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는 세월에 안부를 묻다.

하루가 간다. 사람이 원하던 원하지 않던 비겁도 무서움도 모르고 가고 간다. 사람들은 어머니 뱃속을 떠나는 순간부터 시작된 여행을 멈추지 않고 가고 또 간다. 그런 점에서 하루하루 세월 가는 것과 지상의 모든 태어남을 가진 생명들의 비겁도 모르고 무서움도 모르는 질주는 숙명인지도 모르겠다.

이제 한 장 남은 12장짜리 달력을 보며 인류가 숫자라는 것을 만들고 그 숫자놀음에 지배받으며 살아가는 것이라고 비판적으로 말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와 무관하게 또 사색에 잠기게 된다.

얼마 전 나의 아버지께서는 조상님들을 모셨고 어머니와 함께 훗날 머무를 곳을 정하셨다. 그런 아버지의 심정은 어떤 것일까? 헤아릴 수 없는 부모님의 마음을 막연히 엄숙하게만 바라볼 수밖에 없다.

고향 마을 집을 떠나며 나의 책장이 있는 방 안에는 부모님 수의도 준비되어 있었다. 모두가 부모님들께서 직접 장만하신 것이다. 80대 중반의 부모님들이 스스로 미래를 위해 준비하신 귀중품이다. 망연히 바라보다 쓸쓸한 마음으로 고개를 돌린다. 그리고 나는 그런 사실을 내 마음 속으로만 다져 생각하고 생각해본다. 아내에게도 설명하거나 알려주지 못했다.

 

 

[편집자 주]  김형효 시인은 1997년 김규동 시인 추천 시집 <사람의 사막에서>로 문단에 나왔다  <사막에서 사랑을> 외 3권의 시집을 냈다. 산문집 <히말라야, 안나푸르나를 걷다>, 한·러 번역시집<어느 겨울밤 이야기>, 2011년 네팔어, 한국어, 영어로 네팔 어린이를 위한 동화 <무나 마단의 하늘(네팔 옥스포드 국제출판사)>외 2권의 동화도 출간했다. 네팔어 시집 <하늘에 있는 바다의 노래(뿌디뿌란 출판사>도 출간했으며 현재 한국작가회의, 민족작가연합 회원이다.

편집, 사진 : 양성숙 편집위원

김형효 시민통신원  Kimhj0000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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