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카고의 초고층건축(1)

[도시건축] 조재성 교수의 ‘인간주의 도시건축을 찾아서’: 시카고

시카고의 초고층 건축 (1) : 대화재를 딛고서

시카고는 “바람의 도시(Windy City)”라고도 불리운다. 미시건호를 가로지르고 북쪽에서 불어오는 바람 때문에 생긴 명칭이다. 1893년 세계컬럼비아박람회 개최지 경쟁자 신시내티를 꺽고 시카고가 개최지로 결정된 이후 “바람의 도시”라는 닉네임으로 더 많이 불리어졌다. 인구규모로 뉴욕, LA에 이어 미국에서 3번째로 큰 도시이다. 또한 현대 모더니즘 건축의 탄생지이며, 철골구조 초고층건축물 유행을 선도하였으며 도시미화운동의 출발지이다. 시카고의 다운타운은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역동적인 경제 중심지의 하나로 평가되고 있다.

시카고에 유럽에서 온 이민자들이 정착하기 시작한 것은 동부에서 미국혁명이 진행되던 1780년경부터 이다. 20세기 전환기 국토팽창 시기보다 먼저 시카고는 성장하기 시작했다. 도시 인구는 1837-1870년 사이에 4,000명에서 300,000명으로 성장했다. 1910년경에는 이미 인구 200만을 넘어섰다22017년 시카고 인구는 270만, 시카고 대도시권 인구는 955만에 도달한 미국에서 3번째로 큰 대도시권이다.

시카고의 성장은 일차적으로 풍부한 광물자원과 비옥한 농토로 둘러쌓인 미국 중심부에 입지한 데 기인한다. 시카고가 일찍부터 성장해온 원인은 운하와 철도건설에 힘입은바 크다. 이리운하(Erie Canal)의 개통과 철로 개통은 시카고를 대서양에 면하는 동부 대도시 뉴욕과 연결되는 미국 중부 최고의 허브도시로 만들었다. 중부의 특산품이 시카고를 거쳐 맨해탄으로 운반되어 유럽으로 전파되고, 철로를 이용해 서부로 수송하고, 남쪽으로 4,000km아래에 있는 루이지애나까지 미시시피 강을 따라 연결되는 미 대륙의 중간 거점도시로 성장해갔다. 오늘날에도 미 대륙을 사통팔달로 연결하는 철도망과 세계에서 가장 바쁜 공항이 있어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200년 전 런던 대 화재로 런던이 새롭게 탄생한 것처럼, 시카고도 1871년의 대 화재를 딛고 계획에 따라 재건되었다. 대 화재로 수 천채의 건물이 파괴되었고, 4마일 길이, 1마일 폭의 업무지구가 잿더미로 변해, 300명의 사망자와 그 당시 화폐기준으로 2억달러의 재산상의 손실을 가져왔다. 화마의 피해를 딛고, 도시재건이 이루어졌는데 오늘날의 도시구조를 결정지은 격자형 가로망 체계가 이때 채택되었다. 대 화재 이후 시카고는 새로운 시대를 맞는다. 새로운 형태의 건축물들이 세워지고, 전세계에서 유능한 젊은 건축가들이 시카고로 몰려들었다. 시카고는 첨단을 개척하는 도시가 되었다.

▲ <시카고 예술원(Art Institute of Chicago)>

​ 시카고의 새로운 시대를 연 초고층 건축물 답사는 아담 스트리트(Adam Street)와 교차하는 미시건 애비뉴(Michigan Avenue)에 있는 『시카고 예술원(Art Institute of Chicago)』 건물에서 출발했다. 내가 찾은 2017년 10월의 시카고는 파란 가을 하늘에 미풍이 불고, 서늘해 답사하기에 최적의 날씨였다. 『시카고 예술원』은 모네, 세잔느 등의 인상파와 후기 인상파 그림을 많이 소장하고 있는데, 1893년 세계 콜롬비아 박람회때 유행했던 신 고전풍의 보자르 스타일로 설계되었다. 건물의 대칭적인 볼륨감과 고전적인 장식적인 요소들은 기품있는 외관을 만들었다. 1층벽은 줄 눈이 있는 석회석으로 마감하고, 훨씬 높은 2층은 부드러운 마름돌로 마감을 했다. 조각상이 배치된 아케이드를 배치해 휴식처를 조성했으며, 아테네 파르테논에 있는 여신행렬을 재현한 띠로 상단을 마감했다. 예술가의 이름이 새겨진 처마가 시선을 끈다. 1879년에 세워진 박물관은 증축을 계속해왔다.

