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결혼 날짜를 잡은 딸이 계절의 여왕 5월에 드디어 5월의 신부가 되어 시집을 갔다. 5월 18일. 결혼기념일로 기억하기에는 좋을 듯하다. 

딸이 시집간다고 하니 친척들이 다들 묻는다. "딸 시집보내는 아빠의 심정이 어떠냐? 예식장에서 눈물을 흘리는 건 아니냐?" 마치 자신의 딸이 시집을 가기라도 하는 것처럼 진지하게 묻는다. 글쎄, 딸을 시집보내는 아빠의 마음은 어떤 걸까. 나도 궁금하다. 그래서 그 마음이 어떤 건지 딸을 시집보내고 나서 생각해본다.

딸을 시집보낸다는 건 이별을 뜻하는 의미에서의 분리다. 가족의 분리. 자아의 분리. 같이 살던 공간에서 벗어나게 되는 가족의 분리뿐만이 아니다. 나의 DNA를 물려받은, 이 세상에 단 둘 밖에 없는 자녀 중의 하나가 나로부터 이탈하는 것이다. 그래서 마음이 아픈 듯이 서글픈 듯이 서운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 딸이 자신의 방을 정리하고 짐을 빼갈 때 텅 비워가는 딸의 방을 바라보며 나의 일부가 비워져가는 것을 느꼈다.

▲ 떠나보냄

딸을 시집보낸다는 건 다른 가족이 생긴다는 의미에서의 확장이기도 하다. 가족의 확장. 사위와 사돈이라는 새로운 가족, 새로운 친척이 생기는 거다. 게다가 딸이 자식을 낳으면 나의 DNA를 일부 이어받은 새 인류가 탄생하게 된다. 자아의 증식이다. 그래서 흐뭇한 마음이 들기도 하고 든든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비워지는 마음 한 구석을 다른 무언가가 채워지는 느낌이 들게 된다.

그러나 딸을 시집보낸다는 건 그런 것만은 아니다. 딸은 시집가면서 나에게 많은 것을 느끼게 했다. 짐을 정리하다 보니 중고등학교와 대학 다닐 때 소중히 여겼던 예쁜 상자각을 하나도 버리지 않고 간직하고 있었다. 그뿐이면 말도 안한다. 자신이 사용했던 볼펜이나 학용품을 그대로 큰 상자에 보관하고 있었다. 펜슬이며 볼펜이 수십 자루나 되었다. 버리라고 했더니 버릴 수 없다며 아빠에게 물려(?)준단다.

모든 학용품에 자신의 추억이 서려 있으니 아빠가 알아서 쓰라고 한다. 아, 이런 딸같으니라구. 딸의 과거를 내가 추억할 수 있을지 의문이거니와 내가 딸의 과거 유물을 물려받아 청산해야 하다니. 이건 별 수 없다. 일정기간 가지고 있다가 일괄 폐기처분해야 할 것이다.

그런 거였다. 자신이 버리지 못하는 과거의 일부를 딸 대신 버려줘야만 하는 것. 그것이 물건이든 추억이든 현재성이 부족한 것은 버려야 한다. 당사자는 그것을 못한다. 누군가 대신 버려줘야 한다. 자신은 자신의 일부라도 되는 냥 껴안고 살았겠지만 아빠는 그것을 대신 버려줘야 한다. 버려야 할 게 어디 물건뿐이랴.

또한 딸을 시집보낸다는 건 나의 과거와 미래에 대한 연결고리를 연상하게 되는 일이다. 딸의 과거와 미래가 공간적으로 분리되는 시점에 이르러 나의 과거와 미래를 떠올리게 된 건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떠나는 자와 남는 자, 부모와 자식의 입장이 서로 교차되고 오버랩되어 마음을 서글프게 했다.

십 오 육년 전에 부모님을 여의었다. 나에게 유전인자를 물려주신 부모님과의 이별이 떠올랐고, 십여 년 전에 별세하신 인자하신 당숙어른과 작년말에 별세하신 친밀감 넘치던 장인어른과의 이별도 생각나게 한다. 모두 나를 아끼시고 사랑하셨던 분들인데 떠날 때는 홀연히 떠나셨다. 이 세상을 떠난다는 전제하에 좀 더 친숙한 대화를 나누었으면 좋았을 걸 하는 아쉬움이 늘 남아 있다.

자식들을 남기고 떠나야 했던 부모님과 둘째 당숙어른과 장인어른의 심정을 나는 여태껏 깊이 생각해보지 않았다. 부모와 당숙과 장인을 떠나보내야 하는 나의 입장과 감정을 소중히 여겼을 뿐이고 그 분들을 생각하며 회한에 잠겼을 뿐이다. 새삼 그 분들을 생각해본다. 딸의 빈 방으로 들어가 눈물을 훔치는 것은 단지 딸을 생각해서만은 아닌 것이다. 자식을 남겨두고 떠나야하는 부모의 심정이 새삼 떠올랐기 때문이며 언젠가 나도 그래야 한다는 걸 직감했기 때문이다.

과연 나는 자녀들을 남기고 저 세상에 갈 때 어떤 마음이 들까. 지금은 딸이 나를 떠나지만 나중에 내가 딸과 아들을 남겨두고 저 세상으로 떠날 때 남아 있는 자녀들은 어떤 마음으로 나를 떠나보낼까. 지금 내가 느끼는 '자아의 분리'를 겪게 될까. 아니다. 떠나가신 부모님을 생각해보니 그건 아니다. 이미 자아의 분리는 그 전에 이루어진다. 그래서 가슴 아프지만 떠나보낼 수 있다.

딸을 시집보낸다는 건 딸의 과거와 미래가 분리되는 시점을 온 몸으로 겪어야 하는 일이다. 딸은 자신의 과거를 부모에게 맡긴 채 자신의 미래를 향해 떠나간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딸의 행복한 미래를 마음속으로 기원하는 일이다. 엄마는 아빠에게 시집와서 고생했지만 딸만은 그런 고생을 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딸을 시집보내는 아빠의 마음이란 그런 것이다.

 

편집 : 양성숙 편집위원

심창식 편집위원  cshim77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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