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공화국 대한민국 학교 교육’을 ‘배움’으로 바꾸자

 [김두루한의 배움혁명① 배움밝힘] 민주공화국 대한민국 학교 교육’을 ‘배움’으로 바꾸자
 
‘교육’이란 무엇인가
 
새삼 대한민국 ‘교육계’가 말하는 ‘교육’이란 어떤 뜻인지 묻게 된다. ‘교육’을 ‘가르치고 기르는 일’로 볼 것인가? 아니면 ‘가르쳐 기르는 일’로 볼 것인가에 따라 ‘교육’의 중심과 방향이 달라지니까. 이제껏 해 온 대로 교육을 가르치고 기르는 일로 보게 되면 교육의 주체인 교사가 대상인 학생을 가르치고 기르는 활동이 된다. 따라서 교육의 중심은 자연히 학생을 가르치는 교사의 활동에 놓이게 되고 교사를 좇아서 배우는 학생의 활동은 주변에 머물고 만다.
 
 이와 달리 교육을 ‘가르쳐 기르는 일’로 보면 어찌 될까? 교육은 가르침을 펴는 교사와 기름을 이루는 학생이 함께 하는 활동이 된다. 따라서 교사와 학생은 모두 교육의 주체로서 새의 두 날개와 같이 가르쳐 기르는 일을 함께 이루어간다. 예기 학기에서 찾아 본 교학상장은 가르치는 이와 배우는 이는 서로를 키운다고 한다!
 
 “아름다운 요리가 앞에 있어도 먹어보지 않으면 그 맛을 알 길이 없고, 지극한 도리가 앞에 있어도 배워보지 않으면 그 위대함을 알 길이 없다. 그러므로 배우고 난 연후에나 비로소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고, 가르쳐 보고난 연후에나 비로소 가르침의 고단함을 깨닫는다. 자신의 부족함을 깨달은 연후에 사람은 진정으로 자기를 반성할 수 있고, 가르침의 어려움을 깨달은 연후에 스스로 자신의 실력을 보강하게 된다. 그러므로 말하노라! 가르치는 이와 배우는 이는 서로를 키운다!”
 
‘교육’이 아닌 ‘배움’에 길이 있다.
 그런데 가르침을 펴는 주체는 교사다. 교사는 가르침으로써 학생을 기르고자 한다. 하지만 교사의 가르침이 곧바로 학생의 기름으로 이어지는 것일까? 교사가 아무리 많이 가르쳐도 학생이 전혀 배우지 않으면 기름으로 나아갈 수가 있을까? ‘기름’이라는 열매를 가져오는 주체는 누구인가? 바로 학생인 것이다. 학생이 기름으로 나아가는 까닭에 ‘가르쳐 기르는 일’은 언제나 ‘배움’을 끌어들이게 된다. 학생이 전혀 배우지 않으면 기름으로 나아갈 수가 없기에.
 
 사람은 보고, 듣고, 따라서 배운다. 이때 원하지 않는 것, 쓸데없는 것을 학생의 의사나 의향과 달리 배우는 것은 억지 배움이다. 올바르지 않은 것 등을 배우니 거짓 배움이다. 그동안 대한민국 헌법에서부터 더욱 많은 것을 넓고 깊게 그리고 효과적으로 배우려고 가르침을 받는다고 말했다.
 
 대한민국에서 ‘가르침’(학교 교육)을 받으며 행복할까.
 “까닭 모를 우울함은 내가 살 희망을 잃어가기 때문이 아닐까? 사회에 나가서 그 순수함을 점점 잃어 가는 때 묻은 어른들, 그들은 나에게 환멸만을 안길 뿐이다.”
 
 11년 받은 ‘학교 교육’으로 살 희망을 잃어간다는 어느 고2 학생의 속마음을 읽어 보자.
 