조각가 에드워드 케 메이(Edward Kemeys, 1843-1907)는 힘과 권위를 상징하는 사자석상을 입구 양 측면에 설치했는데, 예술원 건물의 수문장 역할을 한다. 박물관의 동쪽 정면에 박물관과 아카데미 건물이 세워졌고, 조경건축가 단 킬리(Dan Kiley)에 의해 남쪽 정원이 설계되었다. 그리고 한나와 오린(Hanna&Olin)은 북쪽 정원을 설계했다. 『시카고 예술원』의 조경배치는 현대 박물관 설계의 모델로 평가되고 있다. 『시카고 예술원』 건물은 『필드 뮤지엄(Filed Museum)』과 함께 1893년 세계 컬럼비아 박람회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건축물로 꼽을 수 있다.     

세계 컬럼비아 박람회는 시카고 중심지의 모습을 완전히 바꾸어, 신고전파적 건축물이 중심지에 들어서는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에콜 데 보자르 스타일의 신고전파 건축물이 박람회 이후에도 영향을 미치는 대세를 형성하지는 몼했다.

세계 컬럼비아 박람회는 다니엘 번햄(Daniel Burnham)의 상상대로 계획되고, 건설되었다. 시카고 시는 미학적 관점에서 조차 공익을 추구하고, 도시경관을 향상시키려는 노력을 미국 최초로 시도하여, 도시미화운동을 촉발해 미국 도시계획운동에 생명을 불어넣었다. 1909년에 제안한 번햄의 계획은 시카고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다.

▲ <다니엘 번햄의 시카고 계획>

1871년 시카고 대 화재 다음해인 1872년에는 3층 높이의 건축물이 세워지면서 시카고 초고층 건축 시작되었다. 미시건 애비뉴에서 웨스트 아담스 스트리트(West Adams Street)를 따라 걸으면 현재 레스토랑으로 사용중인 『베르그호프(BERGHOFF)』 건물을 볼 수 있다.  『베르그호프』 건물은 화재이전 건물에 잇대어 화재 후 건물이 세워져 시카고 대 화재 전과 후의 건축물의 변화를 비교해 볼 수 있는 유일한 건축물이다. 레스토랑 『베르그호프』는 오늘도 많은 여행객이 찾아 여행의 피로를 위로하는 곳이다.

▲ <베르그호프 건물>

이 건물은 아치형의 창문과 전면이 대칭되는 모습을 갖춘 개성 있는 이탈리안 스타일 외양을 띄고 있다. 클리브랜드 산  모래석 재료를 사용했으며, 3층 건물 스톤빌딩(Stone building)은 중앙의 창문, 보다 큰 아치형의 틀 안에 이중 아치로 감싸는 작은 창문으로 구성되어 있어 건물을 길가에서 바라보면 압도하는 뜻한 인상을 준다. 외벽에 접합 선을 강하게 두어 붉은 색의 블록과 건물 외벽의 규칙성을 강조했다. 서쪽에 있는 팔머 빌딩(Palmer building)은 부동산 재벌 포터 팔머(Potter Palmer, 1826-1902)에 의해 개발되었다. 『베르그호프』 건물은 현장에서 조립되었으며, 하중을 감당하기 위해 벽을 벽돌로 쌓은 외관이 매력적인 건물이다.  

『베르그호프』 건물은 시카고 대 화재 이전과 이후 2개의 건물로 구성된 시카고 초고층 건축물 진화의 출발점이 되는 중요한 유산이다.

<이 력>

원광대학교 명예교수 / President& Founder, Global CITY RND INC,

편집 : 안지애 편집위원

조재성 시민통신원  globalcityrnd@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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