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실천시민행동(동행) 공동선언문>

지난 3일 충북 보은에서는 동학 124주년을 기념해 전국에서 200여 명이 모이는 큰 행사가 있었다.

▲ 동행(동학실천시민행동) 로고와 현판

 

▲ 사람이 하늘이다

 

▲ 동학농민혁명군 위령탑

'나를 만나고(성찰), 너를 만나고(소통), 우리를 만나는(공심)마당'이라는 슬로건 아래 뭉친 현대의 동학인들이 124년전 동학 선배들의 마음을 이어받아 모였다.

▲ 동학 펼침막
▲ 보은민회의 역사적 장소에서
▲ 해월 최시형 선생과 그 손자 최인경동지

간단한 식사를 마친 후 가진 강의 시간에서 원광대 박맹수 교수는 "오늘날 촛불이 우연히 그냥 일어난 것이 아니고, 그 뿌리는 124년 전 동학에서 있었고, 3.1항쟁, 4.19혁명, 5.18 광주항쟁, 6.10 민중항쟁, 그리고 촛불로 면면히 이어져왔다"고 말하며 “그 바탕은 '공공성' 즉 공감하는 마음이다”라고 강조했다.

▲ 원광대 박맹수교수

동학은 수운 최제우 선생이 1860년 4월 5일 시천주 사상을 바탕으로 새로운 세상을 열고자 창시했다. 조선사회가 근대로 전환하던 시기 동학교단은 정부에 민권보호를 촉구하고, 부패한 정치를 질타하며, 외세침략을 경계하는 대규모 민회를 충북 보은에서 열었다. 또한 2대도주 해월최시형 선생이 1885년 5월 보은 장내리에 은거하고, 1887년 6월에는 육임소가 설치되며 보은은 동학교단의 구심체 역할을 하는 중앙본부가 되었다.

1893년 3월부터 한 달 동안 지속되었던 보은취회는 해월 최시형의 뜻에 따라 "하나는 도를 지키고 스승(수운 최제우)을 존경하기 위함이오, 다른 하나는 나라를 바로잡고 백성을 편안하게 하는 계책을 마련하기 위함"이었다. 보은취회에서 처음으로 보국안민, 척양척왜 기치가 내걸렸는데, 이는 봉건정부의 수탈과 지방관의 침탈 대상이 되어 급속히 몰락하고 있는 민중을 구제하려는 이념이었다.

보은집회 참가자들은 적게는 3만여 명, 많게는 7~8만여 명이었으며, 이들은 조그만 무기도 지니지 않았고, 민중 자신의 권리 보장을 위해 정치적 논의의 장을 필요로 하였다.

보은취회는 충청, 전라를 비롯한 경기, 경상, 강원에 이르기까지 전국에서 수만 명의 동학교도와 민중들이 보은 장내리에 모여 지역적 고립을 넘어 연대할 수 있는 장이 되었다. 연대할 수 있는 공통의 공간, 연대의 장소성으로서의 보은의 역사적 의미는 크다고 하겠다.

이러한 19세기 말 외세에 민족의 자주권이 침탈 당하고 탐관오리의 폭정이 깊어질 때 이 땅의 동학 민중이 주인의식을 공공히 갖고 그 동안의 민란적 성격과는 다르게 확실한 조직과 이념을 가지고 사회 변혁의 깃발을 높이 든 민족사 최초, 최대의 민회로서 동학민중이 이 땅의 동학민중혁명의 모태가 된 한국 근대 민족, 민중운동의 벼리가 되었다.

또한 보은 북실은 1894년 동학농민혁명의 마지막 북접전투가 일어난 곳으로 이 땅의 해방을 위해 산화한 동학민중의 넋이 깃들어 있는 곳이다.

혁명 당시 대도주 해월 최시형 선생의 대동원 기포령은 방법을 달리 했던 두 세력이 외세에 맞서 민족 대단결로 전쟁을 선포한 것으로 오늘날 남북관계에 있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설명하고 있다.

