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리게 바라보아도 괜찮다.흐리게 들어도 괜찮다.탄도의 소리노을의 소리진흙, 풀, 새, 바람, 비행기, 차, 발로 땅을 딛는 소리. 편집 : 양성숙 편집위원
대학 시절 한 친구와 길을 걷다가 들었던 얘기가 기억에 오래 남는다.내가 멀리 보이는 간판에 쓰인 글귀에 대해 뭐라 뭐라 중요하지 않은 얘기를 건넸을 때, 그 친구는 눈이 안 좋아서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그렇다면 렌즈를 깜빡했느냐고 물었을 때, 그 친구는 흐린 채로 사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말했다.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그맘때의 나는 다른 사람의 눈을 바라보는 것이 어쩐지 불안했다. 그 친구는 또래에 비해 은은한 자신감을 뿜어내고 있었는데, 흐린 눈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나와 같은 불안감을 느끼지 않는 것이 그 이유라고 내 마음대로
안개 자욱한 날평소 같다면 여느 때와 같이 똑같고 아무생각이 들지 않았을 출근길 아침,이 날은 자욱하게 깔린 안개가 익숙한 출근길을 익숙하지 않게 만들었다. 자욱한 안개는 내 눈을 카메라처럼 만들어 주었다. 조금만 멀리 있어도 안개 속에 잠겨버리는 풍경 때문에 바로 눈앞에 있는 나뭇가지, 말라가는 이파리 하나하나가 너무나도 선명하게 보였다.늘 오던 장소 속에서 전혀 다른 분위기를 느낄 수 있음에 감사하며, 쉽게 사무실로 발을 옮기지 못했다. 거미줄에 맺힌 물방울 하나하나가 주는 아름다움, 안개 속을 날아다니는 참새, 축 늘어진 전깃
생기에 대하여시든 줄 알았던 라벤더가 다시 피어나는 일허밍버드가 꽃술을 묻혀가는 일그리고 그 라벤더가 다시 씨앗을 머금는 일 편집 : 양성숙 객원편집위원
차라리내가 이 세상으로부터 격리된 것이 아니라스스로를 이 세상으로부터 분리해냈다고 느끼며 검은 붓 속에 스며들어그 일부가 되는 경험을 할 수 있기를 이 시간을 고요의 공간으로 감상할 수 있기를바라며 편집 : 양성숙 객원편집위원
'TED'에서 강연했던 프리다이버 ‘기욤 네리’의 영상을 보았다. ‘프리다이빙’은 스쿠버다이빙과 달리 호흡을 도와주는 장비 없이 맨 몸으로 물속에 헤엄쳐 들어가 깊은 물속 한 지점에 도달한 후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오는 스포츠이다.이 이야기만 들으면 기록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거는 가학적 스포츠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기욤 네리는 프리다이빙을 의심의 여지없이 ‘예술’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자신의 기록인 123m 프리다이빙을 수면을 떠나기 전 마지막 호흡과 다시 돌아와 들이쉬는 새 호흡 사이의 여행이라고 이야기 한다. 헤엄
산타 만나러 가는 길요즘 사람을 그리는데 새로이 재미를 느끼고 있다. 설레는 마음으로 좋아하는 사람을 보러가는 길.. ‘그 사람이 산타라면 선물을 나누러 가는 길에 뭘 하고 있을까?’ 상상해본다. 아마도 운동이겠지?메리 크리스마스 편집 : 양성숙 편집위원
레이크 루이스하이킹 코스 정상에 올라섰다. 앞뒤를 둘러봐도 끝이 없는 대자연이 펼쳐져 있었다. 눈에 담은 풍경 속에 전봇대, 건물 하나 들어 있지 않았다. 오로지 거대한 바위산, 그 위를 덮고 있는 침엽수, 그리고 시릴 듯 푸른 호수만이 가득 찼다. 좀처럼 멈추지 않는 공장처럼 돌아가던 생각의 흐름이 잠시 멈추었다. 아이스 필드주위에 아무도 없었다. 약한 바람소리만 작게 들려오고 그 바람에 민들레 씨앗이 흩날리고 있었다. 아무런 소음 없이 오롯이 대자연 속에 들어오니 마치 자연이 내 안으로 스며드는 느낌을 받았다. 적막한 느낌마저
찝찝한 땀으로 옷이 젖는 것보다, 곧 녹을 것만 같은 케이크보다, 집에 서둘러 돌아가 쉬는 것보다 중요했던 아름다운 하늘.다음 주 월요일 미팅을 위한 리서치를 하느라 퇴근이 늦어졌다. 내일이 친구 생일이라 회사에서 직원대상 할인 케이크를 샀는데 핑크색 크림 위에 진주가 앉아 있는 유치한 케이크다. 친구에게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사무실에서 나와 차를 세워둔 곳을 향해 걸어가다 하늘을 마주하고 잠시 멍해졌다. 석양이 비구름을 비추고 있는 모습이 강렬하게 다가와 걷던 걸음을 멈추게 했다. 케이크를 사무실 냉장고에 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