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는 신성로마제국 황제가 집권했던 역사 도시 체코 프라하에서

체코의 수도 프라하의 구시가지, 프라하 성, 블타바 강에서 김광철 주주통신원l승인2019.02.07l수정2019.02.21 08:09

크게

작게

메일

인쇄

신고

▲ 프라하 시내를 관통하여 흐르고 있는 블타바강, 이 강의 이름은 지역에 따라 다르게 부르는데, '도나우'라 불리기도 하고 미국 등 영어권에서는 '다뉴브'라 부르기도 한다. 이곳 체코에서는 '블타바'라 부르고 있다. 강의 건너 쪽에 프라하성이 보인다.

8월 2일 독일의 드레스덴을 출발한 우리 일행은 바스타이 국립공원을 거쳐 4시간 정도 달려 체코의 프라하에 도착할 수 있었다. 도착 즉시 현지 한국인 가이드(한국인 부부인데 이곳에 진출하여 남자는 사업을 한다고 한다)의 안내를 받았다.

체코도 유럽의 여느 국가들과 같이 복잡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체코 역사의 중심은 보헤미아이다. 드넓은 비옥한 평야지대인 보헤미아는 동유럽에 자리 잡고 있으면서 신성로마제국의 선제후 국에 속하기도 하면서 신성로마제국 황제의 지위를 넘볼 정도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하고, 그에 따라 신성로마 황제가 보헤미아 왕을 겸하기도 하였지만 합스브르크 왕가가 300여 년 간 지배하기도 한다.

프로이센이 오스트리아와의 전쟁에서 승리하면서 오스트리아의 지배를 받던 이 지역은 프로이센의 지배를 받으면서 상류층은 독일어를 사용하고 체코어는 농민들의 언어로 전락한다. 이러한 독일의 지배에 대하여 체코인들의 민족적인 감정은 점점 증대되게 된다. 1848년 혁명의 시기를 거친 뒤 농노제가 폐지되면서 중산층은 권력의 상당 부분을 장악하게 되었다. 

▲ 프라하 시정이 있는 인근의 구 시가지의 모습이다. 4~6층의 오래된 건물들이 빼곡히 틀어 차 있지만 가고오는 사람은 별로 없어 한가한 도시풍경이 좋았다.

체코인들은 내부의 독일인보다 슬라브인에게 더 친밀감을 느꼈고, 러시아인과 슬로바키아인에게 가깝게 다가갔다. 제1차 세계대전 동안 토마슈 마자리크는 프라하대학교에서 지식인들을 규합하여 체코와 슬로바키아 민족주의 이념을 공표했고, 1918년 10월 28일 체코슬로바키아 공화국이 선포되었고, 1993년 체코와 슬로바키아가 분리될 때까지 체코슬로바키아 연방으로 유지하게 된다.

체코는 2차 세계대전에서 연합국의 승리로 당시 동유럽 대부분을 장악하고 있던 소련의 영향력 아래 공산당이 집권을 하게 된다. 프라하의 봄으로 유명한 두브체크의 집권 당시,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를 표방하면서 언론, 출판, 이주, 여행의 자유화 등을 시행하자, 당시 소련은 바르샤바 조약군을 이끌고 무력으로 프라하의 봄을 막아서자 체코인들의 이에 강력히 저항한다. 그 후 1989년 후반에 공산당은 권력에 대한 독점을 포기하고 반공산당 조직인 시민 포럼과 연립정부를 이루었다. 이후 슬로바키아와 분리, 독립하였고 1992년 12월 16일에 채택한 헌법에 체코 공화국은 민주주의 법치국가로서 개인과 시민의 권리 및 자유에 기초한 민주공화국을 세우게 된다.

▲ 체코는 유럽연합 회원국이지만 다른 나라들에 비하여 경제 사정이 안 좋아 '유로'라는 화폐를 사용하지 않고 '코루나'라는 화폐를 사용하고 있다.

오늘날의 체코의 국토 면적은 78,865㎢로 남한 땅보다도 작은 면적이다. 인구는 1천만 명이 약간 넘어 서울시의 인구 정도로 인구가 많은 편은 아니다. 국민소득 2만 5천 달러 정도에 이르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국민소득과 비슷하다. 체코는 서유럽 나라들보다 경제적 형편이 낮기 때문에 유로를 사용하지 않고 자국 화폐를 사용한다. 과거에는 사회주의 경제체제를 갖고 있었지만 지금은 시장 경제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우리 동유럽 교사 연수단이 체코의 수도 프라하에서 제일 먼저 찾은 곳은 이곳 시청이 있는 구시가지였다. 시청은 지나가면서 살펴보고, 체코에서 아주 유명한 천문 시계탑이 있는 건물로 향했다. 프라하가 굉장히 오래된 도시어서 그런지 4~6층짜리 대리석 등으로 지어진 건물들이 넓지 않은 길을 사이에 두고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중세 한 때는 신성 로마 제국의 수도로서 번영을 누렸던 데다가 유럽의 다른 도시와는 달리 제1, 2차 세계 대전의 피해를 거의 입지 않은 덕분에, 로마네스크, 고딕, 르네상스, 바로크 등 다양한 건축 양식의 멋진 고전 건축물이 고스란히 남아 있어 ‘지붕 없는 건축 박물관’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그렇지만 인구가 120만 명 정도밖에 안 되는 도시라서 그런지 길은 좁아도 오고 가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를 않아서 고풍스러우면서도 여유로웠다. 더구나 도시 한가운데를 넓은 블타바 강이 흐르고 있고, 그 강 위로는 유람선들이 떠다니고, 그 강 양안에 오래된 건물들이 자리 잡고 있어서 고풍스러우면서도 참으로 아름다운 도시였다.