일본군과 관군을 상대로 최후의 전투를 앞둔 1893년 봄, 3만여 북접 동학군들이 보국안민과 척왜양창의를 기치로 이 곳 보은땅 서원계곡 초입의 옥녀봉 아래 장내리에 모여들었던 곳이다.

동학의 거두들이 모여있던 보은은 인근 군현 관아에서 관심을 집중시키는 땅이 된다.  동학 2대교주 해월 최시형이 기포령을 내린 직후 보은은 전국에서 무장한 동학농민군들이 몰려오는 목적지가 되었다.

충청도 전역은 물론 경기도, 강원도, 경상도에서 봉기한 농민군은 속속 보은 장내리로 모여들었다.

이러한 엄청난 동학교도들의 집결에 당시 고종은 어윤중양호도어사를 보내 해산을 종용하게 되었다. 이러한 조선왕조의 해산의지에 동학교단은 '아직 때가 아니다'라는 판단에 자진해산하기로 결정한다.

이런 상황에서 교주 최시형은 노약자를 먼저 물러가게 하고 젊은 교도들은 남아서 정부에 본연의 뜻을 항변하는 한편, 각지의 흩어진 동학교도들과 긴밀한 연락을 취하며 항쟁을 지속하였다.

이들은 장기주둔에 적합한 황간과 영동으로 이동하였으나 400여채의 초막이 세워진 장내리는 동학농민군이 기세를 떨치며 세력을 확장하던 중심지였다.

보은, 황간, 영동에 주둔했던 북접농민군은 통령 손병희의 지휘아래 논산으로 진군해서 남접의 전봉준 세력과 합체하였다. 우금치 전투에서 패배한 동학농민군은 남하했는데, 손병희가 인솔한 북접농민군은 전라도 순창까지 진입, 장수, 무주, 영동을 거쳐 보은으로 돌아왔다.

관군과 일본군 그리고 민호군이 사방을 에워싸고 추격하는 속에 북접농민군 대군은 숙영지 보은읍 종곡리 일대 북실마을 김소천가(보은읍 누청리에 위치)에 지휘본부를 두고 야심한 밤에 불의의 기습을 받는다.

이 기습으로 북접농민군을 비롯한 주민 2천5백여명이 숨졌다. 북실전투의 비참했던 한 시기는 한국사의 실상을 보여주는 사건이다.

북실마을의 야산에서 군데군데 피어나는 진달래는 생명이 약동하는 봄을 알리는 전령이기도 하지만, 갑오년에 이 땅에서 마지막까지 치열하게 싸우다 희생된 동학인들의 마지막 함성이기도 하다.

▲ 왼손이 탈극공연
▲ 가족들, 동지들과 공연관람
▲ 밤늦도록 어울림
▲ 장승 세우기

 

▲ 동학의 건달할배 채현국선생

밤늦도록 마당굿(왼손이 탈극공연)과 장승세우기 그리고 노래공연으로 신명나는 어울림의 시간을 갖고난 후 사람들은 군청에서 제공한 실내체육관으로 이동하였다.

각자 주제별로 모인 분임토의와 발표는 새벽2시까지 이어졌다.

주제별로는

1. 공동체 구현 2. 미디어 개혁과 청년육성 3. 문화(올리길) 4. 사회개혁과 적폐청산 5. 사드반대 6. 세월호, 생명존중, 안전사회 7. 민주, 인권 8. 자발적, 민주적 시민조직화 등이 있었다.

열띤 토론과 발표는 앞으로의 구체적인 실천방안이라는 숙제를 남기며 아쉽게 마무리 되었다.

▲ 주제별 토론과 발표(1)
▲ 주제별 토론과 발표(2)
▲ 주제별 토론과 발표(3)
▲ 주제별 토론과 발표(4)
▲ 주제별 토론과 발표(5)
▲ 주제별 토론과 발표(6)
▲ 주제별 토론과 발표(7)
▲ 주제별 토론과 발표(8)

이번 행사에는 세월호 유가족들과 여순항쟁 유가족들도 함께 했다.

