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이면 서너 번씩 오가는 길이 있다. 공원의 좁은 산책길이다. 이 산책 길 중간 쯤 가다보면 긴 의자가 양쪽으로 마주보고 있다. 늘 할머니들이 모여서 수다를 떠는 장소다. 때로는 깔깔깔 웃기도 하고, 큰소리로 언성을 높이고 싸움 비슷한 걸 하기도 하고, 요구르트를 나눠먹기도 하고, 부침개를 해 와서 나눠 먹기도 한다. 공원을 산책하는 사람들이 지나가건 말건, 마주 앉은 할머니들의 거침없는 이야기는 쉼없이 이어진다.

▲ 공원 산책길의 마주 보는 긴의자

어느 날 한쪽 의자 위에 비가림 지붕이 씌워졌다. 왜 한쪽만 씌워졌는지 모르겠다. 아마 다른 쪽은 나무를 잘라내야해서 못씌우지 않았나 싶다. 가끔 비가 오는 날에도 할머니들은 지붕 있는 의자에 앉아 조곤조곤 이야길 나누신다. 다른 쪽 의자에도 비가림 지붕이 있다면 양쪽으로 모여 앉아 이야기를 나눴을 것이다.

추운 겨울에는 모이지 않을까? 그렇지 않다. 할머니들은 추위도 아랑곳하지 않고 모인다. 그런데 오늘 지나가다 보니 작년엔 없던 뭔가가 의자에 덧씌워져 있었다. 압축 스티로폼을 의자 위에 덧씌운 것이다. 비가림 지붕이 없는 곳은 비가 올 경우 물이 빠지라고 숭숭 뚫어 놓았고 비가림 지붕이 있는 곳은 뚫어 놓지 않았다.

▲ 상단이 구멍 뚫린 스티로폼, 하단이 구멍 없는 스티로폼

바로 옆 운동기구가 있던 자리에 낯이 익숙한 할머니들이 모여 계신다. 운동기구는 사라지고 편하게 생긴 긴 의자가 마주보고 있다. 할머니들이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누시라고 일부러 엉덩이 부분이 움푹 파인 편한 의자를 택했지 싶다. 오늘은 날이 추워 그런지 많이 모이지는 않았다. 할머니에게 말을 걸어보았다.

▲ 사진 찍는 것을 허락한 할머님들

나 : 여기 의자 새로 놨죠?
할머니 : 여기 쓰러져 가는 의자 하나 있었는데, 거 새로 갈고 한 개 더 만들었어.
나 : 할머니들 이야기 하시라고 구청에서 만들어줬나 봐요. 의자에 방석도 씌워주었네요.
할머니 : 그래서 너무 좋아. 딱딱하지 않고 차갑지 않아서 좋아
: 왜 추운데 여기 오세요? 경로당에 안가시고..
할머니 : 우린 여기가 좋아. 경로당은 싫어
: 그래도 여긴 한 데라 춥잖아요?
할머니 : 여긴 친구들이 있어서 좋아. 오늘은 햇볕이 있어 따습네. 좀 있다 햇볕이 저쪽으로 가면 우리도 저쪽으로 걸거야
: 여기도 저기처럼 지붕이 있으면 좋은데... 여긴 없네요.
할머니 : 맞아, 여기도 지붕을 좀 넓게 해주면 참 좋겠는데...

늘 찬바람이 불면 그곳에 모여 있는 할머니들이 안쓰러웠다. 얼마나 외로우시면 따뜻한 집 놔두고 추운 곳에 옹기종기 모여 이야기를 나누실까? 그런 생각을 했다. 하지만 생각만 했지 그분들을 위해 뭔가 해볼 생각은 하지 못했다. 단지 의자에 덧씌운 스티로폼만으로도 저렇게 훈훈한데 말이다. 값비싼 시설도 좋지만 소박해도 할머니들 고충을 알고 해준 배려라 더 값어치가 있는 것 같다. 할머니들께서 좋아하시니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다. 내일은 잊지 말고 의자 위에 비가림 지붕을 씌워달라고 구청에 건의해봐야겠다.

* 이렇게 답변을 받았다. 

주관부서] : 도시관리국 공원녹지과 [답변일자] : 2018-01-05 13:10:21
[작성자] : 서윤석 [전화번호] : 2091-3775 [이메일] : 
[답변내용] : 1. 우리구정 발전에 항상 도움을 주시는 김00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2. 김00님께서 제안하신 발바닥공원 내 평의자 설치구간 비가림막 설치 요청사항에 대하여 답변드리겠습니다. 발바닥공원 내 비가림막 설치는 한정된 예산으로 전 구간 설치가 어려워 산책로 주변 우선순위를 정하여 설치하였으며, 어르신들의 이용도가 높은 정자를 확대 설치하여 비를 피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였음을 알려드립니다. 평의자 설치구간 비가림막 설치는 당장은 어려우나, 향후 이용도를 고려하여 비가림막 설치를 검토 할 것을 약속드리며 좋은 제안 주신 김00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3. 또한, 공원 내 의자에 설치된 스티로폼은 우리구에서 공원을 이용하시는 어르신들의 편의를 제공하기 위해 주민의견을 수렴하여 12월경 설치한 사항으로 남녀노소 누구나 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공원을 제공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을 약속드립니다. 다시 한 번 좋은 의견 주신 김00님께 감사드리며, 김00님의 가정에 건강과 행복이 깃들기를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끝.

편집 : 김태평 객원편집위원

김미경 편집위원  mkyoung6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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