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5일 단풍구경하러 운악산을 올랐다. 사실 11월 초순은 운악산 단풍 절정기는 아니다. 10월 중순이후가 절정이다. 그래도 올 마지막 단풍 구경이다 생각하고 갔다.

운악산 등산은 4번째다. 운악산은 감악산, 관악산, 송악산, 화악산과 더불어 경기 5악에 속한다. ‘악’ 소리가 날 정도로 바위가 많고 산세가 험하다. 이전 세 번은 그저 운악산의 아름다움에 반해 걸었는데... 이젠 내가 힘이 달린 건지... 겁이 많아진 건지... 바위에 박힌 쇠발굽을 밟고 올라가는 길을 쇠줄을 잡고 벌벌 떨면서 갔다. 예전에도 이렇게 무서웠었나? 내려오면서 운악산 병풍바위는 이제 그만 봐야 될라나 보다 생각이 들 정도로 힘든 산행이었다.

▲ 정상으로 올라가면서 만난 쇠줄과 쇠발굽

산행은 가평 하판리 주차장에서 시작해서 일주문을 지나 오른쪽 만경로 능선을 따라 정상까지 올라간 후 절고개를 지나 현등사를 거쳐 현등로로 내려오는 총 길이 8.7km에 4~5시간 정도 걸리는 코스를 택했다.

▲ 계속 치고 올라가다 만난 첫 절경

 

▲ 멀리 능선이 아마득히 보인다

만경로 능선에 있는 병풍바위와 미륵바위다. 비록 단풍은 거의 다 떨어졌지만 병풍바위는 언제 봐도 당당하고 아름답다. 이 바위가 보고 싶어 운악산에 간다.

▲ 병풍바위
 ▲ 병풍바위

▲ 병풍바위

▲ 미륵바위

 

▲ 정상으로 올라가면서 보이는 기암괴석

2시 막 넘어 정상에 도착했다.

자리를 잡고 점심으로 간편식을 먹고 있는데 한 무리 산악회원들이 바로 우리 앞에 돗자리를 깔고 점심을 먹기 시작했다. 그런데 산악회원 중 한명이 아주 숙달된 솜씨로 슉슉슉 빠르게 버너를 켜기 시작했다. 휘발유 버너인 듯 화력이 아주 좋았다. 큰 냄비도 가져와서 물과 양념을 넣자 금방 끓었다.

그 산악회원 약 30명 이상이 둘러앉았는데 어느 누구도 무단취사를 말리지 않았다. 너무나 눈에 거슬려 자꾸 쳐다보았는데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동안 가물어서 낙엽이 얼마나 바싹 말랐는지 정상까지 올라오면서 다 보고 알았을 텐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니었다. 신고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일어나 먼저 냄비 속 찌개가 끓는 사진을 찍었다.

좀 떨어져서 버너맨을 찍으려고 했는데 눈치를 챘는지

버너맨 : 왜 남의 사진을 찍습니까?
나 : 필요해서 찍습니다.
버너맨 : 뭐에 필요합니까?
나 : (신고하려고 찍는다는 말은 차마 못하고) 여기서 그러면 안 되는 것 아시죠?
버너맨 : 안전하게 합니다. 와서 보세요.

죄송하다거나 곧 끄겠다는 말이 나올 줄 알았는데 오히려 잘했다는 듯 큰 소리를 냈다. 정상에서 아이스크림과 막걸리를 팔고 있는 사람에게 알려주었다. 아이스크림맨이 산악회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가서 버너 켜면 안 된다고 큰소리로 말했다. 버너맨이 “아.. 알겠습니다.”라고 즉시 고분고분하게 대꾸했다. 버너를 껐는지는 모르겠다. 아이스크림맨은 내가 사진이 있다고 하니 고발하려면 내려가서 마을 청년회를 찾으라고 했다. 사진을 보여주면 청년들이 기다리고 있다가 버너맨을 잡는단다.

▲ 정상에서 내려오면서 만난 독특한 바위

하산하는데 그 산악회 사람들도 우리 앞뒤로 같이 내려왔다. 서둘러 내려온 것 같았다. 한 사람에게 어디서 왔냐고 물으니 술술 다 불었다. 마을에 와서 한 식당 주인에게 청년회를 물어보았다. 왜 그러냐고 해서 자초지종을 말하니 가평군청 홈페이지에 올리는 것이 제일 정확하다고 했다.

주차장에서 그들이 타고 온 버스도 찾았다. 그런데 그 버너맨이 벌써 내려와 있었다. 태극기가 새겨진 모자는 벗었고 윗옷은 파란색에서 검정색으로 바꿔 입었다. 적발될까 불안해서 옷을 바꿔 입지 않았나 싶었다. 버스 사진을 찍으니 버너맨을 포함하여 차 옆에 서 있던 세 명이 놀란 눈으로 나를 보면서 수군거렸다. 좀 떨어져있던 한 남자가 나에게 다가왔다. 버스기사 같았다.

어떤 남자 : 왜 남의 얼굴을 찍습니까?
나 : 얼굴 아니고 버스 찍었는데요?
어떤 남자 : 버스는 왜 찍는데요?
나 : 필요해서 찍습니다.
어떤 남자 : 어디에 필요한데요?
나 : 공익에 필요합니다.

그때 나에게 여럿이 합세를 해서 압박했으면 경찰을 부르려고 했는데... 그들을 그렇게만 하고 불안한 표정으로 계속 나를 주시하며 이야길 나눴다. 나도 증거는 충분하다 싶어 자리를 떴다.

11월 7일 가평 군청에 신고했다. 사진과 어디 지역 00산악회, 관광버스회사명과 번호판까지 들어갔으니 충분히 버너맨을 적발할 수 있을 것으로 보았다. 한번 혼이 나봐야 다시는 그런 행위를 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며 꼭 찾아서 과태료를 물려 달라 했다.

11월 15일 가평군청에서 연락이 왔다.

“귀하께서 국민신문고를 통해 신청하신 민원(신청번호 1AA-1711-*****)과 관련입니다. 우리군 산림보호에 관심을 가져주심에 감사드리며, 귀하께서 제보하신 운악산 정상에서의 취사행위(버너 사용)단체를 적발하여 산림보호법 제57조제3항 규정에 의거 과태료를 부과하였음을 알려드립니다.”

어딜 가도 저런 꼴을 못 봐주는 내가 '별나다'고 남편은 자신을 '별난 여자와 사는 남자'라고 한다. 그런데 이번엔 꼭 신고하란다. 산을 너무도 사랑해서 그랬을까? 휘발유 버너의 화력과 위험성을 알아서 그랬을까? 처음으로 딱 의견 일치를 보았다. 

다른 사람들은 나 같은 사람을 뭐라 부를까? 역시 '별난 여자'라 부를까? 사람들은 나 같은 사람을 피곤해할까? 좋아할까?

편집 : 박효삼 편집위원

김미경 편집위원  mkyoung6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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