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트리올 이야기 32. 프로그래밍 배우다 만난 인생철학(1) 교육이란

이지산 주주통신원l승인2020.07.03l수정2020.08.16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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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로운 룰

실험실은 2주 전 열었다. 이제는 마스크를 쓰고 신분검사를 거쳐야만 연구실에 들어갈 수 있다. 새로운 룰도 생겼다. 실험실 안에는 2명까지만 있을 수 있고, 서로 2m 간격을 유지해야한다. 실험실은 보통 4-5명 인원이 같이 일하지만, 새로운 룰을 지키기 위해 다들 파트타임으로 실험실에 나온다. 실험을 시작하면 하루 종일이 요구되기도 하기에 파트타임으로 실험을 진행하긴 쉽지 않다. 

▲ 시끌벅적했던 복도이지만 지금은 사람을 찾기 어렵다.

기관은 오픈하였지만, 복도는 텅텅 비고, 사람은 찾기 힘들다. 또한 커피 타임, 미팅도 금지되어 항상 떠들썩했던 복도, 미팅 룸과 식당가는 좀처럼 활기를 찾아 볼 수 없다.

▲ 식당

실험을 많이 할 수 없는 이 상황을 이용하여 새로운 공부를 하고 있다. ‘컴퓨터 언어 및 프로그래밍’이다. 최근 뇌면역세포 유전자 정보를 협력연구원으로부터 받았다. 이 유전자 정보는 대용량 데이터여서 여러 단계 프로그래밍 분석을 거쳐야만 연구원들이 분석할 수 있다. 따라서 대용량 데이터를 분석하는 바이오인포마티션이라는 직책은 연구실에서 필수적 존재가 되었다. 우리 실험실은 바이오인포마티션 Oscar가 이 일을 맡아 하고 있다. 이전 글에서 썼지만 Oscar는 컴퓨터 프로그래밍과 물리학을 전공하고 현재 포닥과정(박사 후 과정)에 있는 나와 동갑내기 친구다.

Oscar와 함께 협력연구원으로부터 받은 데이터 분석을 시작했다. 분석 도중 내가 컴퓨터 프로그래밍에 관심을 보이고 질문을 하자 Oscar가 선뜻 프로그래밍을 가르쳐 주겠다고 제안했다. Oscar 시간을 너무 뺏을 거 같아 염려되어 재차 물어보았지만 Oscar는 이 또한 자기가 해야 될 일이라며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이렇게 Oscar와 2m 간격을 유지하며 공부가 시작되었다.

Oscar가 우리 실험실에 들어온 지 벌써 8개월이 되어간다. Oscar는 혼자 있는 시간을 더 편안해하고 좋아해서 커피타임이나 점심시간에도 우리와 함께 하지 않는다. 혼자 책상에 앉아 커피를 마시거나 스무디로 점심을 때운다. 간혹 우리와 대화를 하게 되면 사적인 이야기는 하지 않고, 어색하게 웃으며 듣기만 하면서 고개를 끄덕인다. 단 한 번도 누구에게 싫은 소리를 하거나 얼굴 붉히고 인상 찡그리는 것을 보지 못했다. Oscar는 한결같이 마음이 너그럽고 긍정적이다. 표정, 옷가짐, 행동 모두가 반듯했다. 업무에서도 신속하고 꼼꼼했다. 이 때문에 실험실원 모두가 Oscar와 가깝진 않았지만 Oscar를 존중했다.

나는 Oscar와 같이 일한 적이 있어 친근하다 느꼈지만, Oscar는 정작 나를 어색해하는 것 같아 대화를 자제했던 적도 몇 번 있었다. 프로그래밍 공부를 시작하면서 교류가 많아지자 Oscar는 서서히 마음의 문을 열었다. 우리는 프로그래밍 외에 다양한 대화를 하게 되었다. Oscar가 어떤 이유로 캐나다에 왔고, 캐나다에 오기 전 어떻게 지냈는지 조금은 알 수 있게 되었다.

