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과의 천일동안 2

▲ 혼자 시간을 보낼 때 빠질 수 없는 커피

혼자가 되어보기로 했다.

사실 난 결혼 전부터 혼자 있는 시간을 좋아했다. 그리고 그 시간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그런 내가, 아이를 낳은 후엔 화장실에 앉아 있을 때도 아이의 얼굴을 보고 있어야 하는 삶을 살게 된 것이다. 쉼 없는 육아로 지쳐있는 내게 가장 필요한 건 바로 ‘혼자만의 시간’이었다. 아이와 분리된 오로지 나와 나의 시간. 지친 나를 위로해주고 내 자신을 돌아보며 팍팍해진 마음에 시원한 바람을 넣어줄 시간 말이다.

그래서 나는 하루에 한 번 점심 식사 후에 오는 아들의 낮잠 시간에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기로 마음먹었다. 길면 2시간 짧으면 30분. 아이가 거부하면 그것마저도 없는 행운의 시간이었다. 그 시간이 내게 오면 나는 일체 집안일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물을 끓이고 원두를 갈아 커피를 내렸다. 따뜻한 커피 한잔을 마시며 책을 읽거나 일기를 쓰며 나를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졌다. 그 때 나는 평온해졌다. 잔잔해졌다. 커피를 음미하듯 내 안의 것들을 음미하며 시간을 보냈다. ‘엄마‘라는 이름표는 살짝 내려놓고서. 그렇게 혼자 시간을 보내고 나면 잠에서 깬 아들을 다시 사랑스러운 미소로 안아줄 수 있었다.

그런 날들이 하루 하루 쌓여 어느새 1000일이 되었다. 아이가 세 돌이 되어가는 어느 날, 집 앞 놀이터에 나갔는데 그날따라 놀이터에 아들과 나만 있는 것이 썰렁하고 무료하게 느껴졌다. 아들도 그리 느낀 모양이었다. 장소를 옮기면 괜찮을까 해서 동네 마트로 발걸음을 옮기는 중에 어디선가 들리는 아이들의 재잘거리는 목소리가 아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집 앞 어린이집 놀이터에서 신나게 놀고 있는 아이들의 목소리였다. 그 소리가 아들의 마음을 흔들고 말았다. “엄마~! 나도 저기 가서 놀고 싶어~”하고 말하는 아들의 간절한 얼굴 앞에서 나는 “저긴 저 어린이집 다니는 친구들만 들어갈 수 있는 곳이야…”하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아들은 떼를 쓰기 시작했다. “나도 저기 가서 놀고 싶어~ 나도 어린이집 갈래~ 나도 어린이집 갈 거야~”

올 해 3월. 아들이 다섯 살이 되었을 때 그토록 원하던 어린이집에 입소하게 되었다. 처음으로 엄마 품을 떠나 ‘어린이집’이라는 새로운 세상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 제 둥지를 떠나 세상을 향해 날아가는 날개 짓이 시작되었다. 입소 후 첫 일주일은 적응 차 엄마와 함께 어린이집에 등원하게 되었는데, 예상했던 것처럼 아들과 같이 어린이집 생활이 처음인 아이는 없었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오래 어린이집 생활을 한 듯 능숙하고 자연스러웠다. 아들은 모든 게 낯설고 두려워보였지만 흥미로움이 가득한 세상을 향해 조심스럽게 한 발 한 발 내딛고 있었다. ‘엄마 없이 잘 적응할 수 있을까? 함께 한 시간이 많기에 엄마와 떨어지는 것을 더 힘들어 하지 않을까?’하는 걱정이 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엄마와의 애착이 견고히 형성되어 있기에 어린이집 생활도 잘 할 수 있으리라 믿으며 뒤에서 아들을 묵묵히 지켜보았다.

떨어지지 않으려 악쓰며 우는 아들을 힘겹게 어린이집에 맡기고 홀로 집에 돌아온 날, 나는 집에 있으나 마음은 여전히 아들 옆에 있는 채로 시간을 보내며 기다렸다. 날이 갈수록 기다리는 시간이 점점 길어지더니 5일째 되는 날이었을까 아들이 내 손을 놓고 씩씩하게 인사하며 자기 반으로 올라가는 것이었다. 울지 않고 뒤돌아 점점 멀어지는 아들을 보며 왠지 모르게 섭섭한 마음이 들었던 나는, 오히려 적응을 하지 못한 건 아들이 아니라 나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들은 그때부터 지금까지 늘 즐겁게 어린이집에 등원하고 있다. 천천히 친구들과의 관계도 형성하게 되었고, 얼마 전에 있었던 학부모 상담 때는 아들이 ‘흥 있는 모범생’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아들이 어린이집에 잘 적응하고 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둘째 아이를 출산했다. 둘째 아이를 낳고 몸조리를 하는 동안 오랜만에 안아보는 갓난아이가 너무 예쁘고 사랑스러웠는데, 그 행복한 와중에 아들 생각만 하면 그냥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아들과 함께 했던 지난날들을 추억하며 그리워했고, 지금은 그럴 수 없다는 사실이 왜 그렇게 나를 슬프게 했는지 모른다. 동생을 돌보느라 바쁜 엄마를 헤아리기라도 하는 듯 의젓하게 행동하는 아들을 보며 애써 마음을 다잡았다.

▲ 얼마 전 어린이집 할로윈 파티때 스파이더맨이 된 아들

 
지나고 보니…

내 품 안에 아들을 오롯이 안고 있었던 3년의 시간들이 얼마나 소중하고 아름다운 것이었는지를 체감한다. 그리고 너무 빨리 커버리는 아들이 아쉽기만 하다. 어떤 사람들은 말한다. ‘3세 신화’니 ‘애착 이론’이니 하며 만3살 전까지는 엄마가 아이를 직접 키우는 것이 아이에게 좋다고 말이다. 맞는 말일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백프로 정답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누구도 강요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아들을 3년 동안 데리고 있었던 이유는 ‘3세 신화’에 설득 당해서도 아니었고 어린이집 사건 사고 때문도 아니었으며 누군가의 강요로 인한 것도 아니었다. 그저 이 때 밖에 볼 수 없는 아들의 예쁜 모습을 좀 더 오래 보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다. 물론 어떨 때는 ‘내가 왜 애를 어린이집에 안보내고 이 고생을 할까.’ 후회하다가도 하루만 지나면 ‘그래. 이렇게 함께 있으니 좋네. 그리고 금방 클 텐데…’하며 결국엔 잘한 결정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아이와 함께 한 선물 같은 시간들이 차곡차곡 쌓일수록 나는 행복한 엄마로, 그리고 조금 더 성장한 엄마로 아이 앞에 서게 되었다.

이 글을 쓰며 나는 참 감사했다. 지금 내 옆에 있는 아이들을 더 소중하게 안아주고 바라보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상상해본다. 세월이 흘러 아이들이 엄마의 그늘을 벗어나 살게 되었을 때, 엄마와 함께한 시간을 어떤 모습으로 기억하게 될지를. 우연히 책장을 넘기다 발견하는 단풍잎처럼 문득 떠오른 유년시절의 기억이, 어떠한 색깔과 냄새로 떠오를까. 내가 그랬던 것처럼 아이들도 행복한 미소를 띠며 그 시절을 떠올릴 수 있을까. 세상을 살다가 가끔은 삶의 무게에 치여 외롭고 힘이 들 때, 그 기억들이 토닥토닥 등 두드려 주듯 위로가 되고 다시 걸어갈 힘이 되어 주길… 간절히 소망해 본다.

편집 : 김미경 객원편집위원, 심창식 편집위원

정은진 주주통신원  juj050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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