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라시아에서 들려주는 사랑과 모험, 평화이야기 246~249일째

초원의 야생화는 척박한 땅에서도 꽃을 피우고 진한 향기를 뿜는다. 말발굽 소발굽에 밟혀도 다시 일어나 자라 세대를 이어간다. 이곳 중앙아시아에 이주해온 고려인들은 초원의 야생화보다 더 강인하게 살아남아 한국인 특유의 향을 흩뿌린다.

길을 나서 길 위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그 중에서도 키르기스스탄 비슈케크에서 가장 잊을 수 없는 만남을 가졌다. 키르기스스탄에도 우리 과거와 현재의 역사가 있다.

이양종씨는 20년 전 몸이 안 좋아 공기 좋고 물 좋고 약초가 많은 이곳에 휴양하러 왔다가 정착해 살고 있다. 그는 한국관광객들을 위한 게스트하우스도 운영하고 건축자재 사업도 하면서 이제는 자리를 잡았다고 한다. 그는 나의 평화마라톤 소식을 듣고 조금이라도 힘을 보태주고 싶어 했다. 자신의 엘림 게스트 하우스에 마음 편하게 있으라 해서 그곳을 거점 삼아 며칠 왔다 갔다 하며 달렸다. 덕분에 엘림에서 잠도 편히 자고 잘 차려주는 밥상으로 영양도 충분히 보충했다. 길 위에서 오래 생활하다 보니 편한 잠자리와 맛있는 음식 주는 사람이 제일 사랑스럽더라! 저녁을 사준 평통위원인 정지성씨도 여기서 한식당과 여행사를 하면서 뿌리를 내렸다.

▲ 엘림게스트하우스에서. 허 블라디슬라브님, 강명구님, 민주평화통일자문 키르기스스탄 지회장 정지성님 , 마가렛 김, 엘림 게스트하우스 이양종사장님

왕산 허위 장군 후손들도 이곳에 정착해 살고 있다. 경상도 구미가 본관인 그들은 거의 백 년 전 8000km를 흘러들어와 이곳에 살고 있고, 나는 서쪽 끝에서 8000km를 달려와 그들을 만났다. 허 블라디슬라브씨는 9형제 중 형님 한 분 누나 한 분만 살아있다. 그가 맏형님은 16세 때 우즈베키스탄에서 동사했다는 말을 할 때 그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그 한마디가 혹독한 삶을 다 이야기하는 것 같아서 나그네의 눈에도 눈물이 고였다.

▲ 비슈케크 안내를 맡아준 허 블라디슬라브님

아침에 카자흐스탄으로 넘어가는 길에 허 블라디슬라브씨와 그의 조카 허 블라디미르씨가 배웅해주었다. 블라디미르씨는 다음 주에 이식쿨 호수에서 열리는 마라톤대회에 처음으로 풀코스 도전을 한다고 한다. 카자흐스탄 국경까지 15km를 나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달렸다.

▲ 독립군의 후손인 허 블라디슬라브씨 조카 허 블라디미르씨와 평화통일을 위해서 함께 달리니 가슴이 뭉클했다. 미리 홍보가 안 된 것을 아쉬워했다.

독립군 손자와 증손자는 그들 할아버지가 이루지 못한 조국 자주독립의 꿈을 나를 통해서라도 꼭 이루어졌으면 하는 심정으로 나에게 극진했다. 그들은 헤어질 때 선물로 준 휴대폰 케이스에 200달러를 넣어주었다. 마치 독립자금이라도 받은 듯 결연함이 울컥 올라온다.

▲ 키르기스스탄에서 카자흐스탄으로 넘어가면서 헤어짐이 아쉬워

나는 사실 늘 지나다니던 서울 동대문에서 청량리역에 이르는 왕산로가 왕산 허위선생을 기리는 길이라는 걸 알 지 못했다. 왕산 허위선생은 구미 태생 조선말 의병장이다. 명성황후가 시해된 후 조직한 13도 의병 연합부대 총군사장으로 대대적인 항일운동을 펼쳐 왜적의 간담을 서늘케 한 인물이다.

