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은퇴자가 다 세상을 잘 살아왔다고 자부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온갖 풍상을 겪으며 살아온 게 대견하게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인생을 산다는 것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으며, 삶은 그 자체로 모든 가치에 우선한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진실일까 거짓일까.

청년기에 그 말을 들었다면 거짓이라고 판정하겠지만 은퇴 후에 듣는다면 단연코 맞는 말이라고 여길 것이다. 그 차이는 왜 어디에서 발생하는 걸까. 모질고 거친 인생을 살아온 삶의 체험에 기인한다고밖에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UC 샌디에이고에서 정신 의학을 연구하는 Awais Aftab연구팀은, 21세부터 100세까지의 피험자들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실시했다. 이 설문 조사 결과, '사람은 60세 전후에서 삶의 의미를 알고 실감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20대와 30대 는 다양한 심리적 발달 단계를 거쳐 인간 관계와 경력을 쌓으며 삶의 의미를 추구하고 있지만, 이는 정신 건강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한다. 인생의 의미는 연령과 함께 변화하기 때문에, 어느 연령대에서 삶의 의미를 깨달았다하더라도 그것이 다른 연령대에 통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이것은 가족관계나 사회적 관계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자신의 인생이 성공적이었는지 아니었는지는 겉모습으로만 평가할 일은 아니다. 높은 지위나 명예를 얻고 재산을 많이 축적해 놓은 삶이 잘 살아온 삶일까. 한 때 누구나 그렇게 생각한 시절이 있기는 할 것이다. 은퇴 후의 삶은 그런 관점에서 벗어나는 과정이기도 하다. 돈과 안정과 성공을 추구하며 살았지만 그게 최선일까 하는 의문은 살아가는 과정에서 끊임없이 제기되는 의문이기도 하다.

▲ 삶의 의미와 역동성

은퇴이후에 돌이켜보면 자신을 둘러싼 환경과 시대적인 요구에 부응하여 살아온 삶은 사실 자신을 괴롭히고 고문하며 스스로를 들볶은 삶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그 과정에는 자칫 인생의 패배자가 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깔려 있었고, 경쟁에서 뒤쳐지고 싶지 않은 자존심이 작용하기도 했을 것이다. 그래봐야 결국 지금의 모습인 것을, 그래봐야 별 것 아닌 것들이었고, 사회적 지위나 평판은 은퇴하면 아무 것도 아닌 것들일 뿐이며 중요한 것은 그런 것들이 아니었음을. 

현 세대의 은퇴자들은 산업화와 민주화의 과정을 온 몸으로 겪어온 세대들이다. 유교적 이념과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 그리고 자본주의적 가치관이 뒤범벅이 되어 그들의 정신세계를 지배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삶의 여정에서 어떤 가치관과 삶의 방식을 선택했느냐에 따라 보수와 진보로 엇갈리기도 한다.

어디 그 뿐인가. 세상에 적응하며 살다보니 자신도 모르게 형성된 습관이나 사고방식에 지배당하기도 한다. 특히 아내와의 가치관과 생각의 차이가 시회에서의 갈등만큼이나 심각하게 작용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까지는 또 얼마나 많은 세월이 흘러야 했는가. 좀 더 삶을 내려놓으면 될 일들인데 당시에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직장 다니던 시절 주말이면 가족과 함께 보내다가도 틈을 내서 책을 좀 볼라치면 아내가 흘깃 바라보며 빈정대곤 했다.

"혼자서 고상 떨고 있네~!"

당시에 이 말은 무척이나 마음에 상처를 주었다. 평소에는 바쁘고 스트레스도 많아서 주말에 모처럼 마음을 정화시킬 책을 읽고 있는 남편에게, 고상을 떨고 있다니? 그로 인해 갈등과 다툼이 있었음은 말할 나위도 없다. 책을 통해 마음의 평화를 얻으려던 것이 오히려 불화의 빌미가 되었으니 이를 인과응보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자충수라고 해야 할까.

▲ 자신의 정신세계에 갇힌 커플 (사진출처 Pixabay.com)

은퇴하고 보니 그 소리는 달리 해석될 소지가 많았다. 아내는 남편이 틈날 때 자신을 위로하며 자신과 같이 보낼 궁리를 하기를 바랬을 텐데, 정작 남편이란 작자는 자기의 마음과 정신세계를 더 중시했으니 모르긴 몰라도 이기적인 인간이라고 생각했음직도 하다. 남편이 추구하는 정신세계가 얼마나 고상한지 몰라도 아내와 더불어 즐거운 시간을 보내려는 노력만큼 가치 있지는 않다는 것을 현직에 있을 때는 결코, 결단코 생각하지 못했다. 이것은 고백이라기보다는 자백(?)에 가깝다.

그러니 은퇴라는 것은 얼마나 좋은가. 이런 깨달음을 얻을 수 있고 자신의 삶도 돌이켜볼 수 있으니 말이다. 이제야 비로소 인생의 멋과 맛을 조금은 알게 된 것 같기도 하고 진정한 의미에서 철이 드는 느낌이 들기도 하는 것이다.

그런 아내도 이제 보니 '우아를 떨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아내 역시 은퇴자가 의식하지 못하는 분야에서 자신의 세계를 추구해 오고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 우아는 다름이 아니다. 자신이 '엽렵한 아내'라는 자부심이 바로 그것이다. 내면적인 엽렵함과 외모에서의 우아함이 바로 '아내가 추구하던 세계'였음을 나중에야 겨우 눈치 채게 되었다. 은퇴자로서 아내의 그런 자부심을 맘껏 존중해주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어쩌면 남편에 대한 비난이나 지적은 자신의 엽렵함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아내의 은밀한 자부심으로부터 무심코 발산되는 건지도 모른다.

이제는 틈만 나면 맘껏 '고상을 떨며' 책을 읽고 명상을 하고, 음악을 감상하며 글도 쓴다. 그야말로 '고상한 척'을 있는 대로 다 하며 살고 있다. 그래도 이제는 아내가 '혼자서 고상 떨고 있네~' 라며 빈정거리지 않는 것은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상대방의 정체성을 파악했을 뿐만 아니라 아내에게 평상시에 공(?)을 들인 덕분이 아니겠는가.

그렇게 고상 떠는 은퇴자는 우아 떠는 아내와 더불어 서로를 인정해가며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방심은 금물이다. 부부관계는 언제 어디서 불발탄이 터질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자신이 상대에게 존중받고 있지 못하다는 느낌이 조금이라도 들면 언제 어디서고 터질 수 있는 활화산이 바로 부부관계이기 때문이다.

편집 : 김동호 편집위원

심창식 편집위원  cshim77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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