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오전 동네 병원에 갈 일이 있어 들렀다. 언제나 느끼는 일이지만, 대개의 동네병원에선 조선일보가 꼭 보인다. 의사들이 조선일보 구독을 결의했나?

나는 조선일보를 끊은 지 20여 년 지났는데 어쩌다 동네병원 가면 조선일보가 눈에 띄니 그때가 조선일보가 세상 돌아가는 사안을 어떻게 다루는지를 볼 수 있는 유일한 기회다. 그래서 오늘도 진료 기다리는 시간에 잠시 일별.

"평창의 남북, '비핵화와 천안함'은 없었다."

1면을 보니 예전에 보던 그대로다. 조선일보 특유의 교묘한 '비틀기' 겸 '긁기'다. 평창에 온 북의 통일전선부장 김영철과 '비핵화와 천안함'에 대한 논의가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발표만으로는 확인할 수 없는 사안일 뿐 아니라, 남북관계 회복과 정상회담, 그리고 북미대화 성사라는 한반도의 명운이 걸린 절체절명의 미션을 달성하는데 걸림돌이 된다면 훗날로 미뤄놓을 수도 있는 것 아닌가. 그리고 발표에는 없었지만, 나중에 비핵화에 대해서는 설명하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걸 모를 리 없는 조선일보가 저렇게 카피를 뽑는 데는 이유가 있다. 저건 말하자면 수구 보수 세력에게 내리는 행동 발언 가이드라인인 거다. 뒷면으로 넘기니 군데군데 눈에 걸리는 데가 있는데 특히 내 눈을 멈추게 한건 "김영철 예우받던 주말 김관진은 집 압수수색 당해", "2030 세대도 분노", "北 가짜 평화에 치욕적 굴종", 그리고 "천안함 주범에 군사도로 열어주고"라는 카피다. 그러면 그렇지. 그런 게 없으면 조선일보가 아니지. 예나 지금이나 수구의 본산이자 난공불락의 요새로서 수구세력의 피를 끓게 만들고 혈압을 상승케 하는 조선일보.

김영철이 어떤 "예우"를 받았는지 모르지만 북에서 내려온 사절이다. 더구나 천안함 관련자로 지목당해 해코지의 우려가 있으니 경호 등에 다른 사람들보다는 더 신경을 써야 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것과 김관진이 범죄혐의로 가택수색 당하는 것과 무슨 연관이 있기에 저리 엮나? 저 기사를 읽는 순간 흥분해서 날 뛸 사람들이 있기에 저리 기사를 쓰는 거다. 아무튼 머리가 사악하게 돌아가는 건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리고 "2030 세대도 분노" 기사도 어느 대학에 걸렸다는 대자보 문구나 게시판 댓글을 뽑아 만든 카피인데, 몇몇의 의견으로 "2030 세대" 운운할 수 있는 건가? 그저 저희들 내뱉고 싶은 말일 뿐이다.

그렇게 신문 카피를 뽑거나, 발표당시 조작의혹이 무성한 천안함 사안에 대해서도 저렇게 김영철을 "천안함 주범"이란 말로 기정사실화하는 대범함 역시 변함없다. 조선일보가 저리 탄탄한(?) 논리를 제공해주니 수구 보수 세력이 그걸 든든한 배경삼아, 거기에 덧붙여 "체포"니 "사살"이니 통일대교를 점령해가며 부르대는 거다.

문득, 1999년이나 2000년에 있었던 일이 생각났다. 그때는 서울에선 소위 식자들의 조선일보 구독과 투고 거부 등의 '안티조선' 운동이 들불처럼 일어날 때였다. 인터넷에 '안티조선 우리모두' 진지가 만들어지고 많은 사람들이 그곳을 중심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당시 한일장신대 교수로 재직하던 김00, '우리모두' 사이트의 터줏대감 역할을 하던 논객 진00 등 많은 의식 있는 시민 지식인 논객 활동가들이 맹활약하며 백가쟁명을 이루던 때였다. 지금은 극우 쪽의 희한한 인간으로 변모한 변00도 당시엔 촉망받던 젊은 안티조선 운동가였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 대전의 한 허름한 식당 구석에 너덧 명의 장삼이사가 자리를 함께 했다. 대전에서는 나와 우00, 당시 대전 민언련 사무국장이, 옥천에선 오00 옥천신문 편집국장과 전00 옥천 '물총' 대표 등이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 만남은 말하자면, 서울 위주로 벌어지던 안티조선 운동을 대전 옥천 쪽에서도 펼쳐나가자는 뜻으로 모인 거였다. 그렇게 '안티조선'을 표방하는 단체결성이 논의되고, 옥천의 '물총'과 연대해 조선일보 반대, 구독거부, 절독운동을 펴나가기로 했다.

