어떤 한계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면 반드시 죄책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한주해 대학생 기자  wngogks@naver.com

한겨레신문 주주 되기
한겨레:온 필진 되기
한겨레:온에 기사 올리는 요령

저작권자 © 한겨레:온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