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제10회 임란의사 추모백일장

지난 6월 3일 토요일, 경주 황성공원 임란의사 추모탑 아래서 제10회 임란의사 추모백일장이 열렸다. 초중고와 대학일반부 참석인원이 423명이었다.

1592년 조선은 조총을 앞세운 왜적의 침입을 받았다. 나라 곳곳에서 의병이 일어났다. 경주부를 탈환하기 위한 132분의 의병장이 문천(현, 남천)에 모였다. 임란사에 기록된 '문천회맹'이다.

▲ 김병호 임란추모회장님

그 어떤 탁월한 이도 생명을 두 개나 세 개 부여받지 않으며, 아주 빈천한 처지라도 목숨은 평등히 주어진다. 이 하나 뿐인 생을 이타심으로 희생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나라를 구하기 위해 죽음을 불사한 의병은 거룩한 대인이다.

▲ 경주문인협회 김형섭회장님
▲ 임란의사 추모백일장 정민호 심사위원장
▲ 경주시의회 문화예술위원장 김동해 의원님.

사사로이 제 개인의 치부나 가리고 출세지향의 호의호식을 꿈 꾸는 이가 늘 높은 자리를 차지하는 현실에서 더욱 그리운 이들이 의병이다.

▲ 백일장 산문부문 대상. 경산 사동고등학교 1학년 김수지.

  

'우리 나라'는 '나의 나라'인 동시에 알 수 없는 타인들과 매개를 이루는 불확실성의 연계를 통칭한다. 내가 아닌, 그 누구의 것일 수도 있는 연관은 직접적 책임감 등에서 일면 소홀할 수 있다. 나라의 주인은 '나'다. 내가 지키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 태생적 숙명관계가 국가와 개인의 구성이다. 애국은 선택의 여지가 아니고, 나를 지탱하는 필수다. 

6월은 호국의 달이다. 이 한 달만이라도 우리들은 가슴에 손을 얹고 '나라' 곧 '국가'라는 의미를 새겨봤으면 싶다. 하나의 영토 위에 한 민족으로 태어나 매일 새로운 역사를 쓰는 지금까지 '우리'는 왜 분열하는가? 21세기에 와서도 왜곡의 실체가 역력한 낡은 이념대립이 언제 해체될 것인가? 건강한 국가는 건강한 국민이 만든다.  

수많은 호국영령들이 오늘의 우리에게 어떤 길을 제시하는지 생각에 잠기는 6월이다. 오늘은 특히 현충일이다.

현충일은 나에게 특별한 추억들을 남겼다. 나의 아버지는 토건회사를 운영했다. 경주 황성공원 안 일본의 신사(神社)를 허물고, 그 자리에 최초의 충혼탑을 건립했다. 질이 뛰어난 적송으로 지어진 신사의 목재들이 우리집 마당에 즐비했다. 거의 땔감으로 쓰이고, 아주 반듯한 판자는 널뛰기에 적합했다. 나는 어렸지만 일본의 악랄함을 귓등으로 들은 터라 널을 뛸 때면 뒷꿈치에 야무진 힘이 들어갔다.

충혼탑의 둘레는 김만술 조각가의 해태상이 지켰고, 탑의 후면에는 한국전쟁 전사자의 명부를 보관하는 함이 내제되었다. 어떤 연유에서인지 그 함의 열쇠를 5년 간 아버지가 지녔다. 매년 5월 초 중순 쯤이면 명부가 우리집 마루에 펼쳐졌다. 응달에서 책장을 넘기며 거풍을 시키는 작업을 했다.

이 광경이 소문이 나버렸다. 경주시와 월성군 일대에서 서서히 몰려오는 사람들이 해가 거듭할 수록 늘어났다. 어떤 이는 마루나 마당에서, 심지어 대문이나 골목에서까지 흰옷 입은 사람들이 삼삼오오 둘러앉아 대성통곡을 했다. 그냥 울음이 아니고, 한 편의 구구절절한 사연을 사설로 엮어 멀쩡한 이웃들까지 눈물 짓게 만드는 비극이었다.

원치 않아도 얻어버린 이름의 '유가족'들은 명부의 이름 석 자를 직접 보고 확인하는 그 절차에서 마치 상봉하듯 감격에 겨워했다. 눈물은 애달픔의 마지막 언어이며, 기쁨의 사무침에 막다른 언어였다.

가슴에 커다란 바람구멍이 난 그들은 허청허청 걸어오면서도 빈 손으로 방문하지 않았다. 콩이나 팥, 쌀이나 찹쌀 등 한 두 되 남짓을 광목보자기에 싸매 내밀었다. 그리고 손수 빚은 탁주를 가져오는 이도 있었다. 마치 명부의 그리운 이름을 나의 아버지가 거두어 키우듯 그렇게 여겼다.     

건설업자답지 않게 감성이 철철 넘치던 나의 아버지는 탁주에 취하고, 슬픔에 취해, 몇 날 며칠 고주망태가 되었다. 5월이면 엄마는 전전긍긍 현충일을 두려워했다.

전장에서 산화한 그 젊은 피는 누군가의 아버지, 누군가의 형 아우, 누군가의 자식이었다. 그 느닷없고 황망한 이별은 애국이라는 이름으로 마감되고, 혈육의 뼈에 사무친 그리움은 호국이라는 작명으로 남았다.

천 만 번 소망해도 좋을 평화.

전쟁 없는 지구별과 비폭력으로 통일된 나의 나라를 천 만 번 소망한다. 

 

편집: 이미진 객원편집위원

   

 

이미진 객원편집위원  lmijin047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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