'물총'이란 "신문지를 물총으로 쏘면 흐물흐물 찢어진다."며 장난스럽게 전00 대표가 명명한 안티조선 사이트이며 단체 이름이었다. 전00대표와 김00교수 그리고 나는 알고 보니 동갑내기여서 나중엔 도원결의 아닌 '옥천결의'를 맺기도 하였다. 당시 우리끼리는 농담 삼아 "안티조선 독립군"이라 불렀다. 친일 반민족 매국지가 스스로를 '1등 신문'이라 칭하면서 판치는 세상에 그 신문을 거꾸러뜨리려는 사람들이 현대판 독립군 아니고 무엇인가, 하는 자부심도 실제로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 2001. 12. 10, 제2차 조선일보반대 대전시민가족 계룡산 결의대회 사진 "반민족, 반통일 신문 조선일보를 보는 것은 수치입니다"

아무튼 어찌하다 '사랑의 작대기' 식으로 내가 대표를 맡는 걸로 덤터기쓰고(?), 당장 '안티조선 물총'사이트에 글 올릴 때 쓸 아이디를 정해야 할 순간이 왔을 때 난 만주벌판의 독립군들을 떠올렸다. 일제 강점기 조국의 독립을 위해 만주벌판을 누비다 어딘지도 모를 곳에서 이름도 묘비도 하나 없이 스러져간 독립군들을. 그렇게 내 아이디는 그날로 '만주벌판'으로 정해졌다. 지금도 나를 아는 누군가는 나를 만주벌판이라고 부른다.

나는 대전에서 일 년에 두세 번은 안티조선 집회를 열었고, '물총 독립군 사령관 만주벌판'이라는 이름으로 거의 매일 아침 격문성 글을 올렸다. 충청도 사투리를 써서 전국의 독립군들에게 조선일보 반대의 당위성과 의미를 설명하거나, 구독거부 절독 임무수행을 권유하며, 어디에서 누가 어떻게 절독에 성공했는지를 소개하며 힘을 북돋웠다 .

▲2001. 12. 10, 제2차 조선일보반대 대전시민가족 계룡산 결의대회 사진 /"제호위에 일장기, 이게 도대체 어느 나라 신문입니까?")

그리고 개인 명의로 글을 올릴 때는 '목양'이란 아이디를 썼다. 인터넷 신문에 내 이름으로 글을 쓸 때도 “이 행사의 주최단체인 대전물총을 이끌고 있는 한 시민(아이디 : 만주벌판)은...” 라는 식으로 제3자인 양 ‘만주벌판’의 발언 또는 글을 인용하며 썼으니 만주벌판이 나임을 짐작하는 사람은 없었다. (“안티조선 봉화 12일 계룡산서 오른다”- 대전물총의 안티조선 집회에 지역 통일단체도 호응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074835)

어떤 식사자리에서 누군가는 “만주벌판이 누구냐?”고 내가 있는 자리에서 사람들에게 묻기도 했다. 아마 당시의 '동지'들 중에는 아직도 만주벌판이 누군지 모르는 사람들도 많이 있을 것이다.

▲ 2002. 5. 12, 대전 ‘물총’의 지역 통일단체와 안티조선 계룡산 집회 성명서 낭독 사진, “안티조선 봉화 5월 12일 계룡산서 오른다”

그렇게 매일 매일 어느 도시, 어느 곳에서 몇 부 절독에 성공했다는 '안티조선 독립군'들의 전투실적^^이 올라오고 그러길 수년. 조선일보의 발행부수가 떨어지는 게 보였다. 다음 순위 신문과의 격차가 급격히 좁혀지는 게 눈에 띌 정도였다.

그러자 조선일보는 안티조선을 보도하는 기자들이나 안티조선 활동가들에게 소송을 거는 식으로 공세적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조선일보>의 김대중 선배님께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087978 / "조선일보의 이성 회복을 촉구한다." - 조선일보의 ‘조아세’ 고소를 바라보며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092152)

▲ 2002. 7. 15 김대중 조선일보 편집인의 IPI 망언 규탄 조선일보사옥 앞 필자의 1인시위 사진)6

그렇게 들불처럼 일어나던 안티조선 운동은 아이러니컬하게도 2002년 대선 때 "조선일보는 대선에서 손 떼라"며 조선일보를 '안티'한 노무현후보가 대통령이 되면서부터 사그라지기 시작했다. 조선일보가 안티조선 진영에 대해 "홍위병" 딱지를 붙이며 공격한 것이 가장 주효했던 것이라 생각된다.

