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과정이 막바지에 이르렀다. 4월에 졸업논문심사가 있다. 이 심사를 통과하면 박사과정에 마침표를 찍을 수 있다. 여기까지 오기 쉽지 않았다. 1월엔 학과 전체 학생과 모든 교수님 앞에서 발표하고 통과해야 했다. 2월 초순엔 무려 160pg이나 되는 졸업논문을 제출해야 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때 코로나에 걸렸다. 하루하루가 소중했기에 제일 강한 타이레놀을 먹고 무거운 머리를 붙잡고 논문 한 장을 더 쓰기 위해 씨름했다.

그렇게 무사히 모든 과정을 통과하고 졸업논문심사만 남았다. 주위 사람들 말로는 논문심사는 형식에 가까운 절차라고 했다. 그전 과정을 다 통과했으면 심사는 문제없이 통과할 거라고. 하지만 교수님 7분 앞에서 2~3시간 동안 발표하고 질문에 대한 대답을 요령껏 해야 한다는 것은 큰 부담으로 다가왔다. 나는 박사과정에 큰 획을 긋는 마지막 자리를 대충 마무리 짓고 싶지 않았다. 발표도 잘하고 싶었고, 교수님들이 하시는 질문에 똑 부러지게 대답도 하고 싶었다. 마지막까지 전문가다운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렇게 졸업논문심사 당일까지 긴장을 늦추지 않고 마지막을 향해 차근차근 준비해나갔다.

드디어 발표 당일이 왔다. 코로나로 인해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미팅은 줌으로 대체되었다. 졸업논문 발표를 줌으로 대체해야 한다는 사실이 조금 아쉬웠지만 최대한 실감 나게 하기 위해 옷도 머리도 단정히 하고 컴퓨터 앞에 앉았다. 심호흡을 크게 하고 줌 미팅에 참석하니 교수님들도 하나둘 미팅에 등장하셨다. 아는 교수님과는 다정히 인사를 나누었고, 처음 뵈는 교수님들과는 어색하게 인사를 나누었다.

드디어 발표가 시작됐다. 프레젠테이션 슬라이드를 하나하나 넘기며 발표를 한 시간가량 이어 나갔다. 처음 발표를 시작할 땐 긴장과 떨림이 있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혼자 떠든다는 느낌을 받았다. 교수님들의 표정, 반응을 볼 수 없었던 점, 집에 앉아 컴퓨터를 보며 발표해야 한다는 점들이 집중력에 영향을 주었다. 그래도 재빨리 발표에 최대한 집중을 하려고 노력했고 차근차근 발표를 이어 나갔다.

마침내 발표를 마치고 교수님들 얼굴을 살펴보았다. 화면상에선 교수님들이 발표에 만족스러웠는지 아닌지 알 수 없었다. 졸업논문심사 진행을 담당하시는 교수님이 먼저 입을 떼셨고 교수님 중 한 분을 호명하며 질문을 시작하라고 하셨다. 첫 번째 교수님은 지난 3년간 나의 박사과정을 쭉 지켜봐 온 Ji Zhang 교수님이었다. Ji Zhang 교수님은 환하게 웃으시며 “지산, 지난 4년 동안 지산이 성장하는 모습을 볼 수 있어서 너무 좋았어요. 매해 지산이 발표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한 걸음씩 과학자로서 크고 있는 거 같아서 뿌듯합니다. 이번 발표 역시 나를 놀라게 하는군요. 좋은 결과를 보여줘서 정말 기쁩니다.”라며 눈물이 찔끔 나는 따듯한 피드백을 해주었다. 다른 교수님들도 졸업논문도 흥미롭게 쓰고 발표와 결과고 훌륭하다며 많은 것을 배웠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박사과정 통틀어서 이렇게 칭찬을 받은 적이 처음이라 얼떨떨했다. 정말 내가 잘했나? 라는 생각도 들고 어색하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해냈다는 자부심도 들었다.

