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도 바간(BAGAN)의 일출은 미얀마를 찾는 사람들의 필수 코스입니다. 어둠이 아직은 짙게 깔린 호텔을 나서 11층 전망대가 있는 곳으로 이동했습니다.

이곳도 이미 중국 관광객들이 밀려오고 있습니다. 좋은 곳에서 일출을 감상하기 위해 지나치게 일찍 도착하여 한참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 오랜 기다림 끝에 감상하는 일출.
▲ 사방 어디를 봐도 탑들이 즐비한 올드 바간.

만달레이 구는 미얀마의 중부지역에 자리합니다. 남쪽에는 최초의 왕조 바간이 있고, 중앙에는 미얀마의 행정수도 네피도가 있으며 북쪽에는 만달레이 구의 수도 만달레이가 있습니다.

만달레이는 미얀마의 마지막 왕조인 꼰바웅 왕조의 도읍지로 현재 미얀마의 제2 도시입니다. 북쪽의 중국과 인도로 통하는 중요 교역의 배후도시라서 중국인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지요.

바간에서 만달레이는 고속도로로 약 5시간 정도 거리라고 합니다. 중간에 식사가 불편하다고 빵 위주의 도시락을 챙겨서 장도에 올랐습니다. 말이 고속도로지 소떼가 길을 막기도 하고, 버스가 도로변에 정차하여 승객이 타고 내립니다. 오토바이도 스쳐 지나갔고요.

▲ 우리 버스를 멈추게 하고 고속도로를 횡단한 소떼. 왕복 2차선임.
▲ 고속도로라고 중간에 이런 요금소도 있다.

목적지인 ‘U BEIN BRIDGE’에 도착하였습니다. 이 다리는 1,086개의 티크 나무 기둥을 수중에 박아 1.2Km를 건설하였습니다. 아와 왕조인 약 1,850년 전후에 만들어졌으며,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긴 나무다리라고 합니다. 티크 목재가 물에서도 변형이 작고 뒤틀림도 없는 단단한 나무라고 합니다.

▲ 다리 밑에서 본 흰색에 봉우리가 있는 소. 타이어가 없는 달구지는 박물관에서만 볼 수 있는 줄 알았다.

강을 건너는 교통수단이지만 석양과 일출이 아름다워 연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데이트코스가 되었답니다.

▲ 평생 한번 찰나의 마주침일 수도 있으련만, 신발을 벗고 더 이상 낮출 수 없으리만큼 절을 올리는 여인의 자태가 눈부시다.

이번 여행을 인솔한 로버트는 미얀마에서 태어난 화교입니다. 모택동과 장개석이 격돌하던 국・공대전시 미얀마의 화교 사회도 양분이 되었고, 미얀마 군정에서는 경제력을 가진 화교들을 탄압했다고 합니다. 화폐개혁을 통해서 재산을 1/10로 줄이고, 신화폐로 바꿀 때는 부정축재라며 세금을 얼마나 때리는지 구화폐로 불붙여 국수 삶아 먹었다고 하니까요.

▲ 우쿨레레와 작은 바이올린을 치며 항상 밝고 흥겹게 일행을 인솔한 로버트. 매년 코스를 조금씩 바꿔가며 고향 미얀마를 찾고 있다.

고등학교 때 대만으로 이주를 했는데, 어머니가 며칠을 울었답니다. 당시의 버마는 대만보다 월등히 잘 살았는데 환경에 적응을 못 했답니다. 대만에서 대학을 다니다가 미국에 이민을 갔습니다.

로버트는 고향인 미얀마의 순수함과 자연을 좋아해서 자주 찾았습니다. 한 번은 어린 소녀의 “엄마가 죽었어”라는 이야기를 듣고, 이 소녀를 도와주고 싶었습니다.

소녀가 사는 곳을 찾아갔더니 역시나 가난한 어떤 가정에서 함께 살더랍니다. 그래서 그곳 가장에게 내가 어떻게 도와주면 먹고살 수 있겠느냐고 물었더니, 가게를 하나 마련하면 살 수 있다고 하더랍니다. 그래서 필요하다는 돈을 주고 떠났습니다. 전화도 없던 시절 어렵게 편지로 안부를 전하던 중, 친구로부터 소녀를 도와주던 그 집의 친 아이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아연실색합니다.

알고 보니 가게는 좌판이었고, 임대료를 주고 나면 벌이도 시원치 않았답니다. 왜 자기한테 도움을 청하지 않았냐고 물었더니 이미 받은 도움도 큰데 무슨 염치로 손을 벌리느냐고 하더랍니다. 약도 못 쓰고 자식을 보낸 생각에 로버트 스스로 자책을 많이 했답니다.

그래서 다시 물었답니다. 어떻게 하면 잘 살 수 있겠느냐고, 액수와 상관없이 이야기해보라고 했답니다. 그랬더니 오토바이 한 대 사주면 살 수 있다고 해서 한 대 사줬답니다.

오토바이가 자동차 한 대 역할을 한 것이지요. 월수입이 도시 회사원 월급의 두 배를 벌었답니다. 그래서 한 대를 더 사줬답니다. 한 대는 임대수입을 올린 것이지요. 그 소녀가 대학을 나와 말레이시아로 시집을 갔답니다.

로버트는 자기 혼자서 미얀마 사람들은 돕는 것은 한계가 있다고 생각하고 매년 친구들을 모아 미얀마를 찾습니다. 그냥 관광이 아니라 자기가 좋아하는 미얀마를 보여주고 싶어서. 그리고 그 소녀와 같은 불쌍한 고아들을 돕고 나면 얼마나 기쁜지 친구들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이번이 4번째 여행입니다.

로버트는 천주교 신자이지만 삭발하고 승려 체험도 했다고 사진을 보여줍니다. 아침 4시에 일어나 아침 공양, 11시에 사시 공양. 두 끼만 먹고 오후 불식의 절 생활을 했다고 합니다. 미얀마 사찰에서는 석가모니 당시의 하루 두 끼 식사습관이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편집 : 박효삼 편집위원

김동호 편집위원  donghokim78@gmail.com

한겨레신문 주주 되기
한겨레:온 필진 되기
한겨레:온에 기사 올리는 요령

저작권자 © 한겨레:온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