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에서 백두를 넘어 핵 없는 세상'의 염원을 안고 오른 한라산

2019년 1월 11일 '탈핵희망국토도보순례단'의 겨울 순례가 있었다. 남북 정상이 백두산 장군봉에 올라 두 손을 맞잡고 들어올린 감동을 한라산 백록담에서 다시 한 번 재연하고, 한반도를 넘어 전 셰계가 핵무기와 핵발전소를 다 폐기하여 평화와 안전의 세상을 열어보자는 꿈을 꾸면서 한라산 순례길에 올랐다.
 

▲ 백록이 물을 마셨다는 전설을 안은 백록담은 이제나 저제나 그 귀인이 찾아주길 고대하며 눈밭에서 시린발 동동거리고 있었다.
▲ '눈 덮인 한라에 신선이 하늘에서 내려왔나?' 탈핵순례단과 함께 걸으면서 생명, 평화의 학춤을 추는 박소산씨가 하얀 두루마기에 갓을 쓰고, 의관을 정제하여 한라산에 오르니 신선이 따로 있겠는가?
▲ 눈 덮인 한라산은 태고의 신비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죽어 늘어선 구상나무 고사목들이 있어 그 신비는 더욱 품격을 드높이고 있었다.
▲ 잎을 다 떨군 앙상한 흰 가지가 겨울 바람에 흔들어 대니 시절의 하수상함을 온몸으로 저항하며 시절을 넘고 있는 사스레나무의 처절한 항쟁에 나그네는 숙연한 마음으로 그를 대할 수 밖에 없음이라. 핵이 쓸고 간 자리가 바로 저러하지 않겠는가? 탈핵에 대한 열망을 꼭꼭 가슴에 저미면서...
  1. ▲ 세계 유일 수종인 구상만 지배하도록 한라산은 놔 두질 않는다. 살아 천년, 죽어 천년의 주목도 함께 품고, 이 겨울 넘기려고 시린 발 끝엔 '한라조릿대'도 품어 안고 함께 모진 세월을 넘고 있었다.

 

다음은 제주 출신 시인이며 본 통신원의 사촌 형님이기도 한 김광협의 시 '강설기' 이다. 형님은 돌아가고 안 계시지만 눈 덮인 한라의 분위기와 딱 어울리는 시라서 가져온다.

 

  강설기

         김광협
 

눈은 숲의 어린 가지에 흰 깁을 내린다.
「프로스트」氏도 이제는 말을 몰고 돌아가버리었다.
밤은 숲의 어린 가지에 내려온 흰 깁을 빨아 먹는다.
흰 깁은 밤의 머리를 싸맨다.
설레이던 바람도 잠을 청하는 시간, 나는 엿듣는다.
눈이 숲의 어린 손목을 잡아 흔드는 것을,
숲의 깡마른 볼에 입맞추는 것을,
저 잔잔하게 흐르는 愛情의 日月을,
캄캄한 오밤의 푸른 薄明을,
내 아가의 無量의 목숨을 엿듣는다.
뭇 嬰兒들이 燈을 키어들고 바자니는 소리를,
씩씩거리며 어디엔가 매달려 젖 빠는 소리를,
나는 엿듣는다.

숲 가에서 나는 너의 두개의 乳齒를 기억한다.
너의 靈魂이 잠시 地上에 있었던 것을 기억한다.
너의 다수운 입김이 아침의 이슬로 되었던 것을 기억한다.
生命의 빛이 너의 눈동자에 가득차 있었음을 기억한다.
너의 손을 내저어 大氣를 흔들었음을 기억한다.
비록 부둥켜 안아 너의 步行을 연습시키었을지라도
너의 발을 디뎌 地球를 느끼었음을 기억한다.
너의 言語는 無에 가까웠을지라도 體得의 言語였으며,
너의 思索은 虛에 이웃했을지라도
血肉을 感知하는 높은 慧智였음을 기억한다.
잃어버린 모든 기억들을 나는 想起할 수가 있다.
그러나 나는 상기 단 한가지 罪의 의미를 알지 못한다.
숲 가에서 나는 너의 두 개의 乳齒를 기억한다.

눈은 숲의 어린 가지에 흰 깁을 내린다.
내리어라 내리어라 내리어라.
밤이 눈의 흰 깁을 빨아먹더라도
그의 이마에서 발 끝까지 와서 덮이어라.
溫柔의 性稟으로 사픗사픗 내려오는 숲의 母性이여.
숲은 내 아기의 變貌.
곁에 서면 歲月이 머리를 쓰다듬는 소리
歷史가 裝身具를 푸는 소리들,
시름에 젖은 音節로 되어
꽃잎처럼 흩어져 기어다닌다.
괴괴한 이 밤의 얼어붙은 支流에서
서성이는 나의 涕泣, 나의 기쁨.
내가 내 자신과 내 아가와 내 人類에게 가까이 돌아가는
淸澄하고 힘 있는 내 자신의 발자국 소리를 듣는다.
잃어버린 모든 것들을 想起할 수가 있다.
그러나 나는 상기 단 한가지 罪의 의미를 모른다.
내 숲이여, 내 아가야, 내 자신이여, 내 人類여.
나는 참으로 단 한가지 罪의 의미를 모른다.


  〈「동아일보」 1965. 1. 1 신춘문예 현상 당선작〉

 

편집 : 양성숙 편집위원

김광철 주주통신원  kkc082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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