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년 전 가을, 결혼했다. 집안 어른이 어디 가서 날을 봐주셨는데 11월 2일이 좋다고 했다. 남편은 어른 말씀을 듣지 않고 10월 중순을 고집했다. 지금이나 예전이나 나는 순한 남편의 은근한 고집을 이기질 못한다. 할 수 없이 10월 중순 ‘한국의집’ 마당에서 전통혼례로 결혼식을 올렸다.

결혼식 시작 전부터 날이 꾸물꾸물 거리더니 비가 오기 시작했다. 천막 아래서 결혼식을 진행했는데 비는 점점 거세지다 못해 쏟아 붓듯 내렸다. 그 비 한 번으로 그 해 농사를 다 망쳤다고 할 정도로 어마무시한 비였다.

결혼식은 간신히 끝났는데 하늘이 컴컴해서 사진을 찍을 수가 없었다. 사진사가 이리 뛰고 저리 뛰다가 사라지더니 한참 있다가 ‘펑’ 터트리는 구식 플래시를 구해 가지고 와서 단체사진을 찍었다.

1시에 시작한 결혼식이 3시 넘어 끝났다. 우리 다음 결혼식이 3시였는데... 비를 피해 처마 밑에 서서 식을 보고 있던 우리 하객들과 3시 하객들은 서로 엉켜 난리도 아니었다. 하객들도 퍼붓는 빗속에서 하염없이 기다리게 하는 준비없는 엉망진창 야외 결혼식은 처음 보았을 거다.

나는 너무나도 속이 상해 어른 말씀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나오는데... 고집 피워 결혼식 망쳤다고... 두고두고 남편을 타박했다. 그 해 11월 2일은 날씨가 너무나도 좋았기 때문이다. 

신혼여행은 설악산으로 갔다. 남편이 결혼 날을 10월 중순으로 고집한 이유는 바로 설악산 단풍 때문이다. 아직도 매년 10월이 되면 남편은 설악산 단풍 타령을 한다. 그래서 가끔 가을이면 설악산에 가는데 올해는 날이 아주 좋았다. 권금성, 육담폭포, 비룡폭포, 토왕성폭포, 주전골과 만경대를 다녀왔다.  

설악산에 미안한 마음으로 케이블카 타고 쉽게 올라가 단풍구경을 할 수 있는 권금성은 애국가 ‘동해물과 백두산’에 나오는 바로 그 장소 천연 암벽요새다.

▲ 권금성에서
▲ 권금성 단품
▲ 권금성 단풍

권금성에 올라가면 화채능선이 생각난다. 27년 전인가? 가을에 대청봉에서 화채봉과 칠선봉을 거쳐 권금성으로 내려와 하산한 적이 있다. 이 세 봉우리를 지나는 화채능선은 설악산 능선 중 좀 가기 수월한 덜 험한 능선이다. 화채능선을 따라 걸으며 보는 공룡능선이 얼마나 멋있었는지... 감탄에 감탄을 하면서 내려왔었다. 다음에는 권금성에서 시작해서 칠선봉으로 올라가 화채능선을 타자고 약속했었는데... 지금은 그 길을 갈 수가 없다. 2007년부터 2026년까지 20년간 아래와 같이 특별보호구역으로 정해 출입을 통제한다. 앞으로 8년 뒤에나 열리는데 그 때 나이에 그 환상적인 능선을 다시 탈 수 있을지 모르겠다.

▲ 권금성 위치에서 본 칠선봉, 화채봉, 대청봉, 토왕성폭포 위치. 점선 영역이 특별보호 출입금지구역이다.

권금성 단풍을 실컷 보고나서 토왕성폭포(土旺城瀑布)로 발길을 옮겼다. 토왕성폭포는 설악산 3대 폭포(대승폭포, 독주폭포, 토왕성폭포) 가운데 하나다. 총 길이 320m로 국내 폭포 가운데 가장 길다. 국가지정문화재 명승 제96호로 2013년 지정되었다. 이 폭포는 계곡 중간에 있는 폭포가 아니고 산꼭대기 인근에서 시작하는 폭포이기에 비가 많이 내린 다음에나 볼 수 있고 3일 정도 지나면 다시 마른다고 한다. 우리가 간 날은 전날 태풍이 지나가면서 많은 비를 뿌렸기 때문에 100% 토왕성폭포를 볼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토왕성폭포로 향하다 보면 먼저 구비구비 이어지는 육담폭포(六潭瀑布)를 만나게 된다. 전설에 의하면 하늘을 날고자 하는 용이 꼬리를 쳐 6개 폭포와 연못을 만들었다고 한다. 

▲ 육담폭포(六潭瀑布)

육담폭포를 지나 1㎞ 정도 올라가면 그 용이 하늘로 올라갈 때 타고 간 비룡폭포(飛龍瀑布)가 나온다. 16여m 물줄기가 수직으로 떨어지는 힘찬 기운 옆에 서 있으니 가슴까지 다 시원하게 뻥 뚫리는 느낌이다. 두 폭포 물의 발원지가 토왕성폭포다. 

▲ 비룡 폭포

비룡폭포에서 가파른 계단 900개를 올라가면 토왕성폭포가 나온다. 역시, 어제 내린 비로 폭포를 볼 수 있었다. 어떤 등산객이 수차례 이곳을 왔어도 이렇게 폭포를 보는 건 처음이라고 감격에 겨워 말한다. 우리는 첫 시도에 보았으니 운이 좋아도 너무 좋은 건가?

