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지(冬至)

우리 날로는 11월16일이다(서양 날 12.22).

동지가 초순에 들면 애동지, 중순에 들면 중동지라 하고 그믐께 들면 노동지라고 한다. 애동지에는 팥죽을 쑤지 않고 대신 팥 시루떡을 먹었지만 요즘에는 이와는 상관없이 팥죽을 쑤어먹는다.

▲ 출처 : 한겨레, 동지팥죽, 동지팥죽 한 그릇 들이키면 액을 떨치고 복을 불러온다.

동지에 팥죽을 먹는 유래를 보면 중국의 “형초세시기”에서 볼 수 있다.

공공씨共工氏의 망나니 아들이 동짓날에 죽어서 역신(疫神,전염병귀신)이 되었는데, 그 아들이 평상시에 팥을 두려워하였기 때문에 사람들이 역신을 쫓기 위하여 동짓날 팥죽을 쑤어 악귀를 쫓는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고려시대에는 만물이 회생하는 날이라 하여 고기잡이와 사냥을 금했다고 하며 서양 사람들은 이날을 해가 죽음으로부터 부활하는 날로 생각하고 태양신에게 제사를 지냈다고 하며, 고대 로마력(曆)에서 12월25일은 동지 날이었고, 중국의 주나라에서는 동짓날을 설날로 지냈다고 한다.

우리의 동국세시기에는 동짓날을 작은설, 즉 다음해가 되는 날이란 의미로 아세(亞歲,동지와 같은 말)라 했고 11월을 동짓달이라고 했다.

또한 왕실에서는 동짓날부터 점점 해가 길어지므로 한해의  시작으로 보고 새해달력을 나누어주었고, 궁중에서는 달력을 동문지보(同文之寶)란 임금의 도장(어새御璽)를 찍어서 모든 관원들에게 나누어 주는데, 관원들은 이를 다시 친지들에게 나누어 주었다고 한다. 이러한 풍속은 여름(단오)에 부채를 주고받는 풍속과 아울러 하선동력(夏扇冬曆)이라 하였다.

한편 제주에서는 매년 동짓날에는 제주도의 특산물인 귤을 임금님께 진상하였다.

궁에서는 진상 받은 귤을 종묘에 올린 다음에 여러 신하에게 나누어 주었고, 멀리바다건너 귤을 가지고 상경한 섬사람에게는 음식과 비단 등을 하사하였으며 귤을 진상한 것을 기쁘게 여겨 임시로 과거를 실시하여 사람을 등용하는 일이 있었는데 이를 황감제(黃柑製)라 하였다.

이날 팥죽을 쑤면 먼저 사당에 올려 차례를 지낸 다음 방과 장독, 헛간 등에 한 그릇씩 떠다 놓고 대문이나 벽에다 죽을 뿌린다.

붉은 팥죽은 양(陽)의 색깔로 귀신을 쫓는다고 믿었으며, 부적으로 뱀 사(蛇)를 써서 벽이나 기둥에 거꾸로 붙이면 악귀가 들어오지 못한다고 전해지고 있으며 동짓날 날씨가 따뜻하면 다음해에 질병으로 사람이 많이 죽는다고 하며, 눈이 많이 오고 날씨가 추우면 풍년이 들 징조라고 하였다.

황진이의 시조에

동지(冬至)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를 버혀 내여/ 춘풍(春風) 니불 아래 서리서리 너헛다가/ 어른님 오신 날 밤이여든 구뷔구뷔 펴리라.

이러한 풍습이 모두 사라져 간다. 옛날에는 이웃집이 팥죽을 쑤지 않는 집이 있으면 담 너머로 불러 나누어 먹던 그런 시절이 아쉬울 뿐이다. 그 정서는 다 어디로 간 것일까? 그래도 동짓날이면 팥죽집이 장사가 잘되는 것으로 보면 동지를 잊지는 않았다고 생각이 들어 그나마 다행이다.

편집 : 김태평 객원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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