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학교는 꼭 다녀야 하는 거야?”
초등학교 2학년 여름방학 때 다향이가 물었습니다. 조금은 두렵고, 조심스러운 기색으로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무슨 말을 하려는 걸까?’ 궁금했지만 평소의 생각을 솔직하게 이야기했습니다.

“아니. 학교에 다니고, 안 다니고는 네가 선택할 문제지 꼭 다녀야 하는 건 아니야.”
다향이의 얼굴이 밝아지면서 다시 묻습니다.
“정말?”
“그럼 정말이지. 그런데 학교에 다니기 싫어?” 했더니 고개를 끄덕입니다. 까닭을 물었지만 나이가 어려서인지 이야기를 조리 있게 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엄마아빠가 알 수 있도록 한번 써볼래?” 했지요. 생각을 전달하는 데는 말보다 글이 더 정확한 법이니까요. 다향이가 이유를 쓰는 동안 학부모 참관수업 당시 기억이 되살아났습니다.

하나밖에 없는 아이의 첫 참관수업인지라 기대가 컸습니다. 평소에도 조용하지 않았던 학교가 오일장처럼 시끌벅적했습니다. 학교주차장과 운동장은 물론 도로까지 온통 자동차가 점령했지요. 목련이 지고, 벚꽃이 화사함을 뽐내는 봄날. 평소보다 잘 차려입고, 화장한 엄마들이 이야기를 나누면서 운동장으로 학교 건물로, 복도를 지나서 교실 안으로 꾸역꾸역 모여들었지요. 운동회나 소풍을 갈 때처럼 학교 전체가 후끈 달아오른 것 같았습니다.

책상 앞에 앉아있던 아이들이 엄마를 찾느라 두리번거리고, 엄마들은 자신의 아이들을 찾느라고 바빴습니다. 얼른 찾지 못해서 아이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도 있고, 카메라를 들이대는 사람도 있었지요. 웅성거림으로 꽉 찬 교실 안에서 선생님도 긴장돼 보였습니다. 딩동댕 동! 수업 종이 울리고, 교실이 조용해졌습니다. 또래로 보이는 여선생님의 인사말로 수업이 시작됐습니다.

선생님이 칠판 앞에 서서 수업을 진행합니다. 책걸상 뒤쪽의 엄마아빠들을 쳐다보던 아이들은 선생님 말씀에 집중합니다. 몇몇 개구쟁이들이 뒤를 바라보면서 씩 웃곤 합니다. 아이들과 선생님이 수업을 합니다. 선생님이 질문을 합니다. “이거 누가 발표해 볼래?” 아이들이 경쟁적으로 손을 들면서 “저요”를 외칩니다. 손을 들지 않은 아이는 하나도 없습니다. 선생님이 질문을 하면 시선을 마주치지 않으려는 모습과는 딴판입니다. 미리 잘 짜인 각본대로 움직이는 배우 같았지요.

“저기 현준이가 말해볼래?”
선생님의 지적을 받은 아이가 벌떡 일어나서 “제가 발표하겠습니다” 하고 외칩니다. 반 아이들 전체가 짝짝 박수를 칩니다. 2002년 한일월드컵 응원 박수 소리처럼 일사불란합니다. 한 번만 그런 게 아니라 계속해서 반복이 됩니다. 그런 풍경이 낯설었습니다.

딩동댕동! 수업을 마치는 종이 울렸습니다. 평소에 아이들이 들락날락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뒷문 쪽은 학부형들로 가득 찼습니다. 그래서인지 아이들이 앞문으로 몰렸고, 선생님이 그 앞을 지키고 서있습니다. 아이들이 나갈 때마다 선생님이 ‘열중쉬어’를 주지시킵니다. 아이들이 열중쉬어자세로 교실을 나섭니다. 그리고 보기에도 불편한 자세로 복도를 다닙니다.

학부모참관수업이 끝났습니다. 아이들은 책상정리를 하고, 청소를 해야 한다면서 학부형들은 집으로 돌아가라고 합니다. 다향이랑 같이 집에 가려고 학교건물 밖에서 기다렸습니다. 잠시 뒤에 교실에서 나온 다향이가 말합니다.

“아빠, 짜장면 먹으면 안 돼?”
“왜? 먹고 싶어?” 하니까 고개를 끄덕거립니다. 그래서 둘이 중국음식점으로 갔습니다. 짜장면을 먹으면서 물어봤습니다.

“다향아.”
“응.”
“학교에서 수업할 때 매일 오늘처럼 해?”
“그게 무슨 말이야?”“오늘처럼 ‘제가 발표하겠습니다’ 한 다음에 얘기를 하냐고?”
“응. 매일 그래.”
“그럴 때 네 기분은 어때?”
“이상하지. 바보 같고. 그래서 난 대답 안 해.”
“…….”
“복도에서도 매일 열중쉬어자세로 다니고?”
“응, 매일 그래.”
“그건 어때?”
“답답해. 교래 분교는 좋았는데.”

그날 밤. 담임선생님한테 장문의 전자메일을 보냈습니다. 수업시간에 그렇게 기계적으로 질의응답을 할 필요가 있는지? 전쟁포로도 아닌 아이들을 그렇게 불편한 자세로 다니게 할 필요가 있는지? 학교의 주체인 아이들이 보다 자유롭게 지내도록 배려하면 안 되는지에 대해서 정중하게 물었지요. 행여 교권침해논란을 빚을까 싶어서 아주 정중히 말입니다.