▲ 프라하의 구시지 시청 건물 중 하나인 천문 시계탑이 있는데, 이곳에는 매시 정시가 되면 울리면서 12사도가 지나가는 것으로 유명하여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명소이다.

구 시청사 건물 중 하나인 천문 시계 앞에는, 매시 정각(09:00~21:00)에 시계가 울리는 것을 보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든다. 시계가 정각을 알리면 오른쪽에 매달린 해골이 줄을 잡아당기면서 반대편 손으로 잡고 있는 모래시계를 뒤집는 것과 동시에, 두 개의 문이 열리면서 각각 6명씩 12사도들이 줄줄이 지나가고 황금 닭이 한 번 울고 나면 끝난다. 천문 시계는 1490년 하누슈(Hanus)라는 이름의 시계공에 의해 제작되었다는데, 당시 시의회 의원들은 그 시계공이 다른 곳에서 똑같은 시계를 만들지 못하도록 하기 위하여 그의 눈을 멀게 했다고 한다. 시계공은 이를 복수하기 위해 시계에 손을 집어넣어 시계를 멈추게 했다고 한다. 그 후 이 시계는 여러 차례에 걸쳐 수리되었는데, 지금은 전동 장치에 의하여 움직인다고 한다.

▲ 프라하 시청 인근의 한 맥줏집에서 체코의 다양한 맥주들을 마셔보면서 그 명성을 확인하고 있는 동유럽 탐방단

우리 연수단은 프라하 천문 시계탑을 관람하고 난 후, 프라하 시내 자유 여행에 들어갔다. 나는 광주에서 온 선생님들 7~8명과 함께 프라하 시내의 한 맥줏집을 찾았다. 독일이 맥주의 원조라고 하지만 체코는 자신들이 세계 맥주의 원조라고 한다. 체코는 라거 맥주가 유명하다. 독일이 맥주의 국가라고 주장하는 것에 반론으로 항상 제시되는 국가가 체코로 전 세계에서 인구 비율당 가장 높은 맥주 소비율을 자랑하는 국가가 바로 체코이다. 체코는 황금색의 라거 맥주 필스너(Pilsner)를 처음 발견한 국가로 원조 필스너 맥주를 만든 양조장을 문화유산처럼 간직하고 있다.

우리 일행은 라거 맥주에서부터 다크 맥주까지 여러 종류를 골고루 시켜서 마셔보았다. 맥주 맛은 진한 호프의 맛이 배어 있어서 그런지 약간 씁쓰름하였지만 역시 명성대로 진하고 깊은 맛이 일품이었다. 특히 나는 라거 맥주보다도 다크(흑맥주)의 그윽한 맛에 푹 빠졌다. 정말 고소하고 깊은 맛은 지금까지 마셔본 그 어떤 맥주들보다도 잊을 수가 없다. 

몇 년 전 중부 독일을 중심으로 탈핵 기행을 갔을 때 함브르크의 새벽 시장이 떠올랐다. 새벽 시장에는 각종 야채와 과일 생선 등 생활 용품들이 두어 시간 반짝 장이 매일 서는데, 그 시장의 한 가운데에는 커다란 맥주 시음장이 있었다. 그곳에는 세계 각지에서 몰려드는 관광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였다. 그곳 맥주 시음장에는 독일의 온갖 맥주들이 팔리고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잔술로 파는 것처럼 각종 맥주들을 저렴하게 한 컵씩 팔고 있어서 각종 맥주들을 맛볼 수 있는 기회를 가졌는데, 그때의 추억을 떠올리며 체코의 맥주들 마시며 맥주 맛을 비교해 보았다. 나는 그때 함브르크에서 마셨던 맥주 맛보다 이곳 체코에서의 맥주 맛이 더 그윽하고 진해서 좋았다. 역시 체코의 맥주는 그 명성대로라는 것을 느끼면서 체코 여행에서 하나의 좋은 추억을 가직할 수 있었다.

▲ 대통령이 궁이 있는 프라하성에서 내려다 보이는 프라하시내의 모습이다

체코 방문 둘째 날 우리 연수단은 프라하성을 찾았다.

