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암, 따뜻한 숲

"암은 찬 것을 좋아한다."

항암치료 받을 때 찬물 마시면 고기 구울 때 쓰는 호일을 꾸겨서 억지로 삼킨 것 같은 고통을 느낀다. 독한 치료제로 약해진 피부조직이 감당을 못해서 그렇다. "찬 물이나 찬 음식을 피하고 운동으로 몸을 따뜻하게 유지하라"고 말한다.

운동으로 몸을 덥히면 암세포가 자라고 번지는 것을 누르고 막아준단다. 암세포를 몸에 지닌 사람들한테 들은 이야기다. 치료를 받으면서 의사들한테 들은 설명 보다 암환자들한테 들은 정보가 훨씬 많다. 의사들은 (치료과정에 오는 부작용이나 약에 대해서) 묻는 말만 답한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의사들처럼 "이것이 몸에 좋다.", "이런 음식을 드셔보세요.", "암세포는 이런 습관을 싫어합니다.", "당신 몸에 좋은 운동은 이것입니다."처럼 친절하거나 자세히 설명하지 않는다. 차트나 엑스레이 보고 "괜찮네요.", "다음 치료는 이렇게 해보죠."끝. 1분 길어야 5분이면 의사들과 면담 끝이다.

암 환자한테 "찬 것이 안 좋다"는데, 환자들한테 의사들 태도는 차갑기 얼음장 같다.

숲은 몸을 덥히고 마음을 포근하게 안정시키는 데 그만이다. 차갑고 추울 것 같지만, 숲에 들면 몸은 따뜻해지고 마음은 자유로워진다. 고깔바위이끼 업은 냉랭하고 무뚝뚝한 바위도 따스하게 솔씨 앉혔고. 세로로 울퉁불퉁 굵고 깊은 인상 그리는 굴참나무, 차가워 보여도 만지면 부드럽게 내 손 감싸며 안아 준다.

찬바람은 나무줄기 이파리 우듬지 윗가지 아래가지며, 땅 위 구르는 가랑잎, 햇살 내려앉은 오솔길, 잔돌, 소나무 둥치에 걸린 토끼털, 깡마른 산철쭉 가지에 걸친 솔잎, 참나무거위벌레가 동강 낸 굴참나무 가지이파리 따위 온갖 것 툭툭 건드리며 시비 걸지만, 숲은 곁눈질 주지 않고 제 갈 길 걸어가지. 바람이야 세차고 강파르지만, 이를 맞는 숲속 목숨붙이들은 부드럽고 의연해. 땅이 뒷배를 봐주고 있어서일까.

암세포는 찬바람 같은 존재야. 

이리저리 집적거리고 이쪽 후벼 파다 안 되면 저쪽으로 훌쩍 뛰어넘어 괴롭혀. 차갑게 내 살 깎아먹고 마음 도려내는 게 그네들 일이지. 내 몸도 숲처럼 나뭇가지 부러지고 이파리 찢겨나가지만, 죽은 듯 살아있는 생명 바탕 삼아 부드럽고 포근한 웃음 따뜻한 기운 잃지 말아야 해. 차가운 기운에 무릎 꿇고 웃음 빼앗겨 딱딱 굳어지면, 몸과 마음 부서지고 바스라져 흔적도 찾아볼 수 없게 될 테니까. 나는 숲 붙들고 끝까지 따뜻함 잃지 않을거야. 숲이 말하더라고

 

"세상 내치면 차갑고 안으면 따뜻하지. 선뜻 안아주기 힘들면, 혼자 웃기라도 해."

 

편집 : 박효삼 객원편집위원,  심창식 편집위원

김시열 시민통신원  abukung@hanmail.net

한겨레신문 주주 되기
한겨레:온 필진 되기
한겨레:온에 기사 올리는 요령

관련기사 전체보기
저작권자 © 한겨레:온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