“며칠 전에 수능 점수 발표가 있었다. 그리고 요즘은 오가는 교무실에서 간간이 아는 선배들을 보고 있다. 선배들의 표정에는 하나같이 어두움이 서려 있었다. 학년이 끝나가는 요즈음, 내가 그 사람들을 보며 느끼는 까닭 모를 우울함은 어디서 연유한 것일까?” “이젠 드디어 우리 차례라는 것 때문일까? 아니면, 참혹해서 차마 눈뜨고는 보기 힘든 학생부 교과 성적과 그에 따르는 부담 때문일까? 그도 아니라면, 매일매일 성적문제로 다투는 부모님과 올 한해 나에게 실망만 안겨 주었던 학교의 모습 때문일까?”
▲ 하늘성채(스카이캐슬) 드라마1
▲ 하늘성채(스카이캐슬) 드라마2
 
 
‘교육(가르침)’의 대안은 ‘가르침 없는 배움’
 
 가르침과 배움은 관점이 다르다. 줄 세우기가 목적인 ‘교육’의 현실을 위에서 살필 수 있었다. 가르침(교육)은 ‘교육과정’을 함께 읽자고 하거나 성취기준을 재구조화하여 수업을 하자는 제안이나 연수를 내세운다. 하지만 가르침(교육)을 학생 쪽에서 보면 어떨까? 그것은 가르침을 받는 것이 아니라 가려 배움이다. 교육과정과 수업의 전문성도 달리 본다. 왜 배우는가? 스스로 자라나려는 마음으로 ‘가려 배움’이 될 때 제대로 배움이 일어날 수 있는 실마리가 생긴다.학생들의 관심사를 살린 맞춤 배움 과정일 때 모든 학생의 성장이 일어나게 된다.
 
"혁신학교 교사로서 경험해 보니 학생이 주체가 되는 수업과 학교 활동이 교육 문제를 해결하는 데 의미 있는 대안이 될 수 있다-김정안(서울시교육청 학교혁신지원센터장)-” 라고 말한 것이 떠오른다. '학생이 주체가 되는 수업과 학교 활동'을 말한 것이 가슴에 와 닿았다. 학생이 배움의 주체가 되는 것은 '(교사가) 가르치지 않는 수업'으로도 학생에게 '깨배움(깨침, 깨달음)'이 일어나는 것을 말한다.
 
가르침(교육) 없는 배움이 행복의 열쇠!
 
  "교육개혁은 학생·학부모 공감 얻는데 성패 달려", "쉽고 단순한 대입제도 개선안 마련해야…과정에 승복할 수 있도록 공론화 필요" 등과 함께 줄곧 ‘소통’을 강조하고 ‘교육’의 패러다임 전환’을 역설한 ‘문재인 정부’는 이제 답해야 한다. 왜 21세기를 사는 학생들이 ‘배움의 시대’에 주입식 강의를 들어야 하고 정기 고사란 이름으로 두 달에 한 번씩 칸막이 교과 시험을 봐야 하는지란 물음에 답해야 한다.
 
 ‘원형 탁상(하크니스)’에서 교사 1명과 학생 12명이 수업하면서 개별, 모둠별 과제 발표와 토론을 통해 스스로 깨배움을 하도록 도우는 게 어떤가? 교사가 도와주고 학생들이 스스로 공부할 주제를 정하고 관련 자료를 조사해 토론거리를 찾아 발제하는 것이야말로 정작 우리가 바라는 ‘참배움’이 아닌가? 어떤 논제에 대해서 학생들끼리 서로 자유롭게 의견을 주고받는 일, 토론을 통해 스스로 탐구하고 협력하며 지식을 얻는 것이 진짜 공부-최유진-일테니까.
▲ 참배움연구소의 내세움
‘배움’은 끝없이 흘러가는 하나의 리좀(들뢰즈)으로 뿌리내리지 않고 흐르면서 새로운 스승을 만나 배우고 또 옮겨가고 달라진다. 배움의 때가 따로 있지 않아 3차원의 근대적 시간에 매이지 않고 봉건에서 근대 탈근대와 미래로 연결된 우주를 넘나들며 낯섦을 즐긴다. 그래서 가르침(교육) 없는 배움이야말로 저마다 행복의 문을 여는 만능열쇠다! 이제 함께 틀(패러다임)을 바꿔내자! 교육에서 배움으로! 배움이 바로 서야 나라가 바로 선다! (4352.7.24.)
 
편집 : 심창식 편집위원
김두루한 주주통신원  duruha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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