프라하 성은 9세기 중반에 건설되기 시작하여 14세기 카를 4세 때에 지금과 비슷한 길이 570m, 너비 128m의 성의 모습을 갖추었다고 한다. 이 성 안에는 1918년부터 대통령궁으로 사용되고 있기도 한다. 구시가지에서 블타바 강을 건너 쪽 언덕 높은 곳이 자리 잡고 있어서 이 성에 오르면 프라하 시가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성 비트 대성당과 구 왕궁으로 통과하는 통로 아래를 지나면 성 이르지 광장이 나타난다. 이곳을 지나면 성 이르지 성당, 성 이르지 수도원, 황금 소로, 달리보르카 탑, 장난감 박물관 등이 복잡하게 널려 있어 관광객들이 엄청나게 많이 붐빈다.

▲ 프라하 성 내에 있는 성비투스 대성당, 1344년 카를4세의 명령으로 짓기 시작하여, 16세기에는 르네상스 양식, 17세기에는 바로크 양식, 19~20세기에 들어서는 신고딕 양식으로 지어지는 등 여러 세기 동안 계속하여 지어지고 있는 건물이다. 길이가 120m에 이르고, 철탑의 높이가 100m에 이를 정도로 웅장한 건축물이다.
▲ 성비투스 성당 내부, 이 성당에는 많은 왕들과 얀 네포무스키 등의 묘가 있다고 한다.
▲ 비투스성당에는 유럽의 예의 성당에서와 마찬가지로 천정과 벽에는 이렇게 성화들이 그려져 있었다.
▲ 비투스 성당의 창문에는 이렇게 스테인드글라스가 새겨져 있는데, 이 작품은 세계적으로 유명하다고 한다.

프라하 성은 3개의 광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중 제3광장에는 성 비트 대성당, 현재 대통령이 집무하고 있는 대통령궁, 구 왕궁 등이 자리 잡고 있다.

▲ 체코의 대통령 궁이다. 체코 대통령은 국가를 대표하는 원수이지만 통치는 내각 수반이 중심이 되어 수행하는 내각제 나라이다.
▲ 프라하 성 안에서는 벽이 평면이지만 입체처럼 보이게 하는 지그라피트 기법에 의하여 지어진 건물을 만날 수도 있었다.
▲ 대통령 궁 앞에서, 공산당이 집권할 때 빼앗긴 땅을 도로 찾지 못했다고 하면서 그 땅을 돌려달라고 1인 시위를 하고 있는 사람

프라하 성은 제1, 2차 세계대전 때도 폭격을 당하지 않아서 옛 건축물들이 고스란히 남아있어 유럽에서도 손꼽히는 관광 명소이기도 하다. 프라하 성 안에 있는 성 비트 대성당은 1344년 카를 4세의 명령으로 프랑스 출신이었던 건축가 마티아스의 설계로 착공을 시작하여 170여 년이 지난 1588년에 완공이 된다. 그 후에도 20세기까지도 계속 증축이 되었다고 한다. 오랜 세월 동안 지어지면서 르네상스 양식, 바로크 양식, 신고딕 양식 등 다양한 건축 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길이 124m, 폭 60m로 그 규모가 대단하다. 이 성당의 지하에는 왕실 무덤과 성 얀 네포무츠키 묘도 있다. 성 비트 대성당에는 아름다운 스테인드글라스가 유명하다.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이 되어 있다.

▲ 구시가지와 프라하성을 연결해 주는 다리가 카를교다. 폭은 10m 정도로 좁은데 그 다리의 양안에 30개의 성인 조각상들이 세워져 있다. 종교 개혁가 얀후스 상도 있고, 얀네포무츠키 상도 있다. 얀네포무츠키는 카를4세 왕비의 고해성사의 비밀을 끝까지 지키다가 왕의 명령에 의하여 죽임을 당하고 블타바 강에 그 시신이 버려지는 최후를 맞으면서도 신부의 사명을 다하여 성인으로 추앙받는 분이다.

편집 : 안지애 편집위원

김광철 주주통신원  kkc0828@hanmail.net

한겨레신문 주주 되기
한겨레:온 필진 되기
한겨레:온에 기사 올리는 요령
<저작권자 © 한겨레:온,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김광철 주주통신원의 다른기사 보기

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서울 마포구 효창목길 6 (공덕동 116-25) 한겨레신문사 참여소통 데스크  |  전화 : 02)710-0093  |  등록일 : 2015년 1월 15일  | 발행일자 : 2015년 1월 1일
등록번호 : 서울 아03523  |  발행인 : 양상우  |  편집인 : 김광호  |  에디터 : 이동구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광호
편집위원 : 김경애, 김동호, 박효삼, 서기철, 심창식, 안지애, 양성숙, 정혁준, 김국화  |  객원편집위원 : 김태평, 김혜성, 유원진, 이미진, 허익배
Copyright © 2019 한겨레:온.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