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엔 생각보다 정말 많은 제약회사가 있었다. 하루에 올라오는 연구직 채용공고만 해도 100여 개가 넘었다. 이렇게 선택지가 많을 경우엔 일단 살고 싶은 지역 위주로 지원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시다시피 미국은 ‘대륙’이고 51개 주가 있다. 그 중 내 맘에 쏙 드는 주가 하나 있는데 바로 ‘캘리포니아’다. 너무 뻔한가? ㅎㅎ

사실 오랫동안 캘리포니아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 수많은 가수들도 ‘California Dreaming’, ‘Californication’, ‘Hotel California’ 등 캘리포니아에 대한 낭만을 노래에 담았다. 캘리포니아를 사랑, 희망, 행복이 넘치는 곳으로 표현했다. 2015년도에 캘리포니아로 학회를 갔다. 2월임에도 불구하고 따듯한 날씨, 깨끗한 바다공기, 끝없이 펼쳐지는 해변 그리고 왠지 모를 여유까지… 나를 반하게 한 캘리포니아에서 꼭! 한번 살아보고 싶었다. 또 지난 4년 동안 그 추운 몬트리올에서 살았으니, 이번엔 따뜻한 곳에서 한 번 살아봐야지 않겠나?

캘리포니아에 제약회사는 정말 많았다. 연구직 채용도 많았다. 나한텐 좋은 기회의 장소라는 생각이 들었다. San Francisco에 대기업과 스타트업이 밀집되어 있었고, 그 다음은 San Diego 그 다음은 Los Angeles였다. 연구직 채용정보를 보다 보니 머리 아프게 '직'이 다양했다. 석사 졸업생은 Research associate을 거쳐서 Senior Research associate, 박사졸업생은 Scientist, 포스트닥터는 수련기간에 따라 Senior Scientist, 혹은 Principal Scientist로 지원할 수 있다. 박사졸업생인 나는 당연히 Scientist부터 시작할 수 있다. 바로 2단계 직급을 뛰어넘으니 박사를 한 보람이 있는 것 같다. ㅎㅎ.

지역을 정하고, 직위도 정했으니 그 다음 고려해야 할 사항은 어떤 분야의 연구를 하고 싶은가이다 큰 제약회사는 다양한 연구팀이 있다. 스타트업 혹은 중소기업은 주로 한 분야를 집중적으로 연구하는 팀이 있다. 연구팀들은 노화, 뇌, 면역학, 암, 자가면역질환 등 다양한 분야를 연구한다. 나는 뇌면역학과 자가면역질환을 전공하고 있다. 이 분야를 공부하다 보니 면역시스템의 섬세함, 정확함, 다양함에 매료되어 더 많은 관심이 생겼다. 코로나 바이러스 백신만 봐도 그렇다. 우리 면역시스템을 재정비시켜 바이러스 침투를 효과적으로 이겨내지 않는가? 정말 기막히고도 멋진 시스템이다. 이와 더불어 면역시스템의 재정비는 노화, 자가면역질환, 암도 효과적으로 방지할 수 있다는 논문이 봇물처럼 쏟아져 나오고 있다. 따라서 이 분야가 미래 전망도 있어 보이고 재미도 있을 것 같아 이쪽으로 연구팀을 찾기로 했다.

회사의 규모와 설립일, 목표, 파이프라인 등을 따져가며 조심스레 이력서를 한두 개 넣었다. 일주일 지났을까? 핸드폰과 메일함은 조용했다. 마음이 초조해졌다. 맥길대학 소속 취업준비생들은 하루에 기본 10-20개의 회사에 지원하고 있다며, 나도 숫자를 늘리라고 조언해주었다. ‘저렇게까지 절박하게 넣어야 하나?’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손에 잡히는 결과물이 없어 따라 해보기로 했다. 그렇게 매일 3~4시간을 이력서 넣는 데 시간을 투자했다. 사실 내 이력서는 객관적으로 보기에 경력, 실적 면에서 그렇게 나쁘지 않았다. 경쟁력도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녹녹치 않았다. 마음에 꼽아둔 회사 중에 연락 오는 회사가 거의 없었다. 연락이 온 경우는 주로 스타트업이 많았는데 인터뷰 단계에서 떨어지기도 했다. 캐나다 영주권이 없다고 하면 인터뷰 보기도 전에 탈락되기도 했다. 공허한 눈으로 클릭을 하면서 기계적 의무감으로 지원서를 넣었다. 지원하면서 ‘어차피 안 될 거 왜 하고 있지?’ 라는 패배적인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마치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느낌이었다.