따듯한 피드백 후 교수님들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바로 돌변하셨다. 그리고 한 분당 거의 10개 정도 질문을 하셨다. 특정 질문은 단답형으로 대답할 수 있었지만, 어떤 질문은 해당 분야에 대한 나의 전반적인 견해를 묻는 거라 고심 끝에 대답해야 했고 어떤 질문은 아예 답조차 몰랐다. 그렇게 한 시간 동안 질문이 이어졌다. 교수님들은 더 이상 질문이 없다고 하셨다. 진행을 담당하시는 교수님은 이제 결정을 내릴 시간이라고 공지하셨다. 나는 다른 지정된 방으로 옮겼다. 매서운 질문 공격에 탈탈 털리고 나서 지친 채 혼자 덩그러니 앉아있으니 10분이 마치 1시간처럼 느껴졌다. 컴퓨터 화면에서 좀처럼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결정이 내려졌는지 10분 뒤 나를 새로운 방에 초대했다. 중개자는 심각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 “그럼 졸업 발표 결과를 공지하겠습니다. 지산, 이제 당신은 오늘부터 박사입니다. 축하합니다.”라고 말씀하시며 씩~ 웃었다. 순간 나도 모르게 코가 찡긋하고 눈물이 핑 돌았다. 교수님들한테 달려가 한 명씩 안고 고맙다고 인사하고 싶었지만, 안타깝게도 현실은 화면 속에 갇혀있었다. 교수님들 모두 축하한다며 환한 미소를 보여주셨고, 나도 이 긴 미팅에 참석해주셔서 감사하다고, 지금 너무나 기쁘다고 얘기했다.

졸업논문심사를 마치고 연구실에서 한 잔... 
졸업논문심사를 마치고 연구실에서 한 잔... 

성공적으로 발표를 마무리하고 계획한 축하 파티에 참석하기 위해 분주히 준비했다. 미리 사둔 원피스로 갈아입고, 와인을 들고 마치 구름 위를 걷는 듯한 기분으로 연구실로 향했다. 연구실 회의 방에서 주임교수인 스테판과 실험실 친구들이 모이기로 계획되어있었다. 도착하니 이미 몇몇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졸업논문심사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것을 축하한다며 와인을 건네주었다. 다른 실험실에서 공동연구를 진행하던 친구들도 같은 실험실 구성원들도 모두 진심을 담아 축하해주었다. 졸업논문심사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것도 기뻤지만, 이 기쁨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이 있어 더 행복하고 마음이 따듯해졌다. 술을 못 마시는 나지만, 그날만큼은 술이 정말 달고 맛있었다. 저녁은 아기자기한 프랑스 레스토랑에서 근사하게 먹었고, 근처 맥줏집에 가서 마무리했다. 기분 탓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이날 특히 다들 기분이 좋아 보였다. 나처럼 신이 나 있었다.

졸업논문심사를 마치고 레스토랑에서 우리 실험실 친구들과 함께 
졸업논문심사를 마치고 레스토랑에서 우리 실험실 친구들과 함께 

졸업 발표를 마무리하자 캐나다에 남아있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마음이 착잡했다. 앞으로 2~3주 뒤면 모든 짐을 정리하고 한국행 비행기를 타야 한다. 박사과정을 무사히 마무리하고 한국에 돌아가는 것이 기쁘기도 하지만, 4년 동안 일궈온 인맥, 환경, 살던 집을 뒤로하고 간다는 것이 섭섭하기도 했다. 또한 캐나다 친구들과 잘하면 평생 아니면 오랫동안 못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하니 하루하루가 아쉬웠다.

박사과정을 잘 마무리할 수 있었던 것도 옆에서 고충을 들어주고, 지지해주는 동료들이 있어서 가능했다. 무엇보다 이민 가방 하나 들고 혈혈단신으로 몬트리올에 왔을 때 외로움을 달래주던 소중한 친구들이기 때문이다.

실험실 친구들 초대. 의외로 된장찌게도 잘 먹는다. 
실험실 친구들 초대. 의외로 된장찌게도 잘 먹는다. 

