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원 김홍도가 1791년 6월 15일(음력) 유두절에 그린 <송석원시사야연도>

우리의 명절이 모두 다 그렇듯이 유두의 유래에 대해선 확실치 않으나 고려사20권(명종15년,1185년 6월조)과 고려사절요 13권에 시어사(侍御史) 두 사람이 환관(宦官)과 함께 광진사(廣眞寺)에 모여서 유두음(流頭飮)을 하였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나라 풍습에 유월 보름날에 동류수(東流水, 동쪽으로 흐르는 물)에 머리를 감아 불상(不詳)을 제거하고 모여서 술을 마시니 이를 유두음이라 한다'고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고려 이전에도 있었다고 보아진다.

한편 삼국사기 가락국기(오주연문장전산고 경사편 5, 논사류1)에는 후한광무제(後漢光武帝) 건무(建武) 18년(42) 3월에 가락(駕洛)의 구간(九干)이 물가에서 계음(禊飮, 계자는 부정을 씻기 위한 목욕재계의 행사를 의미함) 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고려 희종(熙宗) 때의 학자인 김극기(金克己)의 저서, 김거사집(金居士集)에는 동도(東都, 경상도 경주) 풍습에 6월 15일 동쪽으로 흐르는 물에 머리를 감아 액(厄)을 떨어버리고 술을 마시고 놀면서 유두잔치를 한다고 기록하고 있다.

유두라는 말은 원래 동류수두목욕(東流水頭沐浴)이란 말에서 유래되었다고 하며 그냥 수두(水頭)로도 표현하는데 이를 이두식으로 해석해보면 물머리, 물마리, 물맞이로 해석된다고 한다. 즉 본래의 뜻은 동쪽으로 흐르는 물에 머리를 감고 목욕을 한다는 말이다. 유두날의 대표적인 풍속으로는 유두천신(流頭薦新)을 들 수 있다.

유두천신이란 이 무렵에 수확된 곡식이나 과일로 사당에 제사를 지내는 것을 말한 것이다. 농촌에서는 논두렁이나 밭두렁에 음식을 진설하고 농신(農神)에게 풍년을 기원하는 고사를 지내기도 하였다.

이렇게 고사를 지내고 나면 가까운 곳에 위치한 동쪽으로 흐르는 맑은 시냇물이나 계곡을 찾아 머리를 감고 준비한 햇과일과 절기음식으로 즐겼는데, 이를 유두연(流頭宴), 혹은 유두잔치라고 하였다.

머리를 감는 것은 부처님 오신 날에 행해지는 관불의식과 연관성이 있는 세시풍속이라는 설도 있다.

유두에 주로 만들었던 음식들은 유두면, 건단, 수단떡(水團餠), 상화병(霜化餠)과 이 시기에 수확되는 햇과일들이었다.

혹 못된 감사들은 가까운 이웃의 수령과 옆 고을의 기생들을 불러서 크게 유두회(流頭會)를 열었다.

이튿날 이른 아침에 온백원(溫白元, 적취(積聚)와 황달(黃疸) 등을 치료하는 한방(漢方) 환약인데, 그 약제 속에 파두(巴豆)가 들어 있어서 많이 먹으면 설사가 남)을 소주에 타서 기생 중에 살찌고 튼튼한 자 10여명을 골라 여러 그릇을 먹이는데 먹지 않는 자는 억지로 먹였다. 그리고는 한 방에 모두 가두고 문을 굳게 잠근다.

때가 몹시 더운 때이므로 더워서 땀이 비 오듯 흐르게 하면 기생들의 뱃속에서는 천둥소리가 나면서 오장이 뒤집혀 모두가 설사가 난다.

문은 잠겨 있고 기생들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옷을 벗어 개켜서 등에 지기도 하고 혹은 말아서 머리에 이기도 한다. 그리고는 모두 벽을 의지하여 쪼그리고 앉아서 설사가 나오는 데로 내버려 둔다.

피차에 급히 쏟느라 누구를 살필 수도 없고, 온 방안은 더러운 물이 고여 마치 물속에 앉아 있는 것 같다. 계속 설사를 하다 보니 기진맥진하여 서로 똥 속에 누어서 원망하며 부르짖는 소리가 나오고 고약한 냄새는 방에 가득하여 감히 가까이 갈 수가 없다.

이때 감사는 수령들과 함께 이 모습을 엿보며 손뼉을 치며 크게 웃는다. 날이 저물어 비로써 내놓으니, 모두 똥이 몸에 묻고 발에 묻어서 모양이 귀신과 같으므로 부끄러워 감히 얼굴을 들지 못하고 스스로 울 뿐이었다.

이것은 다만 그 감사의 희학(戱謔)에 있어 여사일 뿐이니, 그 밖의 것이야 어찌 말할 것이 있겠는가? 이 내용은 대동야승 죽창한화(大東野乘, 竹窓閑話, 찬성(贊成) 이덕형(李德泂) 저)에 실려 있는데 계해년(1623,인조1년)에 반정이 일어나자 그 감사는 큰 죄를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조선시대에는 이 명절을 크게 여겼던 것 같다.

육당 최남선의 조선상식(朝鮮常識)이나 일본소설 금색야차를 장한몽으로 번한하여 이수일과 심순애의 순애보를 만들어낸 행남 이승만이 쓴 풍류세시기(風流歲時記) 등이 유두날 머리 감기 좋은 장소가 나온다. 서울의 경우 정릉 계곡과 지금의 사직공원이 있는 황학정(黃鶴亭) 근방, 종로구와 성북동의 경계로 관세음보살이 있는 보타락가산에서 유래한 낙산(駱山) 밑 등을 명소로 꼽았다고 했던 것으로 보아 겸하여 풍류를 즐기기도 하였던 것 같다. 이러한 명절들이 이제 희미한 기억 속에 사라져가고 있는 것이 아쉬울 뿐이다.

편집 : 김미경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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