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북에서 글쓰기2] 이동구 에디터

소크라테스가 기억력 저하를 이유로 ‘글쓰기’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가졌다면 아리스토텔레스는 글쓰기가 오히려 사고를 확장시켜 주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는 ‘읽는 습관’을 가지라고 권유했습니다. 인간이 문자를 기록하는 습성을 가짐으로써 개인들은 전문적인 정체성을 가질 수 있게 되었고 지식을 축적하고 복잡한 사고가 가능해졌다는 것입니다. 하기야 지식이 축적되어 문명이 탄생하고 근대의 태동과 첨단 과학 시대를 이끈 1등 공신이 ‘글’이라는 점에 대해서 토를 달 사람은 없겠죠?

베이컨과 데카르트에게 영향을 준 라무스(1515-1572) 연구의 제1인자로 말과 글의 정신 역학관계에 대해 연구한 ‘구술성과 문자성(Orality and Literacy)’(1982)의 저자 월터 옹(Water J. Ong, 1912-2003)은 문자의 발명으로 ‘쓰기’가 말의 시대엔 상상할 수 없던 추상적이고 세분화된 수많은 말을 만들어 내어 인간 간의 의사소통을 풍부하게 하였다고 설명했습니다. 책에 담긴 그의 주장을 잠깐 소개해볼까요.

“머리와 입을 떠나 종이에 옮겨져서 고정된 말, 즉 ‘글’은 말과 달리 삭제되거나 지우거나 변경될 수 있습니다. 말할 때는 이런 짓은 할 수 없습니다. 입 밖으로 나온 말은 주워 담을 수 없지요. 글처럼 지울 수 없다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정정하는 것은 좋지 않은 말투나 잘못된 말을 삭제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부정해 버리거나 잡동사니 주워 모으기가 되기 십상이어서 그것을 보충하는 데 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 이렇게 말합니다.

“말을 정정하는 것은 보통 역효과를 낳습니다. 이런 경우 말하는 사람의 신용도 떨어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말의 정정은 최소한으로 하거나 하지 않는 편이 좋습니다. 하지만 쓰기(글)에 있어서 정정은 대단히 큰 효과를 낳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독자는 정정이 이루어진 것조차 알 도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커뮤니케이션 도구로써의 ‘쓰기’에 대해 옹은 하나의 기술(technology)로 보았습니다. 쓰기는 가공된 종이나 가죽 같은 잘 다듬어진 표면, 잉크나 페인트, 그리고 펜이라는 장치와 도구를 필요로 하는 하나의 ‘기술’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쓰기는 자연적인 말과는 달리 ‘인공적’이고, 그 과정은 규칙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고 보면 쓰기(글)에 대해 옹은 소크라테스나 플라톤 편에 서 있는 듯합니다. 그도 직접 얼굴을 맞댄 환경에서 만들어지고 목소리로 되돌려지는 ‘구술성’ 없이 바람직한 의식은 만들어질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동구 에디터  do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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