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단히 마음을 먹고, 희망을 다시 품고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 강의를 들었다. 강의가 진행될수록 나는 여태껏 대부분 잘못하고 있었다는 걸 알았다. 심지어 난 맥길대학에서 지원하는 취업용 이력서 첨삭 강의도 듣고 1:1 코칭을 받았는데도 말이다. 대표님은 취업시장을 손안에 놓고 다 파악하고 있었다. 당장 실천할 수 있는 방법들을 명쾌하게 제시했다. 그 방법은 피가 되고 살이 되어 나를 비롯해 여러 명의 취업을 도와주었다. 그만큼 중요하다는 생각에 조금 긴 설명을 하도록 하겠다.

제일 큰 문제는 이력서였다. 대표님 말에 의하면 “네 이력서는 집중이 안 돼. 졸음이 막 몰려와 딱 하품하기 좋게 생긴 읽기 싫은 이력서야. 지원자 대부분이 작성하는 내용만 길고 실적은 제대로 살리지 못하는 이력서야. 영향력이 없지“ 그리고 질문을 던졌다. “만약 네가 고용 담당자야. 이력서 총 100건을 봐야 해. 길고 구구절절한 이력서 읽고 싶겠어? 아마 읽다가 재미없어 옆에 치워놓고 결국 커피를 흘리고 말겠지. 너의 마음을 이해해. 지난 몇 년 동안 열심히 쌓은 실적을 자세히 써서 늘어놓고 싶겠지. 하지만 대기업 고용담당자들은 너를 위해 꼼꼼히 읽어줄 시간이 없어. 빌 게이츠는 투자자를 만날 때 2분 시간을 준대. 고용담당자는 2분도 안 줘. 이력서 첫 페이지 세 문단을 읽는 그 30초안에 너의 이력서를 끝까지 읽지 말지 결정할 거야. 만약 30초 이상 읽었다면 게임 끝이야. 너의 이력서는 채택될 거야”

대표님 강의는 힘이 넘쳤고 굉장히 현실적이었다. 나는 마치 광신교 교주를 믿는 신자처럼 대표님이 하는 말을 ‘모두’ 실천했다. 이력서를 2페이지로 줄였고, 비전문가도 한 번에 알 수 있도록 전문 과학 용어를 최소화했다. 몇 주간 고심 끝에 이력서 첫 세 문단을 나란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한눈에 보이게 수정했다. 일부 대기업은 AI가 이력서를 1차 심사한다고 한다. AI는 원하는 특정 단어가 이력서에 없으면 사람도 거치지 않고 쓰레기통으로 넣어버린다. 정말 잔인한 시스템이다. 이런 피도 눈물도 없는 AI한테 걸러지지 않기 위해 이력서에 특정 공채가 원하는 단어를 넣는 방법도 파악했다.

그 다음 깨달은 현실은 미국 취업 현실에 내가 정말 순진했다는 거다. 어느 한 강의 중 대표님은 이런 질문을 던졌다. “미국은 과연 몇 %의 인력을 공개채용으로 뽑을까? 놀랍게도 30%밖에 되지 않아. 70%는 아는 지인이나 인맥을 통해서 뽑아. 설사 공지가 올라왔다 하더라도 그건 형식상이야. 실제로 뽑을 사람을 이미 정해놓는 경우가 허다해. 그럼 너도 인맥을 늘려야겠지? 그 회사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찾아야겠지? 알아. 대부분 과학자는 새로운 사람을 사귀는 걸 무척 귀찮아하고 싫어한다는 걸. 하지만 계속 한 우물 인맥으로 있고, 노력도 안 하면 그냥 커피숍에서 커피나 파는 게 너한텐 편한 인생일거야. 인맥이 없다고? 걱정 마. 내가 인맥 늘리는 방법을 알려줄게”

상상초월이었다. 공채로 30%밖에 뽑지 않다니… 커피나 흘릴 이력서에 이미 정해놓은 적임자가 있다면 외국인인 나한테 연락이 오지 않는 건 너무나 당연했다. 그럼 나같이 인맥도 없는 외국인이 어떻게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까?

답은 SNS에 있었다. 다들 많이 하는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트위터가 아닌 Linkedln(이후 링크드인)라는 전문직업인 인맥사이트다. 이 사이트에 계정을 만들면 다른 기업의 대표, 임원, 직원들과 무료로 소통할 수 있고 정보를 공유할 수 있다. 사이트에서 열심히 활동하면 점수(SSI score)가 올라가 인사담당자들이 더 많이 연락을 취한다고 한다.

링크드인 계정을 완벽히 만들었으면 이젠 인맥을 늘려 나가면 된다. 이 과정이 솔직히 제일 어렵고, 부끄럽고, 자존심 상하기도 했다. 하지만 해야만 했다. 커피숍에서 커피를 팔려고 박사과정을 하진 않았으니까. 심호흡을 몇 번하고 얼굴에 철판을 깔고 용기를 내어 대표님이 시키는 대로 했다.