안중근 의사는 후일 "우리 2천만 동포에게 허위 선생과 같은 나라 사랑하는 마음과 용맹의 기상이 있었던들 오늘날 같은 국치의 굴욕은 받지 않았을 것이다."고 그를 흠모하였다.

왕산 허위 가문은 우당 이회영 가문, 안중근 가문, 석주 이상룡 가문과 함께 항일운동 최고 명문 가문 중 하나이다. 허위 가문은 충효를 중시하는 가풍 덕분에 그의 4형제와 그의 직계 후손들 그리고 이육사까지 독립운동에 뛰어들 수 있었다. 이육사 모친은 허위의 4촌 허길의 딸이다.

왕산 허위는 성균관 박사와 평리원 수반 판사를 지낸 문관이었다.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경기도 포천 등지에서 의병을 모집하여 일본군에게 타격을 입혔다. 그는 양주에서 서울탈환작전을 펼치며 일거에 동대문 밖까지 밀고 들어왔지만 역부족이었다.

결국 그는 잡혀 서대문 형무소 1호 사형수가 된다. 그가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면서 남긴 유언이 또 나를 찡하게 만든다. "아버지 장사도 아직 지내지 못했고 국권을 회복하지도 못한 불충과 불효를 지었으니 죽은들 어찌 눈을 감으리오!"

이제 우리는 전쟁을 통해서 우리 영토를 넓힐 수 없다. 그러나 우리 삶의 전 영역을 넓히고 활동 반경을 확장할 수는 있다. 그러니 젊은이들이여, 닭장 안에서 모이가 없다고 한숨짓지 말지어다. 유라시아 한복판에 뛰어들어 바라보니 초원의 풀처럼 기회는 널렸다. 혹여 닭장 속이 답답하면 배낭을 메고 닭장 속을 뛰쳐나오라! 그리고 가벼운 마음으로 세상을 주유하라! 그러면 답을 얻으리라. 우리의 영역은 한없이 확장되리라!

▲ 2018년 5월 4일에서 8일까지 달리면서 만난 사람들
▲ 2018년 5월 4일에서 8일까지 달리면서 만난 이정표
▲ 비슈케크의 이모저모
▲ 2018년 5월 7일 카자흐스탄 Alga 후방 2km에서 Kenen 후방 10km까지는 오르막길이 많았다.
▲ 2017년 9월 1일 네델란드 헤이그에서 2018년 5월 7일 카자흐스탄 Kenen 후방 10km까지(누적 최소 거리 8463m)

* 평화마라톤에 대해 더 자세한 소식을 알고 싶으면 공식카페 (http://cafe.daum.net/eurasiamarathon)와 공식 페이스북 (http://facebook.com/eurasiamarathon), 강명구 페이스북(https://www.facebook.com/kara.runner)에서 확인 가능하다. 다음카카오의 스토리펀딩(https://storyfunding.kakao.com/project/18063)과 유라시안마라톤조직위 공식후원계좌(신한은행 110-480-277370/이창복 상임대표)로도 후원할 수 있다.

[편집자 주] 강명구 시민통신원은 2017년 9월 1일,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1년 2개월간 16개국 16,000km를 달리는 유라시아대륙횡단평화마라톤을 시작했다. 그는 2년 전 2015년, '남북평화통일' 배너를 달고 아시아인 최초로 미대륙 5,200km를 단독 횡단한 바 있다. 이후 남한일주마라톤, 네팔지진피해자돕기 마라톤, 강정에서 광화문까지 평화마라톤을 완주했다. <한겨레:온>은 강명구 통신원이 유라시아대륙횡단평화마라톤을 달리면서 보내주는 글과 이와 관련된 글을 그가 마라톤을 완주하는 날까지 '[특집]강명구의 유라시안 평화마라톤'코너에 실을 계획이다.

사진 : 강명구, 김현숙 마가렛 / 동영상 : 김현숙 마가렛

편집 : 김미경 편집위원

강명구 시민통신원  myongkukang@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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