이런 일상을 한 달 넘게 반복하자 점점 자신감도 사기도 떨어졌다. 방법을 아예 바꾸거나 진로 전환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나 성공률이 낮은 게임을 하고 있었다. 장기전으로 가도 실패할게 눈에 뻔히 보였다. 고민을 하며 산책하던 어느날 오후, 문득 보스턴 스타트업에 취직한 친구가 생각났다. 그 친구가 ‘Cheeky Scientist' 모임에 가입했는데, 이 모임에서 취업 관련 정보를 많이 얻었다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 구글에 Cheeky Scientist를 찾아보니 박사졸업생들이 취업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모임이라고 쓰여 있었다. 웹사이트에선 젊은 대머리 최고경영자(이하 대표님)께서 마치 미래가 밝은 듯 하얀 이를 드러내며 환하게 웃고 있었다. 다양한 잡지에 소개된 적도 있어 사기집단은 아닌듯했다. 대표님도 생물학에서 박사를 취득한 과학자였다.  

 Cheeky Scientist 대표
Cheeky Scientist 대표

상담 요청을 해보았다. 정말 빠르게도 그 다음날 상담은 이루어졌다. 양복을 말끔하게 차려 입었지만 조금은 어벙벙해 보이는 젊은 외국인 남자 직원이 나를 맞이했다. 남자직원은 내 얘기를 쭉 들어보더니 이력서부터 수정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갑자기 Cheeky Scientist 웹사이트에서 봤던 대표님이 번개같이 미팅에 등장했다. (물론 모든 미팅은 줌으로 이루어졌다)

대표님은 “지산 안녕~ 만나서 너무 반가워” 라고 마치 오래 알던 사람처럼 반갑게 인사했다. 젊은데 비해 번들번들한 대머리와 크고 깊은 파란 눈이 인상적이었다. 목소리는 당당하고 정확했다. 대표님은 궁금한 것 모두 질문 하라고 자신 있게 말했다. 나는 기죽은 목소리로 한 달 동안 취업을 시도해봤는데 연락이 몇 군데 밖에 안 왔다고 말했다. 앞으로 4개월 안에 꼭 취업을 해야 하고 캘리포니아에 취직을 하고 싶다고 절박한 심정으로 이야기했다. 대표님은 내 말을 쭉 듣고 이력서를 보시더니 엄청난 에너지와 자신감으로 또박또박 답해주셨다

“지산, 4개월 안에 미국에 연구직으로 취직하고 싶다고 했지? 네 이력서면 충분히 가능해! 캘리포니아에 취직하고 싶다고? 그것도 가능하지. 연봉은 어느 정도로 생각하고 있어? 아마 원하는 연봉도 가능할거야. 외국인이 미국에 취업하긴 힘들지만 내가 볼 때 넌 문제가 없어. 단지 방법을 모르는 거야. 내 강의를 듣고 믿고 따라와. 그럼 다 가능하게 해줄게” 라며 내가 듣고 싶은 말만 시원~하게 해주었다. 그리고선 지금 다른 미팅이 있으니까 강의시간에 만나자며 다시 번개처럼 사라졌다. 남자직원은 벙찐 내 모습을 보고 머쓱히 웃으면서 “그래서... 가격은” 하며 알려주었다. 3개월 코스 온라인 강의 가격은 원화로 300만원. 이력서 첨삭, 대표님과 언제나 가능한 1:1 면담, 모든 인터뷰 단계에서 코칭받기가 포함된 금액이었다.

여기까지 내용을 들으면 ‘무슨 사기꾼 아니야?’ 이런 생각이 들 수도 있다. 내가 원하고, 듣고 싶은 대답만 해주는 자신감을 보고 처음엔 멍하다… 기쁘다… 나중엔 의심이 들었다. 어떻게 내 취업을 보장할 수 있지? 어떻게 4개월 안에 원하는 직종 그것도 캘리포니아에 취직할 수 있을 거라 장담하지? 마치 믿을 수 없는 달콤한 사탕 발린 말들만 늘어놓은 것 같아 시간이 지날수록 더 신뢰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미래의 꿈을 잡기 위해선 확실히 지금 방법으론 부족했다. 전문가의 코칭과 정보력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300만원을 따질 시간이 아니었지만 300만원은 가난한 박사과정에게 정말 큰돈이다. 박사학위를 딴 후 새로운 곳에 정착하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다. 장학금을 받을 때마다 조금씩 떼어 차곡차곡 모아놓은 정착준비금을 헐어야했다.

사람이 다급하고 궁지에 몰리면 썩은 동아줄이라도 잡는다고 하던데… 지금 내가 그런 상황인가? 하는 불안한 마음과, 속는 셈 치고 한 번 저질러보자는 마음 사이에서 왔다 갔다 일주일 고민한 후 나는 눈 딱 감고 모험을 강행했다. 피 같은 돈 300만원을 내고 Cheeky Scientist 멤버가 되었다.

편집 : 김동호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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