메일을 받은 선생님이 학교에서 이야기를 하자고 했습니다. 최대한의 예를 갖추기 위해서 차와 차호세트를 준비해갔습니다. 그리고 차를 마시면서 한 시간이 넘도록 조근 조근 이야기를 했지요.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까지 예로 들어가면서 말입니다. 아이들이 복도를 자유롭게 다니게 하면 뛰게 되고, 그러다보면 서로가 부딪쳐서 이가 부러지는 등의 사고가 난다고 합니다. 구더기가 무서워 장을 담그지 못한다는 말이지요. 일제치하의 경직된 질의응답을 훌륭한 발표태도라고 생각하는 선생님의 마지막 말이 이러했습니다.

“아버님. 그럼 아이들이 손을 앞으로 모으고 다니게 하면 어떨까요?”
“…….”
그때 다향이가 많이 답답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어릴 때부터 존중을 받으면서 자랐고, 1학년 때는 전교생이 스무 명뿐인 작은 학교에서 자유롭게 지냈으니 더 힘들었겠지요. 다향이가 학교에 가기 싫은 이유를 다 썼을 때 평소 나의 생각과 다르지 않음을 확인했습니다. 그래서 의사봉을 탕! 탕! 탕! 두드렸지요. 다향이의 표현을 빌리면 그렇게 학교를 끊었습니다.

아내와 나는 여러모로 다르지만 아이의 양육과 교육에 대한 생각은 같습니다. 그래서 좋은 학군이라는 분당을 떠나서 제주도의 산골마을로 이사를 했지요.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기도 전부터 작은 학교에 1년, 보통학교에 1년 다니고 그만두면 좋겠다는 얘기도 여러 번 나눴습니다. 아예 학교를 보내지 않으면 두고두고 원망을 살 수 있으니까 다녀본 다음에 그만두도록 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을 한 것입니다. 
 
<나의 자유 이야기> 학교보다 집 공부가 좋은 이유
내 이름은 다향. 열 살이고 초등학교 삼학년 나이지만 학교는 다니지 않는다.
“빨리 일어나.” “빨리 밥 먹어.” “빨리 씻고 옷 입어.” “빨리빨리 하라니까 뭐하니? 왜 그렇게 꿈지럭거려?” “빨리 해. 학교에 또 늦겠다.” 학교에 다니면서 아침마다 귀가 아프도록 듣는 말이다. 그렇다고 학교가 재미있는 것도 아니다.

아이들은 욕을 많이 하고, 거짓말도 한다. 남자애들은 툭하면 싸우고 쌍코피가 터지기도 한다. 중간놀이 시간에 재미있게 놀다가도 종이 울리면 교실로 들어가야 한다. 조금만 늦게 들어가도 야단맞고 벌을 선다. 복도에서는 바보처럼 열중쉬어 자세로 다녀야 한다. “누가 발표해 볼래?” 선생님이 물으면 “저요, 저요” 하고 시끄러워진다. 선생님이 가리키면 “제가 발표하겠습니다”라고 말한다. 그러면 박수를 두 번 쳐야 한다.

동시를 쓰는 게 재미있는데 동시로 일기를 쓰지 못하게 한다. 일기를 그림으로 그려 가도 뭐라고 한다. 학교 화장실에서는 냄새가 난다. 하지 말라는 규칙이 너무 많다. 자유시간이라는 초콜릿도 있는데 학교에는 자유가 없다. 학교는 지루하고 재미없다.

‘어떻게 할까?’ 생각하다가 아빠엄마한테 말했다. 야단을 맞을 줄 알았는데 ‘그럼 학교를 그만두라’고 한다. 그러면서 학교에 가기 싫은 이유를 써보라고 한다. 생각나는 대로 쭉 썼다. 그렇게 나의 홈스쿨링이 시작됐다.

일찍 일어날 필요도 없고, 밥을 빨리 먹지 않아도 된다. ‘빨리빨리’란 잔소리도 사라졌다. 마음대로 책을 읽을 수도 있고, 색종이 접기도 실컷 할 수 있다. 복도에서와 달리 마음껏 뛰어다녀도 혼나지 않는다. 그림도 마음대로 그린다. 미술연필, 목탄, 물감, 색연필로 그림을 그린다. 잉크를 찍어서 펜화도 그리고, 벼루에 먹을 갈아서 수묵화도 그린다. 밀가루놀이도 많이 한다. 쿠키도 굽고, 빵도 만든다. 부침개도 부치고, 만두도 빚는다.

아빠랑 축구도 하고 캐치볼도 한다. 주먹밥을 만들어서 소풍을 간다. 바다에서 조개껍질도 줍고, 두꺼비집과 모래성도 쌓는다. 나뭇가지를 주워서 모래밭에 동시도 쓰고, 그림도 그린다. 운이 좋으면 햇볕을 쬐는 새를 발견하기도 한다.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논짓물에서 낚시도 하고, 교래리에서 말을 타기도 한다. 학교를 벗어나니까 재미있는 일이 많다.

오다향/어린이<한겨레신문 2008년 3월 25일>

* 한겨레에 ‘나의 자유이야기’라는 면이 있었습니다. 거기에 재미있는 글이 실리면 다향이한테 읽어줬지요. 그러다가 하루는 “다향아, 너도 써볼래?” 하니까 “싫어” 했습니다. “글 보내서 채택되면 원고료도 준다는데” 하니까 “아빠, 얼마 준대?” 하고 묻습니다. 그래서 “이 정도 분량이면 삼만 원은 줄 거 같은데” 했더니 “그럼 써 볼까?” 하고 보낸 글입니다. 글이 채택돼서 다향이의 통장에 사만오천 원이 입금됐을 때 입이 귀에 걸리는 줄 알았지요. 신문사에 투고하기 위해서 새로 쓴 글이라기보다는 ‘학교에 다니기 싫은 이유’를 다향이가 다시 정리한 것입니다. 다향이가 열 살 때 쓴 글입니다.

오성근 주주통신원  babsangma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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