Oscar는 멕시코에서 태어났고 멕시코에서 초·중·고를 나왔다. Oscar는 어렸을 때부터 방안에서 하루 종일 역사, 종교, 철학 책을 읽으면서 시간을 보냈다.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혼자 있는 시간이 더욱 많아졌고, 종종 책을 읽느라 3일 동안 방에서 나오지 않았던 적도 있다고 했다. 학교는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힘이 센 학생들이 싸움을 빈번하게 일으켰기 때문이다. 멕시코는 공부 잘하는 학생보다 싸움 잘 하는 학생이 학교에서 우대받는다고 한다. 그런 환경에서 자랐을 마음씨 곱고 여린 Oscar를 생각하니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Oscar는 멕시코 대학에서 물리학을 전공한 뒤 미국 텍사스주에 있는 대학에서 물리학 석·박사과정을 시작했다. 하지만 순수 물리학은 연구비 지원도 적고 적용할 수 있는 영역이 좁았다. 다른 교수의 제안으로 생화학적 시뮬레이션 프로그래밍을 이용해 기존 FDA 허용 약물을 스크리닝하는 연구를 했다. 박사과정을 끝낸 후 미국 유명 연구기관인 MD Anderson에서 포닥을 시작했고 대용량 데이터를 분석하는 일을 배우게 되었다.

어려서부터 심오한 철학, 역사, 물리학을 공부해 내공이 쌓인 걸까? Oscar는 매사에 신중하고 지혜로웠다. 내가 만난 그 어떤 사람들보다 침착하고 차분했다. 그런 편한 인품 덕에 모르는 것이 있으면 망설임 없이 Oscar에게 질문할 수 있었다.

나는 여태까지 다양한 사람들과 일을 해보기도 하고 배워보기도 했다. 하지만 한 번도 마음 편히 배우거나, 질문 해본 적이 없다. ‘이 질문이 바보 같은 질문이 아닐까.. 괜히 내가 상대방 시간을 뺏는 게 아닐까.. 내가 이렇게 계속 질문하면 나를 무시하지 않을까” 라고 끊임없이 자기검열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Oscar는 달랐다. 내가 질문 하면 반가워했다. 턱을 괴며 같이 질문에 대해 고민했다. 반복된 어떤 질문에도 답답해하거나 지루해하는 태도를 찾아 볼 수 없었다. 이런 모든 과정이 고마워 내가 종종 칭찬을 아끼지 않고 고마운 마음을 전하면, Oscar는 머쓱하게 웃으며 오히려 침착하게 설명을 듣고 대답을 기다려주는 나에게 고맙다고 했다.

Oscar는 캐나다에 오기 전에 미국 대학에서 대학생들을 가르쳤다. 대학생을 가르치는 것도 박사 과정 중 필수 커리큘럼이었다고 한다. 궁금해서 내가 물었다.

“Oscar, 대학생들을 가르치는 건 어땠어? 학생들이 말은 잘 들었고? 그리고 사람들이랑 대화하고 어울리는 건 힘들지 않았어?”

“아.. 사실 가르치는 건 굉장히 재밌었어. 학생들이 모르는 부분이 있으면 알려주고, 같이 문제도 풀고.. 어색하진 않았어. 사실 이론을 가르치거나 설명하는 건 어색하지 않아. 사적인 대화를 할 때만 어색하지. 하하(어색한 웃음). 가르치는 거 외에 학생들 보고서 채점도 하고 수업 준비도 하느라 바빴지만 좋은 경험이었어. 한번은 진짜 웃긴 일이 있었어. 내가 가르치는 수업 지도교수님이 얼굴이 심각해져서 나를 부르시는 거야. 내가 가르치는 반 학생들 성적이 왜 다 A냐며 다음부터는 학생들 점수를 깎으라고 하시더라고”

Oscar 일화에 더욱 흥미가 생겨 질문을 이어나갔다.

“그랬구나... ㅎㅎ 내가 네 반에 있었어야 했는데. 그래서 그 다음부턴 학생들 점수를 깎았어?”

Oscar가 머뭇거리며 대답을 했다.

“아니.. 사실은 그 학생들 점수를 깎을 수가 없었어.“

내가 놀라 다시 물었다.

