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차 아시아 미래 포럼 참관기 (2)

#1. 한 식당 두 주인

30여 년 전 철강 회사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점심을 회사 근처에서 직장 동기들과 먹곤 했는데 하루는 영업부장을 따라 제법 걸어가야 있는 냉면집을 간 적이 있었다. 개나리 꽃이 거의 다 떨어지고 파란 잎이 무성할 때였으니 여름은 아니었는데 문전성시를 넘어 사람들이 길게 줄지어 서 있었다. 알고 보니 바로 그 날이 냉면 시즌이 시작되는 날이라는 것이었다. 밖에서 볼 때는 기와 지붕이 있는 허름한 대문이었는데 대문을 넘어서자 넓은 마당과 ‘ㄷ’자형 안채에 사람들이 가득했다. 어림잡아도 백 여명은 거뜬히 넘어 보였다. 냉면을 주문해놓고 부장은 주방을 힐끔거리다가 이야기를 시작했다.

“내가 입사했을 때 지금 사장님을 따라 처음 왔었으니 다닌 지가 이십 년은 넘었지. 오년 전 까지만해도 일년 내내 냉면을 팔았는데 지금은 더운 철에는 냉면, 추울 때는 설렁탕을 팔아. 전에도 냉면 맛이 좋아서 장사가 잘 되던 집이었지만, 그 사연이 소문 나는 바람에 손님이 더 많아졌지.”

사연은 이랬다.

어느 겨울날 냉면집에 뜻밖의 손님이 찾아왔다. 그는 주인남자의 고향친구로 일찍부터 서울에서 사업을 해서 한 때는 성공했다는 소리도 들었었는데 결국 파산하고 가족과도 흩어져 살면서 거의 노숙자 생활을 하고 있었다. 소문에 듣게 된 친구를 찾아 온 것인데 딱히 도움을 받으려는 뜻은 없었고 그저 죽기 전에 한 번 보고 싶은 게 전부였다고 한다. 둘은 밤늦게 까지 술잔을 기울였고 그 다음 날부터 그 남자는 그 식당에서 허드렛일을 하게 되었다. 일년쯤 후에 주인 남자는 친구를 불러 이렇게 말을 했다고 한다.


“자네가 일을 해보니 알겠지만 식당 하는 거 이거 보통 일이 아니네. 더군다나 이 동네는 하루도 쉬는 날이 없으니 장사가 아무리 잘 되어도 힘들긴 마찬가지지. 그래도 이 장사해서 애들 다 공부시키고 먹고 살만큼은 벌어 놨으니 나는 운이 좋았지. 자네에게는 운이 따라주지 않았던 게야. 나도 좀 쉬고 싶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아주 손을 놓기는 아직 나이도 있고, 그래서 말인데…”

주인 남자는 친구에게 겨울에 설렁탕 메뉴로 장사를 하게 시킨 것이다. 월급을 주는 직원이 아니라 해마다 5월 1일부터 10월 말까지 자기가 냉면을 팔고 나머지 6개월은 식당운영을 통째로 친구에게 넘겨 설렁탕을 팔게 한 것이다. 그러고는 해마다 6개월은 여행을 다니거나 휴식을 취하거나 한다는 것이었다. 어느 날 갑자기 일년에 6개월씩 메뉴가 바뀌는 것에 대해 어리둥절하던 손님들은 설렁탕을 먹으며 듣게 된 사연을 전하기 시작했고, 그야말로 대박이 나게 되었다. 냉면을 기다리며 들은 이야기 때문일까, 한참 만에 나온 냉면의 육수 맛은 그야말로 일품이었다.

“설렁탕을 잘 만드는 것도 쉽지 않은 기술인데 원래 재주가 많은 친구이긴 하지만 그것보다는 아마 진솔한 성품 때문일겁니다. 은인이라구요? 내가요? 어이구 웬 걸요. 지금은 그 친구 설렁탕 소문 덕분에 냉면 장사가 그 전보다 몇 곱절 더 잘 되는데요. 나도 이제 편하게 노는 맛을 들여서 그 전으로는 못 돌아갑니다. 겨울 냉면도 맛 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한 겨울에는 따끈한 설렁탕이 제격이지요.”

이 오래된 이야기가 포럼에 참석하면서 떠 오른 것은 아마도 일의 미래는 결국 사람에 의해 그 방향이 결정될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나눌수록 더 커지는 것이 있다는 가설은 수학적으로는 풀 수 없고 인문학적 상상력이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냉면집 사장이 일년 내내 냉면을 팔아 얻었던 연간 소득보다 6개월만 팔아서 얻은 연간 소득이 더 많다는 것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을 것이다. 한 가족을 불행의 나락에서 구한 것은 물론이고 자신도 과로에서 구원되며 행복한 삶을 새삼 찾았으니 그야말로 윈윈이란 이런 것을 두고 말하는 것이라 하겠다.

4차 산업혁명이 필연적으로 가져오게 될 일의 미래는 결국 인간이 하던 일들이 자동화 시스템이나 인공지능에게 얼마나 많이 넘어가게 될 것인가가 핵심이며, 노동의 가치가 인간의 것과 기계의 것이 얼마나 어떻게 다른가에 대한 결과물로 인해 결정될 것이다. 위 냉면집의 이야기처럼 일자리를 나누어도 부가가치가 떨어지지 않는 상황을 만들어 내려면, 그저 운에 맡긴다거나 예측불가능한 짐작만으로는 안된다.

  1. 어떤 일들이 나누어도 작아지지 않는 부가가치를 지닐 수 있을까

  2. 로봇을 사용하여 인간의 노동시간만을 줄이고 소득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게 하려면 어떤 준비들을 해야 할까

  3. 4차산업혁명의 과실을 자본가가 독식하지 못하게 하려면 인간의 노동에 대한 가치 부과를 어떻게 새로 매김을 해야 할까  

이러한 물음에 대한 답을 하나씩 주고 받다 보면 어슴프레 라도 길이 보이지 않을까 한다. 법이 할 수 있는 일도 있을 것이고, 법 이전에 사회적 합의에 의한 길도 보일 것이다. 분명한 것은 인류가 맞닥뜨린 이 거대한 새로움에 대하여 온 인류가 같이 고민하고 실험하고 길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제 우리 모두는 거대하고도 촘촘한 네트워크로 하나가 되었으므로. (계속)

편집 : 안지애 부에디터

유원진 주주통신원  4thmea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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