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앞, 국보법 폐지 일인시위 이주형 주주

김미경 편집위원l승인2018.06.15l수정2018.06.19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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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1일부터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국가보안법(이후 국보법) 폐지를 주장하며 100회 넘게 일인시위를 한 사람이 있다. 그는 <한겨레> 창간주주이자 <한겨레> 영동지국을 운영했던 이주형씨다.

그는 지난 2~3년 동안 국가보안법과 관련된 책들을 수 권 읽었다.

작년에는 동국대 강정구 교수가 쓴 <국가보안법의 야만성과 반학문성>을 줄을 그어가며 정독했다. 강정구교수도 만났다. 진주 경상대학교 교수들이 쓴 <한국사회의 이해>까지 읽고 국보법의 본질을 깨닫고는 국보법 폐지에 적극 나서야겠다고 결심하고 행동에 옮기게 되었다.

그는 재미동포 신은미씨를 국보법의 대표적 피해사례라고 보았다. 신은미씨는 남편 제안으로 북한을 여행했다. 북한을 여행하며 겪은 이야기를 묶어 <재미동포 아줌마, 북한에 가다>라는 책으로 냈다. 이 책은 2013년 문화체육관광부 '우수문화도서'로 선정되기도 했다. 하지만 토크 콘서트에서 "대동강 물이 깨끗하다.", "(여행 중 만났던) 북한 주민들이 새로운 지도자 김정은에게 거는 기대가 크다." 등의 이야기를 했다는 이유로 국보법 위반으로 2015년 1월 추방당했다. 신은미씨 만이 아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9년 동안 국보법 위반으로 기소된 사람은 383명이다. 현저하게 감소되었지만 2017년 문재인 정부에서도 14명이 기소되었다.

김진향 카이스트 교수가 쓴 <개성공단 사람들>은 2015년 개성공단 기업체 사장들을 인터뷰하고 쓴 책인데 개성공단 사장들의 이름을 전부 가명 처리했다. 이주형씨는 그들이 국보법에 저촉될까 무서워 가명을 썼다고 생각한다.

그가 국보법 폐지 일인시위를 하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지난 2월 말이지만 사실 그의 국보법 반대운동은 2004년 시작되었다. 그가 입고 있는 노랑 조끼는 2004년도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 국보법 폐지 천막농성 시 입었던 조끼다. 노무현정권 당시 여당인 열린우리당이 다수당으로 있었지만 한나라당의 격렬한 반대로 국보법은 폐지되지 못했다. 그 당시 국보법 폐지농성에 나선 것은 국보법 희생자가 될 뻔 한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이후 알게 모르게 국보법을 의식하며 살았다.

1978년경이었다. 농민운동을 하면서 수원 크리스천 아카데미 농촌지도자교육에 후배 농민 2명과 갔다. 갔다 와서 경찰서에 불려갔다. 이장이 불순한 교육에 참석했다고 3사람을 신고해서 정보과에서 호출했다. 교육이 끝나고 후배 둘은 바로 고향으로 왔고, 이주형씨는 아는 형이 사는 인천에 갔는데 정보과 형사들이 왜 인천에 갔는지 꼬치꼬치 물었다. 이주형씨에게 ‘인천에 가서 배를 타고 북한으로 넘어가려고 한 것 아니냐’고 물었다. 아니라고 펄쩍 뛰며 강하게 부인하니 ‘여기서 이런 조사를 받았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쓰면 풀어준다고 해서 쓰고 풀려나왔다. 그런 의심을 받고 나니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국보법에 대해 알게 되면서 '나를 국보법에 걸려고 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광주항쟁 후 계엄령 시 우편물 검열로 ‘민관군합동수사대’에 불려간 적이 있다. 1980년 5월 30일 서강대 김의기 학생은 기독교 방송국 6층에서 비상계엄 전국확대조치와 5.18 광주항쟁 유혈진압을 비판하는 유인물을 뿌린 뒤 투신 사망했다. 그는 김의기 학생이 뿌린 유인물을 농민운동을 하는 동지에게서 얻어 보고는 이를 널리 퍼트리려고 우편물로 받아보았다가 검열에 걸린 것이다. 그는 이 유인물을 어디서 받았냐고 추궁하는 합동수사대에게 서울 갔다 오는 기차에서 옆에 앉았던 학생에게서 얻었다고 둘러댔다. '가농(가톨릭농민회)' 회원이다라고 밝히니 수사관이 '가농' 조직을 건드린다고 생각했는지 풀어주었다. 그를 풀어주면서 수사관들끼리 “계엄포고령에 좀 미달돼.”라고 한 말이 아직도 생생하다.

1989년인가? <한겨레> 창간 후 <한겨레> 직원 등 40명이 함께 백두산 관광을 갔다. 연길에 갔을 때 한 서점에서 김일성 자서전을 보았다. 흥미진진해서 1시간 동안 서서 읽다가 책은 사지 못하고 나오는데 직원이 그렇게 재미있게 읽었으면서 왜 안 사가냐고 했다. 솔직히 국가보안법에 저촉될까봐 사지 못했다는 소리는 하지 못하고 다음 기회에 산다고 했다.

그렇게 국보법이 그의 삶에 알게 모르게 스며들어 자유로운 생각과 행동을 옥죄고 있다고 생각하던 차에, 국보법을 제대로 공부하고 그 본질과 심각한 폐해를 속속들이 알고 나니,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어 청와대 앞으로 나오게 된 것이다

▲ 국회의사당 앞에서도 만나게 될 셔츠

그는 지난 6월 8일 100회 일인시위를 마치고, 6월 12일 북·미회담 후 일인시위를 끝내고자 했다. 북미 정상의 만남으로 국가보안법은 더 이상 국민들을 구속할 수 없는 자연사한 법이라 생각했고, 문재인 대통령도 후보 시절 국보법은 폐지되어야 한다고 한 인터뷰에서 명확히 밝힌 바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2004년 경우를 보더라도 매사에 발목을 잡고 있는 적폐수구당이 국회에 있는 한, 국회입법처리로 폐지가 될 때까지는 사라진 것이 아니다라는 생각에 일인시위를 계속하기로 마음을 바꿔먹었다. 앞으로 국회의사당 앞과 청와대 앞에서 번갈아가며 일인시위를 이어갈 생각이다.

참고기사 : [유레카] 보안법, 박물관에 가는 날 /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843024.html

편집 : 김동호 객원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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