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는 언제부터 어떻게 만들게 됐을까?

그 누구도 정확하게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는 우리 인류의 삶과 동시에 이뤄졌을 것이다. 내(川)를 건너야 할 때 그 방법을 찾았을 것이고, 먹을거리가 풍부한 바다로의 진출도 절실히 요구됐을 것이다. 처음에는 그냥 물에 뜨기만 하면 됐겠지만 사람의 몸이 물에 젖는 것이 불편했을 것이고, 짐도 날라야 했을 것이다. 배란 아득한 옛날부터 고기잡이, 해상의 운송수단, 전선 등 다양한 형태로 긴긴 세월을 지나면서 변해왔을 것이다.

▲ 그림1 패루의 갈대배(草船)

(출전: 한국의 전통선박 한선)

▲ 그림2 중국의 소쿠리 배

(출전: 세계의 역사를 움직인 배들)

위의 그림1과 2에서 보는 것처럼 물 위에 뜰 수 있는 물체를 이용했을 것이고, 점진적으로 부력(浮力)이 좋은 것도 찾았을 것이고,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어야 했을 것이다.

배의 시초라고도 하는 떼배를 보면 제주에서는 구상나무를, 거문도에서는 동백나무를, 남해에서는 버드나무를, 정동진에서는 오동나무를 그 재료로 사용했다. 이 모두가 그 지역에서 많이 자생하고 있는 나무다. 그러나 이러한 형태의 배들은 많은 짐이나 사람을 태울 수 없어 불편함을 해소해야 했을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편히 탈 수 있는 배로 거듭 발전했을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조선 강국이라고 자랑스럽게 말들을 하지만 모두 다 우리 선조들의 덕이라는 생각을 떨쳐버려서는 안 된다. 우리가 조선 강국이 된 것은 어제오늘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오래전 삼한시대에 이미 크고 작은 민간교역이 이뤄졌다. 주호국(州胡國)이 배를 타고 왕래하면서 한(韓)의 국중(國中)에서 물건을 사고팔았다는 기록이 삼국지 등에 있다. 우리나라는 삼국시대부터 조선술과 항해술이 뛰어났음을 알 수가 있다. 백제가 처음으로 중국과 관계를 갖기 시작한 것은 근초고왕 27년(372) 때였다.

▲ 배를 만들고 있는 모습 (출전: 사진으로 보는 조선 시대)

중국의 기록에 함안(咸安) 2년 정월에 백제의 임읍왕(林邑王)이 사신을 보내 방물을 바쳤고 6월에 사신을 보내어 백제왕(근초고왕)을 진동 장군으로 삼고 낙랑 태수로 봉했다. 이렇듯 우리는 아득한 옛날부터 그 어느 나라보다도 조선술과 항해술이 뛰어났음을 알 수가 있다. 이러한 기술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그 기능을 계승 발전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마광남 주주통신원  wd341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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