그 뒤로도 '조아세(조선일보 없는 아름다운세상)' 라든지 '진알시(진실을 알리는 시민)'라는 이름의 안티조선 그룹들이 명맥을 이어갔으나 지금 어떻게 됐는지는 잘 모르겠다. 또 그 후로는 언소주(언론소비자주권 운동) 라는 안티조선 그룹이 활동한 것으로 아는데 앞의 세대와는 연결된 것 같지 않다. 안타까운 일이다.

조선일보 사주 방응모는 일제 때의 친일행위로 민족문제연구소가 펴낸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됐고,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700여 명의 명단에도 포함되어있다. 일제 때는 천왕의 생일인 '천장절'에 '천황폐하 만수무강'을 부르짖고, 조선의 젊은이들에게 대동아전쟁에 학도병으로 나가라더니, 독재시절엔 독재 권력과 결탁해서 민주주의 압살에 앞장서며 그 대가로 사세 확장하고, 문민시대로 와서는 끊임없이 교묘한 사실왜곡과 여론조작 그리고 반통일 극우이념 확산에 앞장서온 조선일보.

가장 심각한 문제는 과거 오래 전부터의 못된 버릇을 버리지 못하고, 옛날부터 해오던 왜곡과 조작의 못된 짓들을 아직도 버젓이 자행하고 있다는 거다. 하나의 거대한 권력이 되어버린 조선일보와, 거기에 기생하는 지식인들과 추종세력으로는 우리 사회가 이성이 작동하는 제대로 된 사회로 향하고, 남북이 평화와 통일의 길로 나가는 건 연목구어일 뿐이다. 그 생각은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조선일보 하는걸 보면 똑 같다.

▲ 2002년 날짜 불상, 충북 옥천에서의 안티조선 전국집회 사진, 정지용 시비 앞에서

오랜만에 조선일보를 구독하는 동네병원에서 이제 이 시대에 맞는 안티조선 운동이 다시 한 번 들불처럼 일어나야 할 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내 삶의 1999년부터 2003년까지 3~4년간은 친일청산과 안티조선 그리고 통일이 내 삶의 테마였고, 그야말로 전사처럼, 불꽃처럼 행동한 기간이다.

한편으로는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인터넷한겨레의 하니 리포터로서, <대자보>의 주필로서, 그 행동을 기사로 칼럼으로 맹렬히 써 올리던 기간이다. 그 흔적은 오마이뉴스와 하니 리포터, 그리고 ‘대자보’에 아직 조금 남아있다. (아래 첨부 기사 참조) 이제 2000년 초반에 맹렬히 활동했던 사람들은 대개는 50대 후반이거나 60대가 되었다. 다시 안티조선 운동을 일으키고 적극 몸담기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이제 나는 다시 그 시절처럼 살기 힘들겠지만, 누군가 안티조선 운동을 다시 불 붙여주면 정말 좋겠다.

아, 그 무렵 ‘만주벌판’이 수년간 충청도 사투리로 써내려간 그 추억의 글들을 보고 싶어 몇 해 전에 수소문했으나 사이트가 폐쇄되면서 글들도 다 날아갔다고 했다. 정말 아쉬운 일이다.

* 관련기사

1. 안티조선 걷기대회는 계속된다 - 제1차 안티조선 대전시민가족 걷기대회 이모저모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056216

2. "제호위에 일장기, 이게 도대체 어느 나라 신문입니까?"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061181

3. '조선일보 민간법정'에 대한 소회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065551

4. 이문열 "'친북세력' 나쁜 뜻 아녜요" 안티조선 "그게 '빨갱이' 아닌가요" 검사 "어허, 좀 조용히들 하세요" 안티조선, 대문호(?) 이문열 씨와 대질심문 하던 날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074198

5. “안티조선 봉화 12일 계룡산서 오른다” 대전물총의 안티조선 집회에 지역 통일단체도 호응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074835

6. 노사모의 '조선일보 50만부 절독운동' 지지한다 -전국 '물총독립군'의 봉기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075443

7 '조선일보'의 지식인은 우리 시대의 '꼴라보' 셰익스피어 생가에서의 단상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078214

편집 : 심창식 부에디터

여인철 주주통신원  ymogyang@hanmail.net

한겨레신문 주주 되기
한겨레:온 필진 되기
한겨레:온에 기사 올리는 요령

저작권자 © 한겨레:온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