병풍처럼 둘러싼 봉우리들이 수직 급경사를 이루어 폭포는 가파르게 내려오다 한단, 두단, 삼단으로 이어지며 떨어진다. 10월 초순이라 단풍은 덜 들었지만 폭포만으로도 장관이라는 말로 밖에 표현이 안된다. 정면으로 빛을 받아 사진을 잘 찍을 수 없어 선명한 사진이 없어 아쉽다. 과거엔 겨울 빙벽등반 훈련 산악인에게만 개방했는데, 지금은 900 계단을 올라가면 누구나 볼 수 있게 길을 만들었다. 비록 1km 앞에서 보는 것이지만... 

▲ 왼쪽이 이날 찍은 사진. 오른쪽이 1년 6개월 전 사진을 보고 재미로 그려 본 토왕성폭포. 지금 보니 폭포 줄기 등이 실제 모습과 많이 다르다. 담엔 제대로 그려봐야겠다.  

혹 가물어 폭포를 볼 수 없을지라도 폭포 주변 멋진 봉우리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후회없는 산행이 될 거라 생각한다. 

▲ 토왕성 폭포 주변의 기암괴석

돌아오는 길에 본 구름도 멋지다. 서로 만나고자 애쓰는 모습 같다. 달려가 잡으려는 구름에 강렬한 눈도 있다. 지금 우리나라를 한 번 더 생각해보게 된다.

그 다음 주말에는 오색 주전골계곡과 만경대도 갔다. 주전골은 노랑과 붉은 단풍색이 아주 곱고 화려한 계곡으로 유명하다. 한 때는 태풍피해로 폐허가 된 적도 있다. 이후 등산길은 좀 더 깔끔하게 정비가 되었다. 잘 정비가 되면 사람들은 더 많아진다.

▲ 주전골의 단풍
▲ 주전골의 단풍. 오른쪽 아래 사진이 용소폭포를 보기 위해 줄 서있는 사람들

특히 주전골계곡 끝이라 할 수 있는 용소폭포(龍沼瀑布)는 바글바글 하다는 표현이 맞다. 지난 주 본 육담폭포, 비룡폭포와 토왕성폭포가 씩씩하고 힘찬 이미지의 폭포라면, 용이 몰래 목욕하고 간다는 용소폭포는 깊은 산속 얌전히 숨어있는 비밀스런 폭포라고나 할까? 비밀스러운 만큼 살짜쿵 보고 가야하는데.. 인파로 줄 서서 구경해야 하니 그 귀한 맛이 사라지고 만다. 어쩔 수 없다. 나만 볼 수 없으니까... 사람 없는 새벽에 오면 그 신비한 맛을 한껏 느낄 수 있지 않을까?  

▲ 용소폭포

용소폭포를 지나 만경대(萬景臺)로 향했다. 보통 오색에서 시작해서 용소폭포를 지나 만경대에 갔다가 다시 오색으로 내려가는 코스를 많이 택한다. 만경대가 개방되기 전에는 용소삼거리에서 흘림골로 나가 한계령으로 올라가는 코스를 많이 다닌 것 같은데... 얼마 전부터 흘림골은 낙석위험지구로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흘림골 코스를 통제하자 흘림골 주민들이 '흘림골 주민들 다 죽는다'고 현수막을 걸어 놓았다. 어찌해야 할지 설악산국립공원 측도 난감하겠다.

만경대란 만가지 경치(만물상)를 볼 수 있는 조망이 아주 좋은 곳을 말한다. 설악산 만경대는 외설악에도 있고 내설악, 남설악에도 있다. 우리가 간 곳은 남설악 만경대다. 46년만에 개방한 곳으로 예약을 해야 갈 수 있다. 가는 길이 좁아 오색방향으로 일방통행이다. 좀 어둡고, 재미없고, 가파른 길을 가다보면 만경대가 나온다. 이름에 걸맞게 오르고 내림에 재미없음을 회복하고도 남을 만큼 멋진 곳이다.

▲ 죽은 나무와 산 나무를 앞에 둔 만물상
▲ 만경대에서 
▲ 만경대

돌아오는 길에는 고속도로를 타지 않고 국도를 타고 한계령에 들렀다. 오색에서 한계령 방향으로 올라가는 길은 차로 구불구불 천천히 달리면서 단풍을 볼 수 있는 멋진 드라이브 코스다.

▲ 한계령으로 올라가면서
▲ 한계령으로 올라가면서
▲ 한계령에서
▲ 한계령에서,억새와 단풍의 어울림.
▲ 한계령에서 산장과 함께
▲ 한계령에서 인제방향으로 내려가면서.. 색이 곱다.

10월 첫째, 둘째 주말 설악산 단풍구경 잘 했다. 언제나 설악산은 우리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내년에는 어디로 단풍 구경을 갈까? 또 설악산? 화채능선 걸으며 공룡능선 단풍을 볼 수 있으면 참 좋겠다. 8년을 기다려야하는데... 그때까지 건강해야하는데...

편집 : 박효삼 편집위원

김미경 편집위원  mkyoung6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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