특히 문화공간온의 조합원이기도 한 장경자님은 "제주 4.3, 대구 10월항쟁, 광주 5.18 등 모두 제자리를 잡았는데, 유일하게 여순항쟁만 아직도 반란의 딱지를 떼지 못하고 있다"고 아쉬워하며, "하루빨리 제대로 평가를 받았으면 좋겠다"는 간절한 소망을 밝혔다.

▲ 여순항쟁의 유가족 장경자여사
▲ 세월호 유가족
▲ 잠자는 아기들과 공동체 구현팀

춥고 불편한 잠자리를 마다하지 않고 잠깐이나마 눈을 붙이는 것도 124년 전 동학 선배들의 처지에 비하면 호사 아닐까?

눈을 감자마자 이동채비로 분주한 소리에 다시 눈을 뜬다.

진수성찬을 마치고 박맹수교수로부터 동학 2강을 듣는 호사를 아침부터 누리니 부자가 되는 느낌이다.

고은광순, 안승문 공동대표가 준비한 <동학실천시민행동(동행) 공동선언문>을 김 응규동지가 우렁찬 목소리로 읽어내려간다.

한마디 한마디 가슴에 와닿는 명문이었다.

< 동학실천시민행동(동행) 보은모임 공동선언문 >

공주취회, 삼례취회를 거쳐 1893년, 수만 명의 동학도들은 나라를 바로잡고 민을 편안하게 하겠다는 의지로 이곳 보은에 모였고 수만 명의 하소연을 조정이 계속 묵살하자 1894년 민은 가을부터 전국적인 저항을 시작했다. 그러나 고종은 외국 군사를 빌어 민을 탄압하려 했고 약삭빠르게 개입한 일본은 신무기를 이용해 한양 이남의 동학도들을 전멸시켰다. 외무대신 김윤식은 ‘믿을 것은 일본군 뿐’이라며 왜군 뒤에 숨어 동학도들의 섬멸을 부탁했다. 지배층과 피지배층은 다른 세상에 속해 있었다. 이어진 삼십여 년간의 일본강점이 원인이 되어 남북은 분단된 채로 다시 70여년을 보내고 있다.

해방 이후 친일, 숭미 정권은 최근에 이르기까지 남북분단을 이유로 사상의 자유를 억압하고, 역사를 왜곡시키거나 민을 감시하고, 선거를 조작하며, 끊임없이 남북의 긴장과 갈등을 이용해 전쟁의 공포를 조장해왔다. 물질만능의 천박한 자본주의 속에서 민은 경쟁에 내몰려 함께 잘 사는 것 보다 남보다 잘 살거나 남을 밟고 홀로 우뚝 서는 것이 성공이라 길들여졌다. 그러는 동안 분단을 통해 이득을 본 기득권 세력은 민을 개돼지라 칭하며 분단을 고착시키기 위한 술수를 부려왔다. 최근 드러난 청와대, 국정원, 국방부, 재벌들의 국민 속이기와 국민 길들이기는 120여년 전 서로 다른 세상에 속해 있었던 지배층의 작태와 전혀 다르다고 할 수 없다.

지난 겨울 우리는 촛불을 들어 민을 기만하는 지배권력을 끌어내리고, 합법적이고 평화적인 방법으로 새로운 지도자를 뽑았다. 촛불혁명으로 태어난 새 정부는 올바른 역사의식과 뛰어난 정치적 역량으로 쌓인 문제들을 하나하나 모두 청산하기를 희망한다. 무엇보다 지도층과 민이 다른 세상에 속해 있지 않음을 뼈 속 깊이 새겨 나라의 주인공으로 나란히 손잡고 나아가기를 희망한다.

그러나 함께 잘 사는 미래를 고민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들의 안위와 기득권을 강화하기 위한 술수를 아끼지 않았던 구태세력들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그들의 집념은 기득권을 놓치지 않기 위해 나라를 팔아먹었던 조선말기 양반들의 그것보다 덜하지 않을 것이다.