먼저, 내가 일하고 싶은 기업을 링크드인에서 찾고 회사 직원들 중 나와 동문인 사람을 찾는다. 두 번째, 동문인 사람 중 내가 원하는 연구직에 있는 사람을 찾는다. 세 번째,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보내고 친구추가를 한다. 메시지는 간략하게 “당신이 일하는 분야에서 언젠가 같은 팀원으로서 일하고 싶어요. 저도 사실 어느 대학 출신이에요. 당신처럼”이라고 한다. 그렇게 취업하고 싶은 기업에 들어가 똑같은 과정을 반복한다. 하지만 10명 중 2명이 메시지에 대답할까 말까이고, 3명이 친구 수락을 해준다. 이런 결과에 상처 받지 말고 불도저처럼 계속 밀고 가야 한다.

그렇게 3주가 흘러갔다. 링크드인을 재정비하고 활동도 열심히 했다. 인맥을 넓히기 위해 수많은 메시지를 보냈다. 이력서를 다시 작성하고, 이번엔 자신 있게 대기업부터 이력서를 넣기 시작했다. 학회에서 만났던 사람들에게 연락해 주위에 공채하는 기업이나 사람을 아냐고 문의했다.

그로부터 2주 뒤, 내 일정은 인터뷰로 빼곡히 채워졌다. 봇물 터지듯 인터뷰가 밀려왔다. 대기업 2곳에서 인터뷰 요청이 왔다. 링크드인에 인사담당자가 일주일에 세 번씩 메시지를 보냈다. 학회에서 만났던 지인들에게 소개받아 인터뷰를 3개나 잡았다. 링크드인을 이용해 연결된 인맥으로 인터뷰를 2개 잡았다. 이제 슬슬 인터뷰를 해볼 타이밍이다. 그럼 미국 취업과정은 어떻게 진행될까?

미국은 기본적으로 총 5가지 단계를 거쳐야 합격이 된다. 첫 번째는 이력서 검토, 두 번째는 인사담당자와 전화 인터뷰, 세 번째는 고용하는 사람과 전화 혹은 줌 인터뷰, 그리고 네 번째는 8시간 동안 긴 줌 인터뷰가 있다. 네 번째 단계에선 본인의 연구를 한 시간 동안 발표하고 질문에 대한 답을 해야 한다. 그리고 30분씩 팀원들과 개별적인 인터뷰가 진행된다. 다섯 번째는 3명의 추천서다. 이 과정을 통과하면 연봉과 근무조건 협상에 들어가고, 조건이 상호간에 잘 맞으면 계약을 하고 취업에 성공하는 것이다.

내 스케줄은 인터뷰로 꽉 차 하루에 2-3회 인터뷰 하는 날도 있었다. 인터뷰는 하면 할수록 맘이 편해졌고 자신감이 생겼다. 내가 할 연구나 연봉이 맘에 들지 않아 마지막 인터뷰에 내가 거절하는 회사도 생겼다. 그렇게나 가고 싶어 한 대기업 2곳에서 1,2,3차 단계가 끝나고 4차 인터뷰를 진행하자고 연락이 왔다. 불과 한 달 전 만에도 손가락 사이로 주르륵 빠져나갔던 꿈들이 다시 손안에 잡히는 듯 했다. 조금만 그리고 조금만 더 앞으로 가면 그 꿈을 쟁취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루하루 가슴이 설렜으며 희망이 가득 찼다. 마치 구름 위를 걷는 듯 마음이 가벼웠다.

대망의 4차 인터뷰에선 내가 그 동안 연구했던 프로젝트를 발표한 후 질의 응답시간을 가졌다. 발표가 끝나고 남은 7시간 동안 1:1 미팅을 팀원, 임원들과 했다. 사실 정확히 어떤 질문을 했고 답을 했는지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목이 타 들어갔고, 땀을 뻘뻘 흘렸고, 너무 웃어 광대뼈가 아팠던 거 밖에. 그래도 후회는 없었다. 매 순간 최선을 다했고 솔직하게 대답했기 때문이다. 그 다음날, 팀장이 이메일을 보냈다. 인터뷰 통과를 축하한다며 3명의 추천인 연락처를 달라고 했다. 방방곡곡에 4차 인터뷰를 통과했다고 소문내고 싶었다. 너무나 간절히 원했던 결과이기에...

3일 뒤 팀장님에게 연락이 왔다. 마지막 인터뷰를 하자고. 마지막 인터뷰? 또 뭐지? 왜 또 하자고 하지? 무슨 문제가 있나? 그 전날부터 잠이 오질 않았다. 내가 그렇게나 많이 봤던 ‘유감스럽게도’로 시작하는 거절을 하려고 그러나? 불안했다. 마지막 인터뷰 날, 팀장님은 웃으며 나에게 인사했고, 갑작스레 파워포인트 슬라이드를 보여주며 입을 열었다. “우리가 제시하는 연봉은 이만큼이야. 그리고 보너스와 주식까지 포함하면 이거지. 어때 마음에 드니?” 사실 이건 예상치 못했던 레퍼토리였다.

