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 공원이나 전철역에 가면 이렇게 칸을 나눈 의자를 자주 볼 수 있다.

▲ 역사 안의 의자

왜 의자에 칸을 만들었을까? 앉았을 때 행여 서로 다리가 닿을까 염려해서 그리 만들었을까? 그건 아닌 것 같다. 사람이 눕지 못하게 만든 것일 거다. 특히 노숙자를 겨냥하여 저리 만들었지 싶다. 노숙자가 공원이나 역사에서 자는 것에 찬성하진 않지만, 그들에 대한 조금의 배려도 없는, 아니 배척이 보이는 저런 의자를 갖다 놓았다는 생각을 하니 우린 비정한 사회에서 산다는 생각이 든다.

출판사업을 하다 망했다. 아내가 재산보호 차원에서 이혼을 요구해 위자료와 아이들 양육비로 거의 모든 재산을 주고 이혼했다. 누구에게도 말 못하고 혼자 원룸에 살면서 재기하기 위해 몸부림쳤다. 재기는커녕 상황이 더 악화되어 고시원으로 가게 되었다. 일용노무직으로 떨어졌다. 일용노무직 이 년 만에 걷기 힘들 정도로 병이 들었다. 노동도 하던 사람이 하는 거지... 펜대만 굴리던 사람이 할 수 있나. 일을 못 가니 곧 돈은 떨어질 거고 다음 단계는 고시원에서 쫓겨난 노숙자다. 몇 년 만에 사장에서 노숙자로 갈 뻔한 사람의 실제 사연이다.

 

▲ 역사 안의 의자

 

저 철제 의자를 보면서 그 차가움에 앉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다. 타인의 고통에 고개 돌린 쌀쌀맞은 한국사회가 느껴진다. 조금의 옆도 돌아볼 틈 없이 각기 제 역할에 맞춰 앞만 보고 빠르게 달려가는 현대사회. 한두 번의 실수로 넘어지기라도 하면 정상궤도로 다시 돌아오기 쉽지 않은 사회다.

지금 한국 사회는 불안하고 매정하다. IMF 이후 그렇게 달려오고 있다. 젊은이 취업률은 형편없다. 사회안전망은 구멍이 숭숭 나있다. 지역공동체는 이미 무너진 지 오래다. 가족공동체도 점점 무너져 가고 있다. ‘나 싫으면 너 죽어라’고 하는 분노조절불능자들이 이곳저곳에서 터져 나온다. 남녀사회는 혐오의 손가락질로 편 가르기에 여념 없다. 최저임금과 외국인 노동자, 난민에 대한 거부반응처럼 나에게 조금이라도 손해가 된다고 생각하면 벌떼처럼 달려들어 내치려한다. 여기에 낙오된 자를 위한 자리 마련해줄 여유는 더 더욱 없다. 

정부가 포용사회로 가는 길을 선택했는데 국민의식도 '포용'을 따라갈 수 있을까?

저 차가운 철제 의자를 보면서 사회에서 배제되어 추위와 설움을 씹어가며 밤을 새울 사람들을 생각하니 이 사회의 '포용없음'이 다시 한 번 더 머리를 때린다.

 

편집 : 김동호 객원편집위원

김미경 편집위원  mkyoung6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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