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지는 우리 것] 마광남 주주통신원

고려조 고종 때 정언(正言, 정육품) 이영(李潁)이 완도에 유배되어 귀양살이 할 때 그의 숙부인 혜일대사가 이곳에 와서 상왕봉(象王峰) 아래 대지골에 중암이란 암자를 짓고 귀양살이를 하였다. 얼마 후에 정언 이영은 귀향이 풀려 예부상서(禮部尙書)란 벼슬에 올라 귀경하였으나 혜일대사는 홀로 산수를 즐기며 암자를 지켰다. 혜일대사가 입적한 후 그의 문하승들이 혜일스님의 부도(浮屠)를 중암사에 세웠다. 혜일대사가 당시 상왕봉을 위시한 주위의 절경 등을 찬미하여 읊었던 시들이 있다.

상왕봉(象王峰) 원문:

창취번군목(蒼翠繁群木) 운하열기년(雲霞閱幾年) 월승불호랑(月昇佛毫朗) 탑전상두시(塔轉象頭施) 澗木宣眞偈(澗木宣眞偈) 암화창범연(岩花敞梵筵) 가명자원묘(佳名自圓妙) 물위랑상전(勿謂浪相傳)

풀이: 푸릇푸릇 나무들이 우거졌는데, 구름과 노을은 몇 해나 지났는고? 달이 뜨니 부처님의 백호(부처의 양 미간의 흰털)가 밝고, 탑이 구르니 코끼리 머리 도는구나. 시냇물은 진게(불법의 글귀)를 외우는 듯하고 바위 꽃은 자리를 꾸몄구나. 아름다운 이름이 스스로 원묘라 부질없이 전한다고 이르지 말라.

혜일스님은 청산도에도 건너가 백련암(白蓮庵)이란 절을 짓고 살았다고 하며, 지금 읍리동천에 불상을 각(刻)한 반석이 세워져 있는데 이것은 혜일스님이 창시했던 유지에서 옮겨다 놓은 것이라 하나 미상(未詳)이다.

혜일스님은 청산도 백운암에서도 다음과 같은 시를 읊었다.

일산사면쇄운연(一山四面鎖雲烟) 심한송문향창년(深寒松門向蒼年) 지유한풍명옥각(只有寒風鳴屋角) 경무유객도암전(更無遊客到庵前)

산의 사면이 구름 연기에 싸여있는데, 솔간을 깊이 닫고 노경(老境)을 지낸다. 다만 찬바람이 처마 끝에 울릴 뿐 암자 앞에서 노니는 나그네 다시없구나.

조면안기한거락(早眠晏起閑巨樂) 갈음기찬본분화(渴飮飢餐本分樺) 기득소인하고(己得疎 人下顧) 수행조료반인연(修行粗了半因緣),

일찍 자고 늦게 일어나 한가히 사는 것이 낙이오, 목마르면 마시고 배고프면 먹으니 중의 본문이 퇴색하였네. 이미 성글고 게을러 남이 돌아보지 않으니 수행은 헛되이 끝나고 인연은 반 밖에 못 맺었구나. 라는 글을 남기기도 하였다.

여기에서도 우리의 산 이름이 상왕이란 것을 알 수가 있다.

상왕산에 있었던 암자들을 모두 복원하여 옛 명성을 다시 찾을 수는 없는 갓일까?

마광남  wd341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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