갑오년 12월 17일 밤, 이곳 보은의 북실마을(종곡)에서 살을 에는 추위 속에 관군과 일본군 200여 명은 2600여명의 동학도들을 살육했다. 동학도들은 거의 전멸되다시피 했다. 그러나 21세기, 동학실천시민행동으로 다시 뭉친 우리들은 19세기 선배들이 피 흘리며 사라진 이 땅에서 다시 일어서려 한다.  두 번 다시 한반도의 누구도 외국의 군대에 의한 진압대상이 되게 하지 않으리라. 두 번 다시 지배자가 개돼지 취급하는 피지배자인 민으로 살지 않으리라.

광장에서 흔들리지 않고 꾸준히 불탔던 촛불은 이제 전국 226곳의 시군 구에서 흔들리지 않고 꺼지지 않는 촛불이 될 것이며 삼천리 방방곡곡에서 민이 역사의 주인공이 될 것이다. 그를 위해 우리는 다음과 같이 결의한다.

- 너와 나, 사람이 하늘이라는, 모두가 귀한 존재라는 동학의 얼을 깊이 새긴다.

- 남북의 분단으로 깊이 새겨진 한반도의 상처를 해결하기 위해 적극 나선다.

- 지역에서 뜻을 같이 하는 개인과 단체와 연대하여 사랑, 평화, 자유, 우애를 다지며 지역을 출발점으로 한반도 전역에 평화와 행복이 깃들기 위해 필요한 일들을 찾아서 한다.

-전국의 동학실천시민행동 조직은 서로의 정보를 공유하며 격려하며 흔들리지 않는 한반도의 주역으로 성장해 나간다.

-새 정부의 적폐정산을 앞에서 이끌고 뒤에서 밀며 사드반대, 북미간 평화협정 체결 등 시급하고 당면한 사건에 대해 공동 대응한다.

      2017. 6. 4. 동학실천시민행동 보은취회 참가자들 일동

 

돌아오는 길에 성주 소성리에 들러 고군분투하고 있는 마을사람들에게 작으나마 힘을 보태기로 하였다. 길가 양쪽이 참외밭으로 즐비한 평화로운 소성리는 전쟁무기와는 어울리지 않는 곳이었다.

▲ 성주 소성리에서

이 곳에는 평화를 지키는 평화로운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켤코 이 땅에 전쟁이 있어서는 안되기에...

▲ 소성리의 평화를 지키는 사람들

연단에 오른 동학의 어른인 김성순(88) 선생이 수운 최제우의 화결시 일부를 소개하면서 아리랑 음률에 맞춰 쩌렁쩌렁한 목소리를 뽐내었다.

방방곡곡행행진 수수산산개개지 / 방방곡곡 걷고 걸어 내 고향 산수를 샅샅이 살펴보자

송송백백청청립 지지엽엽만만절 / 소나무 잣나무가 서로마다 서서 수많은 마디로 얽혀 있듯이 각자가 독자성을 살리되 서로 연대하라

노학생자포천하 비래비거모앙극 / 늙은 학이 새끼를 쳐서 천하에 퍼뜨리듯 우러르고 사모하는 마음이 극진하게 하라

▲ 김성순선생

소성리 주민들이 정성스레 준비한 식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김천에 들렀다.  김천에서 포도농장을 하고 있는 김성순 선생 댁에 들러 포도나무에 대한 이야기와 시원한 포도즙을 대접받고 행복하게 사시는 모습을 들러보고 왔다.

▲ 김천의 김성순선생 포도농장 앞에서

올라오는 차에서 간단한 노래와 시를 곁들인 여흥을 즐기며 1박 2일의 아쉬움을 달랬다. 교대역에 강남동지들을 내려주고 종로의 문화공간-온에 내린 10여 명이 헤어지기 아쉬워 시원한 막걸리에 목을 축였다. 각자 자기분야에서 최선을 다하는 아름다운 사람들, 이 번 여행은 '나를 만나고(성찰), 너를 만나고(소통), 우리를 만나는(공심)' 아주 소중한 여행이었다.

편집 : 안지애 편집위원

김진표 주주통신원  jpkim.international@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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