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꽃을 몹시 좋아한다. 꽃 싫어하는 사람 있으랴만 유별나게 좋아한다. 10여 년 전 쯤 안치환의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를 처음 들을 때 ‘말도 안 되는 노랫말’이라고 받아들였다. 평화/통일운동을 벌이면서 시간이 흐를수록 주변에서부터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들’이 넘치는 것을 보고 느낀다.

지난 1월 한 탈북 여대생을 이메일과 카톡 등으로 소개했다. 작년 12월 전주에서 강연할 때 만난 기구한 신세의 20대 여인 말이다.

남한에서 북향민들에 대한 시선은 대체로 곱지 않다. 진보 쪽에서 더 그렇다. 지금까지 남쪽으로 건너온 3만 명 안팎의 북향민들 가운데 극우세력의 앞잡이 노릇을 하는 소수 때문이다. 종편에 출연하거나 민통선 가까이 접근해 북쪽으로 삐라를 날려 보내며 남북 사이의 갈등과 긴장을 고조시키는 사람들 말이다. 북향민들 중엔 죄를 짓고 도망쳐 나온 이들도 있고, 권력에 소외되어 빠져 나온 이들도 있지만, 대부분 식량을 구하거나 돈을 벌기 위해 두만강이나 압록강을 건넜다가 탈북 브로커를 만나 남쪽에 들어온 사람들이다.

암튼 비참한 사연을 지닌 여학생 얘기를 접하고 적지 않은 사람들이 후원금을 보내주었다. 이들 가운데 네 분만 소개한다.

지난 1월 초 올랜도에 머무를 때 LA의 한 변호사가 이메일을 보내왔다. 내가 두어해 전부터 LA에서 강연할 때마다 참석했다는데 전혀 기억할 수 없는 분이다. 한국에서 여고 다닐 때 두세 번 수업료를 내지 못해 등교하지 못한 아픔을 간직하고 있단다. 미국으로 이민해 두세 가지 일로 돈 벌며 몇 년 동안 일요일 하루라도 쉬어보는 게 소원이었다고 한다. 낮에 일하고 밤에 공부하며 겨우 대학을 마치고 43세에 로스쿨에 입학해 47세에 변호사가 되었다는 이력을 지닌 분이다. 300달러를 보내주었다.

1월 21일 저녁 뉴욕에서의 내 강연에 앞서 점심을 같이 하고 싶다는 분이 있었다. 오래 전부터 내 활동을 지지하고 후원해온 80대 의사다. 소주 한 병 곁들이며 이 얘기 저 얘기 나눈 뒤 그 여학생에게 전해달라며 돈봉투를 건넸다. 나중에 열어보니 무려 2,000달러, 2백만 원이 넘는 거액이었다.

며칠 전 경북에서 교육공무원으로 일하고 있는 노총각이 문자를 보내왔다. 2년 전 타계한 장기수 유영쇠 선생을 할아버지로 삼았던 제자다.

그는 건강을 잃는 바람에 나이 40이 되도록 실업자로 지내다 완쾌하고 작년 공무원 시험에 합격해 올해부터 경북의 한 초등학교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실업 수당을 받으면서도 너덧 곳에 소액이나마 후원해왔는데, ‘고액’ 연봉자가 됐으니 기부처를 한두 군데 더 늘리고 싶다며 나에게 개인이나 단체를 추천해달라고 했다. 궁리 끝에 탈북 여학생의 오빠 노릇을 해보라고 권했다. 다음과 같이 얘기하면서.

“자네가 모셨던 장기수 할아버지는 남쪽에서 태어나 북녘을 동경하시던 분이었다. 그 여학생은 북쪽에서 태어나 남녘으로 건너왔다. 장기수와 북향민의 만남은 남북 민족의 화해와 통합을 상징할 수 있다. 또한 경북의 자네가 전북의 그녀를 돕는 것은 동서 지역갈등 완화에도 기여하는 길이다.”

오늘 27일엔 인천의 50대 아줌마가 날 보러왔다. 내 제자이기도 한 문학도다. 북향민 여학생의 어머니나 이모 같은 역할을 해주고 싶단다. 전주에서의 만남을 주선했다. 북향민 여학생은 더 열심히 공부하고 일하며 자신보다 더 불우한 주위 사람들을 위해 살겠다고 다짐했다. 참 아름다운 세상 아닌가.

관련 글: “기막힌 공존: 개혁개방을 통한 빈부격차” (2018/1). http://blog.daum.net/pbpm21/456

관련 글: “도움 요청: 내가 본 유영쇠 선생” (2014/4). http://blog.daum.net/pbpm21/309

▲ 2017년 11월28일 전주명 ‘통일을 준비하는 탈북자협회’ 회장(왼쪽 셋째)과 회원 등이 서울 청량리 밥퍼나눔본부를 방문해 결식 이웃들을 위해 따뜻한 밥 한끼를 대접하는 시간을 가졌다. 전 회장은 ‘사회적 정착’과 ‘경제적 정착’을 위해 정부가 탈북자 채용 문제에서부터 솔선해줄 것을 촉구하고 있다. 통일을 준비하는 탈북자협회 제공(사진 출처 : 한겨레 신문)

[편집자 주] 이재봉 시민통신원은 현재 원광대학교 정치외교학/평화학 교수로 재임하고 있다. 1999년 창립한 북한동포돕기 단체인 <남이랑북이랑 더불어살기위한 통일운동> 공동대표이며, 함께 사는 통일 한반도를 만드는 <통일경제포럼> 공동대표이기도 하다. <함석헌 학회> 회장도 역임하고 있다. 

편집 : 김동호 객원편집위원

이재봉 시민통신원  pbp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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