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여행에서 다시 만난 옛 추억

- “아빠” 총 사주새요. 그러면 학교가서 공부도 잘할거고요. 그리고 동생도 매일 놀아달라면 놀아줄거고요 뿐만 아니라 도와주기도 할 거에요. 그리고 맨날 지금까지 총알만 주워 주었잖아요. 그리고 착한아이 둴께요. 이 말을 약속하깨요. 그러니 총 사주새요. -

초등학생이었던 아이는 이렇게 썼다.

다음 달이면 출국하는 큰 아이에게 접종을 증명할 산모수첩이 필요했다. 잦은 이사로 어딘가 사라져버린 수첩을 찾기 위해 이곳저곳 뒤적거리다 이 편지를 발견했다.

그때는 BB탄이 유행이었다. 어린 아이들은 플라스틱 총알을 난사하며 아파트랑 뒷산을 뛰어다녔다. 그들 사이에 자신의 아이도 끼고 싶어했다는 것을 젊은 아빠는 못마땅해 했을 것이다. 아이는 어린이에게 총은 어울리지 않는다는 설익은 설명을 절대로 이해할 순 없었을 것이다. 젊기만 했던 아빠는 아이의 욕구를 보지 않으려 했을 것이다.

햇빛에 반짝이는 콩알같은 것들을 주워내고, ‘한번만 쏴보게 해주라’는 부탁에 ‘싫어’하는 답변이 당연히 돌아올 줄 알면서도, 아이는 매일 줍는 일을 멈추지 않았을 것이다. 먼 나라의 네 또래 중에는 진짜 총을 메고다니다 죽거나 부상당한다는 이야기도, 네가 어른이 될 때에는 미세 플라스틱이 플랑크톤처럼 바다를 떠돌아 뭇 생명을 힘들게 할 거라는 얘기도, 아이가 듣고 싶은 이야기는 아니었을 것이다.

▲ 엄마, 맞춤법을 교정하고 찢어진 편지를 붙였다
.

아이는 올해 스물 다섯이 되었다.

남해로 가는 가족여행, 서로 바빠 모이기 힘들었던 네 식구는 주말 일정을 각자 비워두었다.

여행지 저녁 식탁에서 자신이 썼던 글을 다시 읽더니, 웃음을 참지 못하며 “정말로 매일 총알만 주웠단 말야?”라고 항의투로 말했다. 그때 아이는 스물 다섯이 아니라 비뚤거리는 글씨의 여덟 살 같았다.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그 여덟 살. 그래서 더욱 다시 가보고 싶은 아이의 그 때 그 시절 추억을 두고, 오늘의 추억을 두고, 아이는 내달 먼 타국으로 떠난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입학하고, 군대를 다녀왔지만, 또래 청춘처럼 자신의 미래가 답답할 거라는 것을 예감했을까, 살면서 운영체제 하나 설치해보지도 못한 아이가 외국에 가서 ‘컴퓨터공학’을 공부해보겠노라 했을 때 나는 뭐라고 말할 수 없었다.

'그 나라 가게에서는 진짜 총을 팔고, 그 나라 정부는 보이지 않는 총알을 만들어 세상의 약한 사람들을 호령하고 싶어하며, 네가 공부하고자 하는 컴퓨터는 언제부터인가 소리없는 총이 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네가 했던 것처럼 그 '총알'을 줍는다고. 하지만 너랑 달리 그것으로 살아간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내가 꿈만 꾸었던 길을 아이는 걸으려 한다. 아무것도 없이 끝까지 갈 수 있는 출발을 힘껏 만들고 첫 발을 내딛으려 한다. 남은 길은 아직 멀다. 언젠가 힘이 들 때, 여행의 추억을 떠올리며, 끝까지 ‘총’을 사주지 않은 아빠와 웃음꽃 피게 만든 그 편지를 기억하며 또다른 길을 만들어 낼 것이라 생각한다.  

▲ 뉴욕, 밝은 밤풍경 속에 아이의 환한 웃음이 감춰졌다

그 때로 다시 돌아간다면, 아이를 불러놓고 번쩍거리는 새 ‘총’을 건네주며 이렇게 말하고 싶다. “약속하지 않아도 좋아, 동생과 놀아주지 않아도, 공부 못해도 괜찮아.” 어리둥절할 지도 모르는 아이에게 이렇게 얘기하여 그 순간을 기억하고 싶다.

“아빠한테 얘기해줘서 아빠는 정말 좋았어.”

편집 : 김동호 객원편집위원, 심창식 편집위원

김해인 주주통신원  logcat@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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