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마 탄 기사와 우렁각시

언제부터인가 기다림이 줄었다. 아니 거의 없어졌다. 기다림은 그리움이고 설렘이다. 기다림에 빠지면 낮에는 바람과 손잡고 하얀 구름 위를 둥둥 떠돌며, 밤에는 별들과 어울려 춤추고 노래한다. 기다림은 끌림이고 사랑이다. 하지만 인내해야 숙성(熟成)된다. 숙성되어야 참다운 멋을 보고 진한 맛에 빠진다. 삶의 활력소인 기다림이 없으면 삭막하고 희망이 사라진다. 심신에 삭풍이 불어 뼈까지 시리다. 기다림이 없는 삶은 팥 없는 찐빵이요, 김빠진 풍선이다. 허망한 날들이 되기 십상이다. 그럼에도 왜  왜 기다림을 멀리하는가?

▲ 출처 : pixabay, 아득한 사막 저편의 그리움

한때는 심산유곡이나 광활한 사막 가운데 버려져도 생생하게 살아날 자신이 있었다. 남들로부터 그렇다는 인정과 평가도 받았다. 하지만 어느 날 아침 안개처럼 사라졌다. 스스로 없애려고 노력도 했고, 기다리거나 기대하지 말자는 다짐도 했다. 만사가 귀찮고 싫었다. 사람 때문이었다. 물론 전적으로 필자의 귀책이다. 만인만사를 포용하지 못했고 화합하지 못한 탓이다. 옹졸하고 미숙했다. 어찌하랴 그릇이 그것밖에 못됐으니 그렇게 살 수 밖에 없었다. 노력은 했지만 되지 않은 게 많았다. 남 탓이 아니다. 다만 자연등이 필자를 어떻게 하지 않았기에 원인이라면 인간관계라는 차원이다. 새삼 관계의 중함을 되새긴다.

▲ 출처 : pixabay, 약속된 기다림

삶은 기다림의 연속과정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리고, 입학과 졸업을 기다리고, 취업과 성공을 기다린다. 기다림이 없다면 삶은 무슨 재미와 의미가 있겠는가. 기다림이 있기에 해가 뜨는 것도 밤이 오는 것도 의미가 있다. 예약 없는 기다림에 지치기도 하지만 비할 바 없는 기쁨과 즐거움이 있다. 짝사랑처럼. 기다림이 없다는 것은 삶의 맥박이 줄어간다는 것이다. 기다림을 살려야 한다. 그래야 삶의 맥박과 활력이 살아난다. 차안(此岸)의 삶도 기다림이요, 피안(彼岸)의 삶도 기다림이기에. 필자의 중심엔 한겨레가 있고 한겨레온이 있다.

▲ 출처 : pixabay, 백마 탄 왕자

여성들의 삶의 맥박은 무엇일까? 백마 탄 기사이리라. 기다림은 소녀시대로 끝나지 않고 영원히 지속되는 듯하다. 이게 끝나면 생도 끝나기 때문일까? 아마 그럴지도 모른다. 그래서 여성은 아름답다. 여성은 이상적인 꿈속에 산다. 아무리 세월의 나이가 많아도 꿈꾸는 소녀인 것이다. 남성들은 그것을 알아줘야 한다. 남성들의 삶의 맥박은 무엇일까? 깔끔한 밥상을 차린 우렁각시다. 아무리 힘들고 고달파도 따뜻한 밥상 앞에 우렁각시가 앉아 있으면 그것으로 만사 OK다. 대다수의 남성들은 그것으로 족하다. 필자가 그러하니. 망망대해와 우주를 넘나드는 용맹과 망상도 우렁각시 앞에 서면 스치는 바람일 뿐이다. 남성들의 삶의 맥박은 지극히 현실적이다. 단순 먹방이다.

▲ 출처 : pixabay, 전통적인 우렁각시

최상의 조화인 백마 탄 기사와 따뜻한 밥상의 우렁각시는 만날 수 있을까? 늦은 감이 없지 않으나 그날을 기다려도 될까? 어림 없는 망상일까?

편집 : 김혜성 객원편집위원

김태평 객원편집위원  tpkki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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