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 한겨레, 연암 박지원, 1737년 ~ 1805년, 청나라 요동(遼東)ㆍ요하(遼河)ㆍ북경(北京)등을 여행 후 남긴 기행문 <열하일기(熱河日記)>로 유명.

만백성 가운데서 특별히 한두 사람을 천거할 때, 온 세상이 다 깜짝 놀라는 것은 잘된 선거가 아니고 만백성이 다 신복하는 것이 잘된 선거이며, 그 당류(黨類)들만이 잘했다고 칭찬하는 것은 잘된 선거가 아니고 어리석은 사람들까지 다 잘했다고 칭찬하는 것이 잘된 선거이다. 그러나 그 뒷날 직책을 수행할 때의 성패 이둔(成敗利鈍)은 그 교접 운화(交接運化)가 적절한 시기인가 아닌가에 달려 있는 것이다. 따라서 그 시기를 잘못 만난 것을 선거한 사람의 책임으로 돌리는 것은 잘못이며, 또 선거한 사람에게 그 공(功)을 돌리는 것도 역시 잘못인 것이다.

선거의 본뜻은 단지 그 인재의 타고난 자품과 성행(性行)과 국량(局量)이 주통(周通)한가와 학식(學識)을 두루 갖추고 있는가를 살펴 그를 적당한 직무에 천거하여 임명하도록 하는 데 있을 뿐이다. 그러니 얼마간의 세월이 지나고 나면 이런 요소들이 어떻게 바뀌게 될지를 어찌 미리서부터 다 알 수가 있겠는가. 그런데도 어리석은 자들은 매양 그 궁극적인 성패(成敗)로 선거가 잘되고 잘못됨을 삼으니, 만약 이렇게 되면 세상에는 인재를 천거할 만한 사람이 아무도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을 천거하였다가 뒷날의 근심거리를 만드는 것보다는, 차라리 아무도 천거를 하지 않아서 뒷날의 걱정거리를 전혀 만들지 않는 것이 더 나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선거를 관장하는 사람에게 반드시 이 뜻을 알도록 하여, 그의 개인적인 생각이나 다른 사람의 위세가 선거에 끼어들지 못하게 해야 한다. 그래서 마음이 공평(公平)하고 증거가 명백하면, 그 마음을 청천 백일(靑天白日)에 비추어 보아도 부끄러움이 없고 떠도는 비방도 행운 유수(行雲流水)처럼 흘려버릴 수 있게 된다. 지난날 인재를 잘못 천거한 자에 대해 연좌제(緣坐制)를 실시했던 것은, 오로지 그 처음 인재를 추천할 때 잡스러운 마음을 품고 공론(公論)이 인정하지 않는 자를 등용하여 끝내 일을 그르친 경우에만 해당시켰던 것이니, 이는 당초에는 누구나 잘한 선거라고 하다가 후에 불행한 상황을 당해 일을 그르친 경우에는 해당되지 않는 것이었다.

대개 사람의 운화란 처음에는 좋지 못했다가 뒤에 좋아지는 경우는 있으나 처음에는 좋았다가 뒤에 나빠지는 경우는 없는 것이다. 처음에는 좋았다가 끝에 나빠지는 경우의 그 착함은 아직 굳어지지 못한 착함인 것이니, 이런 사람을 잘못 천거한 것은 공론과 맞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런 자에 대해서는 그 일이 잘못되기를 기다려 연좌법을 적용시켜야 한다. 그러나 교접 운화(交接運化)에 있어서는, 일의 기회는 행불행(幸不幸)이 있고 시세의 변천은 이불리(利不利)가 있는 것인데, 어찌 단지 이런 교접 운화가 잘못된 것을 가지고 연좌제를 적용시킬 수 있겠는가.

출처 : 연암집 인정6권 선인문1 잘못 천거한 데 대한연좌緣坐

편집 : 김태평 객원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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