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결은 먼 곳에 있지 않다. 자신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아내에게 고백하면 된다. 아주 쉽지 않은가. 그런데 그 고백이 남자들에게는 그리 쉽지 않다. 도대체 그런 고백을 해야 한다는 것 자체가 자존심 상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존심이 밥 먹여 주는 일은 결단코 없다. 예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영원히 그런 일은 없을 것이다. 아내 앞에서 자신의 약함과 부족함을 인정하고 고백하는 것은 자존심의 문제라기보다 용기의 문제일지도 모른다. 사람마다 개인적 차이는 있겠지만 남자들은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는 데 익숙하지 않다. 

육체적 질병이 있을 때 그 질병을 배우자에게 숨기는 사람은 없다. 체하거나 몸살이 걸렸거나 심각한 질환에 걸렸을 때 제일 먼저 알게 되는 사람이 배우자이다. 육신의 아픔과 고통은 숨김없이 배우자에게 털어놓으면서 마음의 아픔과 고통은 왜 배우자 앞에서 솔직하게 털어놓지 못하는 걸까.

더욱이나 속상하고 억울한 마음을 고백한다는 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배우자와의 관계에서 생기는 갈등은 화나 분노로 표출되곤 한다. 마음이 상했을 때는 고운 말보다 거친 말이 앞서기 마련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분노하는 사람의 이면에는 아픔이 있다는 사실이다. 병은 자랑해야 하고 사랑은 표현해야 하듯이 마음의 아픔도 상대방에게 표출해야 한다.

결혼할 때 아내에게 하던 사랑의 고백을 상기해도 좋을 것이다. 은퇴 후 아내에게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는 것도 사랑의 고백과 진배없다. 아내에게 하는 두 번째 사랑의 고백이라고 여기면 될 것이다.

은퇴자들이여!  'Again, 사랑의 고백! '은 선택이 아닌 필수임을 기억하라!

▲ 남자의 고뇌

고백하는 것도 타이밍이 맞아야 한다. 부부갈등 없이 늘 마음을 고백하고 지내는 것이 상책이라면, 격렬한 부부싸움이라는 고문이 있은 후에 고백하는 것은 하책이라 할 것이다. 이것은 고통스럽지만 그나마 다행이다. 최악의 경우는 고문에 버금가는 부부싸움이 있은 후에도 고백하지 않고 버티는 경우다. 

자신의 약함과 아픔을 고백하는 대신 그 감정을 분노로 표시하는 것은 그리 현명하지 못한 일이다. 아내 앞에서 끝까지 강한 척 하고 버티는 것은 어리석을 뿐만 아니라 서로의 고통이 더욱 배가될 뿐이다. 속상함과 분노의 악순환이 지겨울 정도로 반복될 것이다. 이렇게 살면 백세시대는 그야말로 저주 그 자체일 것이다.

은퇴하기 전 자신이 가족을 위해 헌신했다는 사실을 너무 내세울 것도 없다. 아내 역시 그 기간 동안 남편과 가족을 위해 헌신했기 때문이다. 처자식을 먹여 살리기 위해 생존경쟁의 세계에서 자존심 죽여 가며 쓸개마저 집에 두고 그렇게 힘들게 살아왔건만 이제 돈도 못 벌어오니 대접도 못 받고 버림받는(?) 신세가 된 느낌이 들기도 하고, 아내에게 '용도폐기' 의 대상이 된 듯한 느낌이 들 수도 있다.

그렇지만 가사 분담이라든가 생활 속의 습관들은 그와는 전혀 별개의 사안이다. 은퇴 후에는 자신의 모든 것들이 아내 앞에서 액면 그대로 노출되기 마련이다. 아내들은 그 과정에서 노출되는 약점들을 캐내는 데 귀재들이다.

평생 살아온 습관이나 행동이 아내의 잔소리로 수정되거나 교정될 일은 거의 없을 터인데 아내들은 그것을 바로잡고야 말겠다는 신념으로 가득 차 있다. 은퇴자의 비극은 여기에서 비롯된다.

여기서 은퇴자가 알아야 할 것이 있다. 아내가 잔소리를 한다는 건 아내가 불편을 느낀다는 것이다. 심지어 잔소리의 깊은 저변에는 고통과 슬픔마저 스며있다고 한다면 너무 과장된 표현일까. 아내들은 쓸데없는(?) 상상력이 뛰어난 존재이다. '저런 남편하고 백세까지 같이 살아야 한다면 얼마나 자신이 불행할까'를 상상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자기 비애의 세계로 정처 없이 빠져드는 것이다.

▲ 관계 파트너십

은퇴자가 여기까지 이해했다면 어느덧 솔로몬의 지혜에 가까이 다가간 것이다. 이제 그 이해를 바탕으로 은퇴 후 아내의 지적질과 잔소리를 들으며 느꼈던 것들을 하나씩 털어놓는 것이다. 아내에게 지적당할 때 남자도 상처받을 수 있다는 것과 얼마나 자존심이 상하는지에 대해서도 아내에게 고백해야 한다. 이때 화내면서 말하지 말고 아픈 듯이 말해야 한다. 사자의 으르렁거리는 포효가 아니라 아픈 사자의 모습으로 말이다. 일부러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실상이 그러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앞으로 자신의 생활습관을 아내에 맞춰 개선해 나갈 것과 아내에 대해 좀 더 배려하고 존중하겠다는 다짐이 있으면 더욱 좋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 고백과 다짐이 말로만이 아니라 행동과 실천으로 하나씩 이어질 때 비로소 아내의 잔소리는 남편에 대한 칭찬과 존중으로 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은퇴 후의 부부관계가 어디로 튈지는 아무도 모른다. 은퇴자 본인도 모르고 그 배우자도 모른다. 어떻게 잘 되겠지 하는 막연한 기대감이 서로에게 있을 뿐이다. 그 기대감이 배신과 상처로 이어지지 않기 위해서는 부부가 각자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어야 하고 그 내면을 서로 공유하는 체험을 해야 한다.

내면을 공유하고 나누는 체험은 자연스레 서로에 대한 존중과 배려로 이어지게 될 것이고, 은퇴자의 평안은 그제야 비로소 시작된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이 땅의 모든 은퇴자들에게 평강과 축복이 있을진저 !

편집 : 김동호 편집위원

심창식 편집위원  cshim77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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