“그래? 왜 안 깎았어? 보고서 대충 써온 학생도 있었을 거 아냐”

“응.. 네 말이 맞아. 보고서를 대충 써온 학생도 있었지만 나는 점수를 깎을 수 없었어. 사실 나는 ‘사람의 지식과 노력은 점수로 매길 수 없다’는 신념이 있거든. 어렸을 때부터 학교를 다니면서 ‘점수’로 학생들을 등급으로 나눴는데 그런 제도가 옳지 않다고 생각했어. 새로운 것을 알아가는 과정이 중요하지 얼마나 많이 알고 있느냐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거든. 교육에서 제일 중요한건 새로운 걸 재밌게 알아가고 이를 바탕으로 창의적인 생각을 할 수 있게 도와주는 거라 생각해. 그런 점을 고려하면 학생들에게 점수를 매기는 거 자체가 교육이란 목적에서 벗어나는 거고... 학생들이 실험을 진행한 건 새로운 것을 시도한 거잖아? 그래서 나는 모든 학생들이 A를 받을만하다 생각해서 그 점수를 주었어.”

이 얘기를 듣고 잠시 교육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우리는 8살부터 학교라는 시스템 안에서 교육을 받는다. 고등학교까지 총 12년에 걸친 기나긴 교육동안 나를 비롯한 다른 학생들은 새로운 정보가 주는 참된 의미를 재밌게 받아들이고 이해하기 보다는 외우기에 급급하다. 당장 다가오는 시험을 잘 보고 학교라는 시스템 안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일단 평가점수를 잘 받아야하기 때문이다. 이런 방법을 진정한 교육이라 할 수 있을까? 시험을 잘 보기 위해 열심히 외웠던 조선 왕조 계보가 창의적인 생각을 만들어내고 인생을 잘 살아가게 도와줄 통찰력을 줄 수 있을까?

어느 순간부터 교육의 진정한 의미가 퇴색되고 등급 매기기란 시스템으로 존재하게 되었을까?

Oscar의 '모두 A' 얘기를 듣고 잠시 반성했다. 내가 대학생들을 가르쳤다면 아마 냉정하게 점수를 매겼을 것이고 점수를 잘 받지 못한 학생들에게 ‘더 열심히 했어야지’라는 편협한 마음을 가졌을 것이다. 그런 모습을 생각하니 ‘아직은 내가 교육자가 되기엔 한참 멀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세상은 신비롭고 배울 것이 가득하다. 배움은 창의적 생각을 품을 수 있고, 인생에 통찰력을 가질 수 있게 도와준다. 진정한 교육은 이와 같은 목적에 중심을 두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선 어른인 우리부터 교육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한 번 되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프로그래밍을 배우다 우연히 들은 Oscar의 일화.. 아직은 나 자신을 생각하고 다스려야 할 부분이 너무나도 많다.

 

편집 : 박효삼 객원편집위원

이지산 주주통신원  elmo_party@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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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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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용태 2020-07-04 13:04:20

    참 교육이 어떤것인가를 보여주는 아주 값진 글입니다

    우리는 수십년 동안 제도권에서 청소년 시절에 공부를 하였고,대학에 들어가서는 역시 학점을 잘 받으려고 애를 썼으며, 사회에 나와서는 평생학습이라는 명목으로 또 공부를 하였으나,
    이토록 많은 공부를 하였음에도 참교육의 의미를 얼마나 되새겨보았는지 기억조차 나질 않습니다

    그만큼, 새로운 영역을 탐구하는 것보다는 스펙을 쌓고 좋은 대학, 좋은 직장을 구하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공부를 하였다는 말이지요

    그러니, 창의력을 발휘하고 아이디어를 공유하는 일은 별로 선호하지 않았던것 같습니다신고 | 삭제

    • 김동호 2020-07-04 11:07:09

      일상이 코로나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특히 해외에서의 제약은 더 심하지요. 어려운 상황에서 슬기롭게 살아가는 몬트리올 이지산 통신원의 글은 읽는 내내 따뜻하고 뭉클합니다.

      멀기만 했던 멕시코 출신 오스카를 통해 다시 생각해보는 교육과 인생.

      또한 이지산 통신원을 보며 지식이나 배경보다 상대와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깨닫습니다.신고 |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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