친구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고 싶어 우리 집에서 조촐한 모임을 가졌다. 처음엔 실험실 친구들 4명을 초대했다. 한국 음식도 준비했다. 내가 쓰던 물건과 옷 등을 원하면 가지고 갈 수 있도록 깔끔하게 정리해두었다. 친구들은 한국 음식을 너무나 좋아했다. 놀랍게도 대부분 매운 것을 잘 먹었다. 매워서 걱정했던 떡볶이도 다 먹었다. 

심지어 한 친구는 떡볶이 재료에 필요한 고춧가루와 고추장을 달라고 했다. 새로 잡은 직장이 캘리포니아에 있기 때문에 몬트리올에서 필요했던 무거운 겨울옷들도 서로 갖고 가겠다고 했다. 어떤 옷은 두 명이 동시에 맘에 들어서 가위바위보 해서 이긴 사람이 가지고 갔다. 친구들 모두 양손에 한 보따리씩 짐을 가지고 돌아갔다. 덕분에 짐 정리도 수월하게 할 수 있었다.

내 옷을 입고 즐거워하는 친구들 
내 옷을 입고 즐거워하는 친구들 

그리고 다시 한번 옆 실험실 친구들을 초대했다. 옆 실험실 친구들과는 공동연구를 하고 있어 가깝게 지내던 터였다. 모두 박사과정을 하는 친구들이라 서로 고충을 많이 이야기하곤 했다. 워낙 한국 음식을 좋아해서 이번에도 역시 떡볶이, 돼지불고기, 삼계탕을 해줬다. 음식을 너무 많이 해서 다 못 먹을까 걱정했던 예상과 반대로  맛있게 다 먹어주었다.

한 친구는 아쉬웠는지 밥솥을 박박 긁으며 마지막 한 톨까지도 퍼 먹었다. 친구들 모두 한국 음식을 무척이나 좋아했고, 허름한 작은 집에서 열었던 파티도 즐거워했다. 한 친구는 괜히 심술을 부리며 “지산, 지산, 네가 가버리면 난 너희 실험실에 발도 안 담글 거야. 갈 이유가 없거든.” 이라며 입을 씰룩거렸다. 

옆 실험실 친구들 초대 
옆 실험실 친구들 초대 

지난 사 년 동안 몬트리올 생활은 정말 다사다난했다. 몬트리올에서 산 지 3개월 만에 도둑이 들어 집이 털리기도 했다. 코로나로 인해 몇 달 동안 집에서 혼자 생활하기도 했다. 친구들이 떠나기도 했고 새로운 친구가 생기기도 했다. 맡은 프로젝트가 길을 못 찾고 구불구불 헤매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돌아보니 모든 사건 하나하나가 기억에 남는 추억이 되었다. 무엇보다도 몬트리올에서 만난 친구들은 나의 가장 소중한 추억이자 자산이 되었다.

처음 몬트리올에 왔을 때 타국 같았던 곳은 어느덧 나에겐 제2의 고향이 되었다. 몬트리올에서 나는 행복, 기쁨, 소중함, 외로움, 막막함 등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많은 감정을 느꼈다. 그 덕에 지식뿐 아니라 감정의 다양함도 배웠다. 이제는 이런 추억을 뒤로하고 몬트리올을 떠나야 할 시간이다. 아쉬움은 남겨둔 채 희망찬 그리고 새로운 미래에 가슴 설레며 몬트리올 공항에서 비행기에 올라탔다. 그리고 하늘에서 몬트리올을 내려다보았다.

Bonjour Montreal, 미래에 다시 만나길...

* 몬트리올 이야기를 실을 수 있게 인터넷 공간을 마련해준 <한겨레:온>에 감사드립니다. 또한 제 글을 정성껏 편집해주신 박효삼 편집위원님과 김동호 편집위원님께도 감사드립니다.

편집 : 김동호 편집위원, 김미경 편집장 

이지산 주주  elmo_party@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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