모든 게 마음에 들었다. 회사부터, 직종부터, 지역부터, 연봉까지 모든 것이. 그리고 첫 인터뷰에서 연구코드가 맞아 30분 넘게 대화를 나눴던 팀장님까지. 더 이상 무얼 바라랴. 내가 대답을 하지 못하자 팀장님은 당황하셨는지 “무슨 문제가 있니?” 라고 물으셨다. 나는 그제야 정신이 들어 내가 너무나 가고 싶었던 회사라고 얘기했다. 이렇게 좋은 조건에 받아준 거 감사하고, 물론 연봉도 너무 마음에 든다며 환하게 웃었다 그제야 팀장님도 마음을 놓는 것 같았다.  이제 앞으로 계약서를 작성하고 미국에 일할 수 있도록 비자 프로세싱을 할 것이라며 빠르게 잘 협조해 달라고 부탁했다.

내가 살게 될  Thousand Oaks(출처 : https://en.wikipedia.org/wiki/Thousand_Oaks,_California)
내가 살게 될  Thousand Oaks(출처 : https://en.wikipedia.org/wiki/Thousand_Oaks,_California)

취업 방법을 바꾸고 두 달 후 2월 말 나는 A회사와 계약했다. A회사는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에서 한 시간 거리에 있는 작은 도시 Thousand Oaks에 있다. 40년 전에 설립한 생명공학에 기반을 둔 제약회사다. 나는 여기에 RNA 치료제 개발팀에 합류하게 된다. 그렇게나 좋아하는 면역학을 이용한 치료제 개발을 연구한다. 너무나 신나 상상이 되질 않는다.

지난 4개월 동안 취업이라는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수많은 실패와 좌절이 있었다. 내 능력과 경력을 의심하기도 했고, 연락 없는 기업이 원망스럽기도 했다. 잠이 안 오는 날도, 한숨 쉬는 날도, 괜스레 나만 불행한 것 같은 날도 있었다. 그럴 때면 타국에 있는 게 슬펐다. 기댈 곳이 없어서 외로웠다. 하지만 주위 사람들 덕분에 Cheeky Scientist를 알게 되었다. 뻥쟁이 사기꾼 같았던 대표님은 내 꿈을 이루게 도와주었다. 이젠 한숨 쉬는 날보다 웃는 날이 더 많다. 불행하다고 생각하지 않고 행운아라고 생각한다. 여태까지 달려온 모든 길들이 허망한 길이 아니었다. 모든 길이 하나하나 연결고리가 되어 취업까지 도달하게 도와주었다.

사실 그 많은 인터뷰를 하고 이력서를 넣으면서 느낀 외국인이 겪는 상대적 박탈감은 각오를 해야 한다. 미국시민권이 없어 취업비자가 필요하다고 하면 이력서를 보지도 않는 회사들이 많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미국은 취업비자를 쉽게 주지 않는다. 특히 트럼프가 바꾼 정책으로 더 어려워졌다. 취업을 원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H1B 비자를 신청한다.

H1B는 4년제 대학 졸업자가 신청할 수 있는 전문직(의사, 변호사, 회계사, 컴퓨터 프로그래머 등) 취업 비자다. 일 년에 한번 3월에 신청을 받는다. 신청자는 많지만 비자 발급 인원은 정해져 있어 신청자 중 무작위로 30%를 추첨하여 H1B 비자 서류를 제출할 자격을 준다. 서류를 제출하면 심사를 통해 H1B 비자를 발급해준다. H1B 비자를 받으면 총 3년간 미국에서 일할 수 있다. 물론 연장도 가능하다. 하지만 H1B 비자는 행운이 필요한 비자라 H1B 비자만을 믿고 기다리다간 낭패를 보기 쉽다. 나도 3월에 신청했는데 30% 내에 들어가지 못해, H1B 비자의 정식 서류를 내보지도 못했다. 

H1B 비자 신청에서 떨어지고 나서 과학자, 운동인, 예술인, 방송인들을 위한 특수취업비자인 O1A비자를 넣었다. 이 비자를 신청하기 위해선 먼저 변호사를 선임해야 한다. 나는 회사에서 변호사를 선임해주었다. 변호사는 내 이력으로 O1A 비자를 받을 가능성이 있는지 판단한다. 가능성이 있다면 변호사와 함께 서너 달에 걸쳐 서류를 준비하고 미국 이민국에 제출한다. 다행히 나는 7월 말 미국 이민국으로부터 O1A 비자 승인을 받았다. 얼마 전 미국 대사관 인터뷰도 무사히 마치고 여권에 꽝 박힌 비자도 받았다. 미국 취업은 쉽지 않지만, 불가능하지도 않다.

생각보다 글이 길어졌다. 미국 취업을 희망하고 있는 모든 친구들을 위해 조금 상세히 적었다. 이 글이 취업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편집 : 김동호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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